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돈벌어라” ‘을’에서 ‘갑’으로....추월선 있는 ‘인생게임’

1991년 한국에는 ‘존의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Jones In The Fast Lane’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졸업도 해야 하고, 졸업한 뒤에는 직장에 출근할 옷도 사고 시간에 맞춰 출근도 하고 집도 점점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등 사회 체험형 게임이 등장했다.

의외로 친구들은 많이 하지 않았다. 일단 언어의 장벽이 문제였고(한글화 출시가 안 됐음). 지금 학교에 다니면서 겪고 있는 사회적인 부담이나 압박감도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에 게임에서까지 그런 일을 경험해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선택의 자율성도 전혀 없으면서 ‘야간 자율학습’ 이라 불리면서 강제 수용소 같은 생활에 찌든 친구들이 이런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필자는 중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존’이 누군지가 굉장히 궁금했고, ‘사생활’ 이라는 단어에 무언가 어른스러운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결과만 얘기하자면 전혀~ 그런 것은 없다).

[‘JONES’의 사생활]
이 게임은 굳이 분류하자면 ‘인생게임’ 장르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심즈’라는 게임과 비교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 그래도 실제 본인이 아닌 누군가의 가상 캐릭터로 사회적 현상이나 분위기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게임이 시작되면 가타부타 주절주절 설명이 나오지도 않고(필자는 잔소리 많은 게임 제일 싫어한다). 심플하게 마을부터 등장하는데, 마을에는 살면서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거의 다 준비되어 있다. 물론 부족한 것들도 있지만 이제 막 새로 생긴 신도시처럼 인프라가 형성되지 않아 깔끔하지만 뭔가 썰렁한 것 같은 차가운 도시적 느낌이다.

[우리 동네 담배 아가씨는 얼굴이 이쁘...]
화면 가운데에는 본인이 선택한 캐릭터가 등장하며 실제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마을처럼 야트막하고 아담한 마을이 보인다. 은행과 햄버거 하우스에 자주 갔고 학교에는 가기 싫어도 가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업, 직업과 관련된 것들만 모아져 있어서 공부 아니면 일밖에 하는 게 없었던 지옥 같은 마을의 모습이다.

게임의 원래 이름인 ‘Jones In The Fast Lane’에서‘Fast Lane’이라는 말은 원래 ‘추월차선’을 의미하는데, 인생을 표현할 때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약육강식’의 경쟁적인 부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는 O마트에 가면 볼 수 있는 계산대 중에 5개 이하 소량 물품 전용 계산대 같은 것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네 삶 자체가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적인 부분임을 표현해서 이름을 지었던 것 같다. 그런데 ‘in the fast lane.’ 이라는 말은 ‘아슬아슬 하면서도 재미있는’ 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게임의 개발자는 ‘Jone’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네 인생이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 보면 희극이다.’ 라는 말처럼 크게 보면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도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지 모르겠다.

■ 냉엄한 현실을 체험해 보다
이 게임은 특이하게도 멀티 플레이를 지원한다. 현재와 같은 네트워크 멀티 플레이 개념이라기보다는 최대 몇 명까지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는지 지원하는 정도다. 친구나 동생들과 돌아가면서 한 명씩 키우는 재미로 다른 사람은 어떤 과정을 거쳐 스펙 쌓기에 도전하는지 옆에서 구경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대부분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가지만..).

[최대 4인용]
어차피 ‘존’이 살고 있는 마을에 주어진 환경이 한정적이다 보니 다채로운 삶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이 있다. 다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알바를 하면서 햄버거를 먹고 미래의 꿈을 향해 도전해 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데, 사실 이 게임을 할 때는 필자가 중학생 때여서 20살이 넘은 형, 누나들의 삶이 이렇게까지 팍팍한지 잘 몰랐다. 나중에야 대학에 진학하고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고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이렇게 험난하고 어려운 길만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게임을 통해서라도 미리 좀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걸 그 나이에 알면 중학생이 아니겠지.

이 게임을 해보면 고생고생 해서 돈 없던 시절 눈물 흘리며 빵을 먹었던 햄버거 가게 사장이나 저임금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게 만든 공장의 사장도 할 수 있고 학창 시절 내내 학점 때문에 서운하게 했던 교수님이라는 직업을 가져볼 수도 있다. 소위 ‘을’에서 ‘갑’으로 변하는 극적인 변화를 체험 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보다 더 세밀한 조정이 가능했었다면 경영 시뮬레이션으로 발전 해 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골인 지점을 설정하자.]
게임을 시작하면 자신의 수준에 맞게 인생의 골을 설정할 수 있는데 서민으로 만족할 것인지 중산층 이상으로 편입할 것인지 부유하게 삶을 마감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막상 저 게임을 할 때는 그저 게임의 난이도 설정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철 들고 생각 해 보니 인생의 골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서글퍼 보이기도 한다.

