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출시, ‘니드포’ 대신 현실감..영화 ‘폭풍의 질주’ 보고 레이싱 입문

지금으로부터 20년 정도 전에는 PC 게임 중에 레이싱 게임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그래픽이 상당히 조악하다든가 조작감이 너무 어렵든가 하는 이유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대중과 타협하여 아케이드 정도의 구성을 갖춘다든가 하는 식의 게임들이 많았다.

레이싱 게임을 하면서도 무언가 늘 2% 아쉬움이 남았던 그 시절에 어느날 발견한 새로운 레이싱 게임이 등장했다. 그 게임이 ‘나스카 레이싱(NASCAR Racing)’이라는 게임이다. 회사 이름은 다소 생소한 ‘파피루스 디자인 그룹(Papyrus Design Group, Inc.)’으로 이전에도 레이싱 게임을 많이 만들었다.

특히 전문 레이싱 드라이버가 직접 트랙을 돌면서 실제 환경적인 요소를 많이 고려하여 게임 개발에 활용하였다. 그런데 ‘인디아나폴리스 500(INDIANAPOLIS 500)’이라든가 ‘인디카레이싱(INDYCAR RACING)’, ‘그랑프리(GRAND PRIX)’ 등 레이싱 게임 전문개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파루스 디자인 그룹 회사 로고]
그들이 개발한 게임 목록만 보아도 레이싱 전문 개발사인 것을 알 수 있는데,
Indianapolis 500: The Simulation (1989)
IndyCar Racing (1993)
Project Nomad (1993)
NASCAR Racing (1994) NASCAR Racing for the Sony PlayStation (1996)
Links: The Challenge of Golf (1994) (Sega CD version)
IndyCar Racing II (1995)
Road Rash (1996) (with Buzz Puppet Productions)
NASCAR Racing 2 (1996) NASCAR Racing: Grand National Series Expansion Pack (1997)
SODA Off-Road Racing (1997)
Grand Prix Legends (1998)
NASCAR Legends (1999)
NASCAR Racing 1999 Edition (1999)
NASCAR Craftsman Truck Racing (1999)
NASCAR Racing 3 (1999)
NASCAR Racing 4 (2001)
NASCAR Racing 2002 Season (2002)
NASCAR Racing 2003 Season (2003)
[Papyrus Design Group, Inc. 출시 게임]

이처럼 주력 분야가 레이싱과 관련 된 게임 개발이었다. 그 중에서 필자가 좋아했던 게임은 ‘나스카’ 시리즈였다. 다른 회사의 레이싱 게임들은 살아 생전에 저런 차를 탈 일이 있을까 싶은 그런 차들이었기 때문에 뭔가 와 닿지 않는 괴리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스카’ 시리즈는 스티커 작업만 하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비슷한 차량들이 많았고 그만큼 현실적인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메인화면]
게다가 ‘나스카’ 시리즈는 1994년에 출시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고해상도 버전을 지원해서 그래픽 카드 성능만 받쳐 준다면 미려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차량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기존의 레이싱 게임들이 다소 투박하고 거친 그래픽이었다면 이 게임에서 표현된 그래픽은 날카롭고 섬세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 점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1994년 기준으로) 미려하게 표현 된 차량 디자인]
같은 해에 출시된 다른 명작 게임으로 ‘니드 포 스피드(Need For Speed)’ 가 있었지만, 약간의 시뮬레이션적인 요소를 추가했을 뿐 전문적인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사 동영상으로 차량을 보여주는 것 때문에 수많은 차량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전설적인 게임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니드포’를 하지 않고 ‘나스카’를 하게 된 이유도 ‘니드포’에 등장하는 차량들 역시 평생 벌어도 손에 쥘까 말까 한 슈퍼카들이 나오기 때문이었다(페라리 따위! 아직도 살 수 없단 말이다!). 현실적인 부분에 타협을 하고 레이싱 게임에 입문하게 된 게임이 필자에게는 ‘나스카 레이싱(NASCAR RACING)’이라는 게임이었다.

