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56. 박성필 ‘아이디어 고갈’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56. 박성필 ‘아이디어 고갈’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행복한 고민 중 하나가 “어떤 게임을 만들까?”다. 반면에 가장 힘들게 하는 고민 중 하나도 “어떤 게임을 만들까?”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손에 답을 쥐어주기 전에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무얼 만들지 모르겠거나 아니면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 형식의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 전자에 해당한다. 흔히 이 고민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만들고 나서 다음 게임에 대한 고민이거나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더니 재미가 없어서 다른 게임을 찾을 때 하게 된다.

■ 머리카락을 쥐어뜯게하는 창작의 고통

정말 이럴 때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아이디어이거나 재미가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성공한 이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책을 펼쳐보면 보통 이런 답을 얻을 수 있다.

‘여행을 떠나라’, ‘낯선 환경에 자신을 가두어라’, ‘떠오를 때까지 전혀 다른 일을 하라’, ‘포기해라’ 등. 사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필자도 이런 말들에 동의한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여행을 떠나고,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해보고 싶던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참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이런 고민을 하다가 다른 게임을 그대로 본 떠서 만든 카피캣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카피캣이 전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낯선 시장이고 처음이라 어떤 게임을 만들지 모를 때는 한두 번 정도는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이름을 건 대표의 입장이거나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인디 정신을 가진 이라면 카피캣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럼 당최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저런 고민 끝에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을 이들에게 몇 가지 힌트를 주려한다.

■ ‘하늘 아래 새 게임은 없다’--편집의 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임은 없다”고. 이렇게 주장하는 이에게 “그럼 연이어 쏟아지는 새로운 게임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라고 질문한다면 이런 답이 나온다. “편집”. 이렇게 주장하는 이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망치라는 물건이 처음 발명되었다. 분명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건이다. 하지만 돌멩이로 두드리던 걸 쇠뭉치로 바꿨을 뿐이고 쇠뭉치에 나무 막대기를 하나 붙인 것뿐이다. 분명 쇠뭉치와 나무 막대는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 둘을 합쳐서 전혀 새로운 물건이 탄생했다.

그렇다고 이 게임과 저 게임을 합쳐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같은 방식으로 여러 게임을 만들고 있다. 액션+RPG, 슈팅+퍼즐, 리듬+액션 등.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참신하다고 생각되는 건 많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더 좋은 편집의 예가 있다. 바로 관점의 변화다. 가장 흔한 자동차 게임을 한 번 주목해보자. 자동차 게임은 전자 오락의 시작부터 그 역사를 같이 해왔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 백 개가 넘는 자동차 게임이 나왔다. 도대체 한 가지 주제로 어떻게 이런 많은 게임이 나왔을까? 같은 주제, 같은 방식의 게임이라면 그리 많은 게임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지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분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관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직접 운전석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1인칭 시점의 게임이 있는가 하면 경주에서 1등을 하기 위한 2인칭 시점. 심지어 관중의 시점에서 결과를 예측하는 도박성 짙은 게임까지 출시되어 있다. 시점 변화뿐일까? 아니다. 그렇게 많은 게임이 시점 변화만으로 가능할 리 만무하다. 사람들은 레이싱 게임의 주인공을 인기 캐릭터나 동물 등으로 바꾸기도 하고 공격과 방어 등의 재미를 넣는가 하면 하늘을 날기도 하고 미니카로 집안을 트랙삼아 경주를 하기도 한다.

■ 자동차 경주 게임의 범주는 참신한 정비까지....의미 부여
얼마나 다양한 변화인가? 자동차 경주라는 주제로 이토록 많은 게임이 나올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참신하다 느꼈던 것은 바로 정비 게임이다.

실제 레이스에서는 자동차에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자동차에 많은 무리가 간다. 그래서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피트레인(Pit Lane)에서 경주 시간 중간에 간단한 타이어 교체 등의 빠른 정비를 하게 된다.

이 정비 공들을 피트크루(Pit Crew)라 부르는 데 바로 이 피트크루를 주제로 한 게임이 있다. 자동차 경주에 관심이 있다면 자동차를 만들고 개조하고 또 정비하는 것까지 게임의 범주로 포함시킬 수 있다.

게임의 주제를 고민하고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힌트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를 하자면 주제나 행위에 의미 부여를 해준다면 생각지 못한 부분이 게임이 될 수 있다.

농장 게임을 예로 들어보겠다.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에게 농장을 가꾸고 염소에게 밥을 주는 게임을 쥐어주면 과연 재밌게 할까? 그렇다. 농장 가꾸기에 미션을 부여하고 성취감을 높이면 폭력적인 게임을 좋아하던 남자들도 염소에게 밥을 주고 토마토를 수확한다.

■ 막다른 길에서는 차라리 뻔한 게임으로 승부하라
이렇게 아무리 힌트를 주어도 내 머리 속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런 이들에게 추천할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뻔한 게임을 만들어 보자.

지금 흥행하고 있는 게임의 카피캣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래 전에 나왔고 지금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는 게임이지만 확실한 재미가 보장되는 게임이 있다. 슈팅 게임, 플렛포머 게임 그리고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 게임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아무리 뻔한 캐릭터의 뻔한 게임이어도 내가 직접 만든다면 뭔가 다르고 어딘가 색다른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들을 강조해서 만들어나가다 보면 독특한 방식의 게임이 완성될 수도 있다. 그리 독특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만든 게임이고 재미만 있다면 작업도 재미있어지고 마음도 편하고. 좋지 아니한가?

마지막으로 노파심에 얘기하자면 카피캣은 만들어도 좋고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상업적으로 팔아도 좋다. 그러나 자랑스레 남에게 보여주지는 말자. 카피캣을 보여주며 칭찬을 갈망하는 초롱초롱한 눈빛보다 더 민망한 게 또 없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박성필 객원기자 rightguy22@gmail.com

■ 박성필은?
영어 강사와 반도체 공정 솔루션 업체를 거쳐서 부부 게임 개발자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1506호의 남편이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첫 번째 게임을 완성함과 동시에 퇴사 후 호주 및 뉴질랜드 2개월 여행하며 ‘기’를 충전했다.

퇴직금은 뉴질랜드에서 7일간 모두 탕진했지만 첫 번째 게임 ‘대리의 전설’ 및 2호 게임 ‘두둥실 내새끼’의 적은 수익으로 근근이 연명해가고 있다. 현재 차기작을 통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