[옷이..]
[여자는 신문지]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에서도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계획 없이 돈을 쓰다 보면 나중에 옷 사 입을 돈도 없어서 이렇게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길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도 복장불량으로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헐벗고 다녀도 학교나 은행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학업도 이수할 수 있고 은행에서 돈을 예금하거나 인출하는데도 지장이 없다. 물론 돈이 있을 경우에 그렇다.

[돈 없으면 공부도 못 한다.]
돈이 떨어지면 게임을 하면서 돈이 모자라 학업을 중단해야 한다던가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려 해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등 현실 세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서러움을 게임을 통해 한 번 더 경험해 볼 수 있다.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학교에서도 매몰차게 박대를 당하게 되는데, ‘You do not have enough cash.’라는 한 마디 말 뿐이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심정이 어땠는지는 이 게임을 하고 수 년 뒤에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필자 역시 체험을 해보게 되었다.

[은행에서도 문전박대]
사회에 진출해서 처음으로 서울 신림동에 반지하 월셋방을 구할 때도 보증금 500이 없어서 ‘서민 주거안정 대출’인가 하는 비슷한 이름의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은행에서 들었던 말하고 너무나 비슷하다. 결국 신용대출로 년 이자가 12%가 넘게 주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간신히 방을 마련 할 수 있었는데, 그런데 ‘I’m terribly sorry’ 라고 말하는 은행 직원의 표정에는 정말로 미안한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아 보인다. (사실 자기가 미안할 이유도 없긴 하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으므로 이제 일을 시작해 보자.

[햄거버 가게에 알바 취직]
결국 돈이 떨어져서 햄버거 가게라도 취직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세상 물정 모르고 ‘Manager’ 부터 선택했다가는 ‘네 놈은 학력도 미달이고 경험도 미천하다!’는 직업 소개소 아저씨의 잔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학력과 사회 경험 수준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면 시간당 3달러 받는 알바부터 시작 하게 된다.

필자도 사회에 처음 진출 했을 때 난생 처음 면접이라는 것을 보고 인사 부장이 ‘희망 연봉은 어떻게 되십니까?’ 라는 질문에 정말로 희망하는 액수를 말하면 되는 줄 알고 로또 당첨금 같은 액수를 얘기했다가 역시나 문전박대 당하고 쫓겨난 기억이 있는데, ‘아니 희망하는 액수를 말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신경질 내고 난리야.’ 하면서 서운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위에서 얘기했던 ‘야자(야간 자율학습)’처럼 ‘야자’의 실행 및 운영관리 주체가 학생이 아니라 학교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학생이 할지 말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이 ‘야자’라면 맞는 말이다. ‘희망연봉’ 역시 근로자가 희망하는 액수가 아니라 회사가 희망하는 액수를 얘기하는 것이라면 일견 맞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친절하고 자세하게 ‘자~ 이제 그러면 회사에서 희망하는 당신의 연봉은 얼마 정도일까요?’ 라고 물어보시던가..

[서민 주거 안정? 그런 거 몰라..]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HOME SWEET HOME’이라는 액자가 달려 있고 천이 터져 나가 솜이 튀어나온 의자와 다리가 부러진 테이블이 있는 ‘Low-Cost SWEET HOME’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 진짜 억울하면 돈 벌어야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게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화면 중앙 하단에 보면 시간이 흘러간다. 일하고 싶어도 하루 종일 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마을을 이동 할 때에도 거리에 따라 시간이 흘러가는데, 생각 없이 여기저기 막 돌아다녔다가는 주어진 시간을 다 소비하게 된다. ‘Time is Money’ 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일하러 갈 때나 학교에 갈 때 그리고 생필품을 사러 갈 때도 동선을 치밀하게 계획해서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적게 계산해야 한다.

■ 필자의 잡소리
게임을 시작할 때 ‘존’을 선택할 수 있는데, 여기서 ‘존’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인공지능 캐릭터다. 플레이어 차례가 끝나면 ‘존’이 등장해서 지 맘대로 이것저것 하고 다니는데, 이 때 ‘존’의 사생활을 잘 탐구하는 것이 좋다. 일종의 삶의 모범답안 같은 사례를 보여주는 친구다. 꼭 ‘존’을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살아가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의 사생활도 탐구할 필요는 있다. 물론 ‘존’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본인이 계획한대로 살아도 된다.

[우리의 친구 ‘존’]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존’은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수 많은 ‘존’들이 오늘 하루도 게임에서처럼 의식주 해결을 위해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돈과 맞바꾸는데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다만,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수많은 ‘존’들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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