■ 기업스폰서 톱 프로스포츠 나스카, 게임 속 실감 구현
어찌됐든 ‘니드포’를 버리고 ‘나스카’를 선택한 필자는 처음에 이 게임을 딱 한 번 해보고 분노에 휩싸였는데 키보드로는 도저히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차를 조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게임의 이름이기도 하고 실제 경주 대회 이름이기도 한 ‘나스카’라는 이름은 ‘전미 스톡 자동차 경주 협회(NASCAR: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라는 긴 이름의 자동차 경주 대회이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게임 ‘인디아나 폴리스 500’ 이나 ‘인디카레이싱’은 미국의 포뮬러 레이스인 ‘인디 500’ 경주를 뜻하고 ‘NASCAR’는 ‘인디 500’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스톡 카 경주대회이다.

[성공한 남자의 플래그 쉽 ‘브륜힐트’]
실제 미국에서 ‘나스카’ 대회는 얼마 전 끝난 ‘슈퍼볼’ 대회의 ‘NFL’와 ‘메이저리그’ 다음으로 인기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영화로도 몇 편 제작되었을 만큼 그 인기가 상당한데, 나스카의 TV 시청률은 미국 내 프로스포츠 중 ‘NFL’에 이어 두 번째고, 기업 스폰서십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고로 꼽히고 있다.

라이선스 상품으로만 매년 2조원(21억 달러)을 벌어들이는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중에 하나이다(우리나라도 이렇게 큰 자동차 대회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나스카’에서 얘기하는 ‘스톡 카(Stock Car)’라는 것은 쉽게 얘기해서 시장에 출시되어 판매되고 있는 자동차를 얘기한다. 물론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반 차량에 부가적인 장치와 안전장치 등을 더해서 출전하게 되지만, 중요한 점은 일반 판매용 차량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필자가 이 게임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언젠가 스티커 작업을 해서 이렇게 멋진 차를 꾸며보고 싶은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하지만, 국내법 위반이라 불가..).

[나스카 문양]
그런데, 원래 필자가 알고 있던 ‘나스카’라는 것은 페루의 나스카 평원에 거대한 그림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외계인이 그렸다느니 지구인이 외계의 노예였다던가 우주선의 착륙 장소라던가 그런 얘기들이 한참 떠돌던 시기였는데, 그래서 처음에 ‘나스카레이싱’ 게임을 이름만 들었을 때는 ‘저 나스카 평원에서 레이싱을 하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NASCAR: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나스카 평원의 저 나스카 문양을 염두에 둔 작명센스가 아닌가 생각된다(그나저나 살아 생전에 나스카 평원 한 번 가보는 게 인생 목표 중에 하나인데..).

이렇게 어딘가 외계적인 어원의 동음이의어 같은 ‘나스카’ 레이싱은국제자동차연맹(FIA) 공인 경기는 아니다. 즉, ‘FIA’의 몇 몇 규정을 따르지 않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깃발 규정이다. ‘F1’레이싱에서 사용하는 깃발의 색과 ‘NASCAR’ 레이싱에서 사용하는 깃발은 색과 의미가 다르다. 왠지 그런 반항아적인 느낌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이 게임에 매진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게임에 매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뒤늦게 영화 ‘폭풍의 질주’를 보고 난 뒤 너무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두 사람은 결혼도 했다가 이혼도 했다가.. ‘톰 크루즈’의 경우 그 동안 출연했던 영화들이 군인(파일럿 포함) 아니면 스파이 역할이 많고, 민간인으로 나오더라도 전직 특수요원 등과 같이 언제나 누군가와 싸우는 역할의 밀리터리 느낌의 영화들이 많은데 군인 역할로 나오지 않는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폭풍의 질주’]
무려 25년 전 ‘톰 크루즈’의 모습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이는데, 저 영화의 흥행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그 뒤로 등장하는 레이싱 관련 영화들도 빠짐없이 보고 있는데 ‘분노의 질주’라든가 하는 영화들이 그것이다. 영화도 몇 번씩 봤겠다. 같은 경주를 소재로 하는 게임도 구했겠다. 이제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신나게 달리는 일만 남았는데, 문제는 아무리 게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해도 키보드만으로는 이 놈의 차를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코너를 돌아서 나갈 때 코너에서 벽에 충돌하지 않으려면 속도를 줄이면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앞 차들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보기만 해야 했고, 아무리 따라 잡으려 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낙담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스틱을 장만하였다(이것이 문제의 시작이 될 줄이야..).

