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43. 이정엽 ‘우연의 미학과 알고리즘 작곡'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43. 이정엽 ‘우연의 미학과 알고리즘 작곡'

지난해 맡았던 한 모 대학의 게임 디자인 강의에서 한국 인디게임 팀 가운데 스팀에 자신의 게임을 성공적으로 올린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인 터틀 크림의 박선용 대장을 특강연사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

강의는 인디 게임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 강의였다. 박선용 씨를 초청한 이유는 그가 스팀에 입점한 몇 안 되는 게임 디자이너라는 이유에서이기도 했지만 터틀 크림이 만드는 게임이 다른 인디 게임 스튜디오보다 인디 정신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의는 그들이 지난해 9월에 출시한 ‘6180 the Moon’이라는 게임의 포스트모템(post-mortem) 형태로 진행됐다.

‘6180 the Moon’은 한 게임 잼(game jam) 행사에 늦게 참가하게 된 터틀 크림이 2시간이 채 안 되는 6180초 만에 급하게 아이디어를 내어 만든 게임이다.

프로그래머와 게임 디자이너 2명으로 구성된 터틀 크림은 제한 시간 내에 게임을 만들기 위해 제작하기 쉬우면서도 대중에 널리 알려진 플랫포밍 장르를 선택하기로 했다. 프로그래머는 플랫포밍 장르의 시스템을 급하게 구축하고, 디자이너는 퍼즐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스테이지와 레벨 디자인을 진행하여 시간 내에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팀에 출시된 ‘6180 the Moon’은 이 게임 잼에서 디자인 된 초기 버전의 아이디어를 거의 그대로 담고 있으며, 사운드와 스토리 등에서 세밀한 조탁을 한 작품이다.

6180 the Moon의 한 장면.출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99660/
스팀에 이 게임이 출시되기 전 ‘데수라(Desura)’라는 인디 게임 플랫폼에서 이 게임을 처음 보았다. 그때 필자는 흑백으로 처리된 배경과 단순한 흰색의 삼각형, 사각형, 원으로 이루어진 그래픽이 단순한 미니멀리즘적인 연출로 일관되어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유저에게 이러한 미니멀리즘적인 연출은 일종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단순한 그래픽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이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단순함을 넘어서는 독특한 미학을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상당 부분이 이 작품의 사운드와 음악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6180 the Moon’의 배경 음악은 박선용 씨의 아내이자 작곡가인 이성이 씨가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게임의 배경 음악이 작곡가가 만든 음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 내에는 점프해서 때리거나 밟으면 깨어지는 블록이 존재한다. 이 블록은 깨질 때마다 배경 음악과 잘 어울리는 높은 건반악기 소리를 낸다. 그 음들은 랜덤하게 울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사용자의 인터랙션에 반응하는 사운드들이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건반악기 소리는 원래의 배경 음악과 조우하여 완전히 새로운 우연한 곡을 만들어 낸다. 이 게임의 주인공인 달이 이리저리 튈 때마다 그 리듬감에 맞추어 새로운 곡을 듣는 것은 이 작품을 플레이할 때 가장 즐거웠던 요소 중 하나였다.

팩맨 게임을 소재로 알고리즘 작곡법을 선보인 태싯 그룹의 '식스 팩맨(Six Pacmen)'
이처럼 특정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을 알고리즘 작곡(algorithm composition)이라 부른다. 이 알고리즘 작곡은 수학에 기반하여 특정한 공식과 함수를 작곡에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작곡 방식이지만 컴퓨터가 보급된 20세기 이후부터 매우 활발히 연구되고 발전한 분야이다.

컴퓨터 음악의 선구자인 리저런 힐러(Lejaren Hiller)와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알고리즘 작곡은 요즘에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나 퍼포먼스 등에 자주 활용된다. 한국에서도 태싯 그룹(Tacit Group) 같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이런 우연성을 활용한 알고리즘 작곡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6180 the Moon’은 그래픽도 단순한데다가 이미 많이 알려진 플랫포밍 장르를 플레이하는 것이 자칫하면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을 컴퓨터의 속성을 활용한 음악과 사운드를 통해 극복해내면서 인디 게임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방법론을 보여주었다는 부분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제로 ‘6180 the Moon’은 지난해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주최한 전시 ‘Hybrid Highlights: 예술, 인간, 과학’이라는 전시에 작가로 참여해, 인디 게임이 예술의 한 분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간 한국 인디게임이 전혀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한경닷컴 게임톡 이정엽 객원기자 elises@snu.ac.kr

■이정엽은?
1980년대 초 아케이드 게임과 아버지가 사주신 애플 ][e와 북미판 닌텐도를 시작으로 게임을 하드코어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7년째 게임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을 개설해 왔다.

이 수업들을 통해 제자들의 스타트업을 장려하고 후원하고 있다. 현재 모바일 게임회사 엑스몬게임즈의 감사 겸 서울대 연합전공 정보문화학 연구교수 및 카이스트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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