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49. 박성필 ‘버릴수록 완성되는 인디게임’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49. 박성필 ‘버릴수록 완성되는 인디게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인디 게임은 완성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게임 안에 방대한 세계관이 있어도 그 세계를 모두 그려내지는 않으며, 세부적인 설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게임 안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인디라는 것이 어떤 영역에서나 그러하듯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제약을 즐기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디다. 제약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 글에서는 제약을 인지하고 버려야 하는 것들과 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 버리지 못하면 완성문턱 절대로 못넘는다

인디게임은 버리지 못하면 완성이라는 ‘단맛’을 보기가 어렵다. 물론 모든 걸 끌어안고 힘겹게 큰 수레를 끌고 산의 정상까지 오르며 게임을 완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끝이 항상 좋지 만은 않기에 작은 것이라도 버리는 것을 추천한다.

버리지 못하면 완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치명적이다. 단, 그 시간은 인력의 투입으로 현저하게 낮출 수가 있는데, 인디라는 세계에서는 귀담아 듣기 어려운 방법이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버리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겠다.

아무도 모르는 독방에서 인디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있다. 이 개발자는 그래픽에 대한 제약을 가지고 있다. 그래픽에 많은 돈을 투자할 여력도 없다(대부분의 인디가 그러하듯).

이 개발자는 없는 돈을 짜내어 디자인 외주를 선택한다. 하지만 밥도 굶어가며 짜낸 돈으로 얻은 외주 이미지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래픽으로 게임을 출시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그래픽을 배워볼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지만 이를 포기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게임은 완성되지 못하고 그래픽을 해결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프로젝트를 “잠시” 접어둔다. 극단적인 예를 든 것 같지만 실제로 주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위의 개발자는 무엇을 버려야 했을까? 자존심일까 아니면 그래픽일까? 언뜻 자존심을 버리면 게임이 완성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만약 개발자가 자존심을 버리고 이 프로젝트를 강행했다면 이 개발자는 매일 밤 같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래픽.. 그래픽.. 아, 그래픽..”이란 생각. 그렇다고 그래픽을 버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개발을 시작할 무렵에 기획했던 게임이 그래픽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버려야 했을까? 바로 만들고자 했던 그 게임이다. 무리를 해야만 완성이 될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게임은 잠시 접어두고 나중에 무리 없이 만들 수 있을 때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큰 게임 외에도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게임 중에는 혼자 힘으로 또는 작은 도움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게임이 있을 것이다. 우선 만들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차차 스케일을 크게 키워 나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렇다면 버릴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One of developers of Super Meat Boy! 출처: Indie Game: The Movie
■ 버린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이 개발자는 아무도 모르는 캄캄한 독방을 버릴 수도 있었다. 사람이란 혼자는 살아갈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사람은 이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개발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를 소개받을 수도 있고 게임만 괜찮다면 주위 사람을 통해 물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독방을 버리거나 또는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답은 아니다. 각자가 그리는 큰 그림에 따라 또는 그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버린다는 것은 비단 부족한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버린다는 것은 때론 새로운 것에 대한 접근일 수 있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전사가 신비스러운 숲을 뛰어다니는 게임을 만들고 싶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숲을 버릴 수 있다. 이제 신비로운 숲 대신 하얀 바탕 위에 전사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구현하면 되지만 화려한 갑옷 역시 사치라고 느껴진다. 전사는 갑옷도 버리고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하얀 바탕을 뛰어다닌다. 하지만 이도 만만치 않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뛰어다닌 것을 구현해낸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여기까지 몰리면 전사의 팔다리조차 포기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몸통도 버리고 팔과 다리까지 버리니 꽤 귀여운 모습의 캐릭터가 하나 생겨났다. 커다란 머리에 팔만 동동 떠다니는 전사. 발조차 없어서 하얀 바탕을 통통 튀어 다닌다. 이쯤 되니 허술한 배경 이미지 하나 정도는 넣어볼 만하다. 이것저것 버리다 보니 화려한 갑옷을 입은 전사가 신비스러운 숲을 뛰어다니는 뻔한 설정이 머리와 동동 떠다니는 한 쌍의 손을 가진 그리고 그 손에 검이 들려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멋진 그림으로 바뀌었다.

■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잘 가려내고 버리는 순간순간에 집중해보라

머릿속에 어떤 캐릭터를 그렸든지 간에 만약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를 난생 처음 보고 그 캐릭터를 내가 만들어냈다면 그 희열은 분명 게임을 완성했을 때의 그것보다 더욱 강렬할 것이다.

Super Hexagon by Terry Cavanagh 출처: Google Play

반면, 게임에 사용할 그래픽 리소스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그래픽 리소스가 필요 없기 때문에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단적인 예로 테리 카반나흐(Terry Cavanagh)를 들 수 있다. 이미 인디게임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무엇이 부족해서 화려한 그래픽 리소스를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이는 기획 단계부터 그래픽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버려야 할 부분이 꼭 그래픽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비디오 게임이라는 특성 상 그래픽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괜히 게임이 종합 예술이라 불리던가? 음악 역시 추상화할 수 있다. 화려한 음악 대신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음악이 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인터페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바일 게임이 활성화 되면서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아주 단순해지고 추상적이 되었지만 게임 패드와 키보드에 못지않은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인디 게임은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게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는 만드는 이에게 남겨지는 즐거운 선택이다. 버려야 하는 것들과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잘 가려내고 버리는 순간 순간에 집중해보라. 분명 버린 만큼 얻어지는 것이 시간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박성필 객원기자 rightguy22@gmail.com

■ 박성필은?
영어 강사와 반도체 공정 솔루션 업체를 거쳐서 부부 게임 개발자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1506호의 남편이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첫 번째 게임을 완성함과 동시에 퇴사 후 호주 및 뉴질랜드 2개월 여행하며 ‘기’를 충전했다.

퇴직금은 뉴질랜드에서 7일간 모두 탕진했지만 첫 번째 게임 ‘대리의 전설’ 및 2호 게임 ‘두둥실 내새끼’의 적은 수익으로 근근이 연명해가고 있다. 현재 차기작을 통해 비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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