[퀵샷 (Quick Shot) 핸들형 조이스틱]
그때 장만했던 조이스틱은 ‘퀵샷(Quick Shot)’라는 대만산 제품이었는데 가격은 2만원 정도 했다. 원래 이 스틱은 ‘플라이트 시뮬에이터(Flight Simulator)’용으로 하나 장만해야지 하고 있던 터라 큰 맘 먹고 하나 구입하였다. 그런데 부푼 기대를 안고 컴퓨터에 연결 후 ‘나스카레이싱’ 게임을 하자마자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다. 이 스틱은 자동차 레이싱 전용 핸들이라기보다는 민간 항공 비행기의 스틱으로 출시 된 것이라 조작법이 달랐던 것이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다른 부분이 있는데, 비행기의 상승, 하강 때 스틱을 쓰는 방법은 스틱을 앞으로 밀면 기체가 하강을 하고 스틱을 뒤로 당기면 상승을 한다. 영화에서도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에서 꼭 나오는 대사 ‘당겨! 당기라고!!’ 그런 기능인데, 급격한 기동을 하는 전투기에서는 이런 스틱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양손으로 다소곳하게 조심조심 조작하는 것들은 대부분 민간 항공기들인데 기류나 그 밖의 불가항력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비행기가 흔들리고 요동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급격한 기동으로 기내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스틱을 가지고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자동차 레이싱 게임을 한다고? (말로는 설명이 힘들고 직접 해보시면 자신의 분노 게이지 상한선이 어디쯤인지 알 게 될 것이다).

[게임의 오프닝 장면도 박진감 넘친다.]
이렇게 민간 항공기에나 쓰일 것 같은 스틱을 자동차 게임에 연결하면 저 스틱을 양손으로 잡고 앞으로 밀면 액셀레이터 기능이 작동하고 다시 뒤로 잡아당기면 브레이크 기능이 작동하는데 분초를 다투는 레이싱 게임에서 앞으로 밀고 뒤로 당기고 하다 보면 어느새 바닥에 고정 시켰던 스틱 밑 바닥의 뾱뾱이가 뾱~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긴박한 순간에 책상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에 대롱대롱 스틱을 잡고 있는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 때 필자의 분노가 어땠는지 조금은 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액셀레이터, 브레이크를 따로 키보드로 지정해서 하자니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게임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자동차 게임에서는 써서는 안 될 물건이었는데 스틱이 저것 밖에 없다 보니 끈기와 오기로 끝까지 써보기로 하다가 결국 계속 쌓이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 하고 창고 어딘가에 처박아 두긴 했는데, 그 뒤로는 행방이 묘연해서 찾을 길이 없는 미스터리한 물건이기도 하다.

[사고났다! 견인 불러!]
그래서 이 게임을 진중하게 하기는 힘들었고 게임을 하면 언제나 ‘꼴찌는 따놓은 당상’이었던 게임이기도 하다. 키보드로도 잘하는 친구들도 있던데,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 게임은 키보드만으로 하기는 좀 힘들다. 이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레이싱 게임들도 마찬가지인데, 조작감의 사실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싸구려 조잡한 핸들 스틱이라도 하나 있으면 진짜 차를 몰고 운전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키보드로는 영 그 느낌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지금이야 ‘드포피’니 뭐니 해서 좋은 스틱들도 많이 나와 있고, 악셀, 브레이크 페달은 물론 수동 기어까지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진 세상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핸들형스틱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20년 전의 컴퓨팅 세상은 핸들형스틱 뿐만 아니라 PC에 연결 할 수 있는 조이스틱 자체가 신기하던 세상이다.

키보드로 어기적어기적 거리며 늘 꼴찌를 했지만, 그래도 필자는 이 게임을 좋아했다. 비가 와서 밖에 나가기 힘들거나 새벽녘에 공부에 지칠 때쯤이면 이 게임에서 화창하고 맑은 하늘을 보며 트랙을 몇 바퀴씩 달리곤 했다. 그때에는 마치 ‘폭풍의 질주’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에 빙의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그러다 커브에서 조작이 잘 안 되서 충돌..).

■ 필자의 잡소리
게임을 하면서 늘 해당 게임과 관련 된 소재를 찾아서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영화와 같은 경우는 소재적인 측면에서 같은 내용을 다루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서로 소재가 중복되기도 하고 확장 전이 되기도 하는 등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 역시 최근까지 시리즈들이 출시되어 영화 못지 않은 그래픽을 선사하고 있다. 왠지 오늘 밤에도 치맥과 함께 이 영화를 다시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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