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망치 휘두르기와 점프....집 철거반 맞서는 분노와 페이소스도 ‘뭉클’

게임 이름은 분명 영어로 ‘HAMMERIN HARRY’인데 필자의 동네 오락실에는 ‘오함마’ 라고 적혀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오함마’라는 단어를 접한 필자는 아주 오랜 후에야 대학교 시절 여름 방학에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공사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추억의 ‘오함마’라는 단어를 다시 듣게 되었다.

‘오함마’.. 사실은 ‘HAMMERIN HARRY’
이 게임은 타이틀 화면에서 보이다시피 1990년에 출시된 게임이다. 화면에는 ‘IREM AMERICA’라는 회사 이름이 보이는데, ‘IREM AMERICA’라는 회사는 특이하게도 처음 사업을 시작한 것이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아니라 설계회사였다. 원래 설계회사로 시작했지만, 사업 현장에서 보이는 것들을 게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나 보다(사내 교육용으로 쓰고 싶었나?).

■ 망치맨이냐 왕망치냐 오함마냐 ‘망치소리’ 새록

이 게임은 아케이드(오락실)판으로 먼저 출시되고 가정용 콘솔 게임기용으로 이식되었는데, 이식된 게임은 이름이 다르다. 이 게임의 일본어판은 ‘힘내라 대공의 겐상’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필자의 동네 오락실에는 영문판 기판이 들어와 있었고, 아마 대부분의 오락실에 일본어판이 아니라 영문판이 있었을 것이다(필자의 동네 주변의 몇 몇 오락실에서는 전부 영문판이었기 때문에..)

일본어판 –‘힘내라 대공의 겐상’
이 게임은 동네 오락실 구석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여타의 다른 게임보다는 인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 빈 자리가 났을 때 한두 번 해보는 정도였지, 이 게임 하나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떤 동네에서는 인기가 높았다고 하던데, 이것도 동네마다 차이는 있나 보다.

필자의 동네 오락실에서는 메인(중앙 자리) 보다는 구석진 자리에 놓여있었다. 아마 동전 투입량이 다른 게임에 비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게임은 게임 자체가 간단하고 쉬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물론 뒤로 갈수록 엄청 어려워진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 중에 하나였다.

배경음악도 흥겹기 때문에 신나는 기분으로 망치를 휘두르면서 게임을 했었는데, 나중에서야 실제 공사장 현장에서 일해보고 나서 전혀 흥겹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다. (역시 게임과 실제는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

■ ‘망치의 달인’ 망치 하나로 세계 제패

콘솔 게임기 버전 –‘힘내라 대공의 겐상’
이 게임에서는 그 흔한 아이템 업그레이드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망치 하나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이 정도 되면 과히 ‘망치의 달인’이라 불려도 되겠다. 이 망치도 잘 보면 재질이 스틸도 아니고 목재인데, 내구성이 상당하다(저런 망치 하나 갖고 싶다). 공사장계의 ‘토르’ 정도 되는 듯하다. 게임의 진행도 망치 하나 들고 하는 것만큼이나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기본 조작 버튼이 망치 휘두르기와 점프밖에 없다. 게임 중간에 아이템이라고는 붉은 고추가 나오는데, 이것을 먹으면 온 몸이 화끈 달아올라서 망치로 천하를 제패(制霸) 할 기세로 망치를 휘두르며 달려 나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망치라도 좀 점차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런 아쉬움이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아이템 업그레이드 따위는 없어도 이 게임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아마도 필자가 비슷한 게임을 만든다면 처음에 고무 망치에서 장도리에서 쇠망치에서 은 망치, 금 망치, 마지막에는 다이아 망치로 이어지는 업그레이드 기능을 두고 아이템 업그레이드 + 강화 기능에 강화 할 때 각 % 확률로 아이템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는 ‘강화 안정 젤리’ 등을 팔고.. (그러다 망하지..)

게임 중에 이렇게 아이템을 단순하게 가져가는 게임도 사실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재미있는 것을 보면 중요한 건 게임의 본질이지, 아이템이 업그레이드되고 강화 되는 것 등에 따른 부속물이 아닌가 보다.

낯익은? 공사현장
게다가 이 망치는 꽤나 강력해서 사실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보통 공사 현장에서 ‘보로꾸’라 불리는 저 벽돌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주로 담에 벽을 치는데 사용한다. 오랜만에 게임을 다시 하면서 느낀 점은 20세기나 21세기나 공사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십 년이 흘렀는데도 이 게임만큼 위화감 없는 주변환경 묘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게임을 하면서 전문 용어들이 낯설지 않은데, ‘구루마’라 불리는 저 손수레도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이다. ‘아시바’ 깔려있는 공사 현장 스테이지 구성 등 건설현장에서 ‘노가다’라 불리는 일을 해 본 분들이라면 너무나 정겨운 장면들이 등장한다.

게임을 시작할 때 나오는 ‘Let’s get Busy!’ 하는 음성도 꽤나 흥겹다. 필자는 이 음성이 ‘Busy’라는 단어가 ‘Billy’ 라고 들려서 주인공 이름이 ‘Billy(빌리)’ 인줄 알았다.

■ 설계회사 출발 게임사....그래서 흥겹고 즐거운 공사현장?
실제로 공사현장은 굉장히 힘들고 벅찬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게임에서만큼은 그 과정도 신나고 즐겁게 그려지고 있다. 게임을 하면서 시멘트 부대도 망치로 막 맞받아치는데, 신기하게도 포장이 터지지 않는 것을 보면 굉장히 꼼꼼하게 포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나중에 어떻게 뜯지?). 게임을 하는 내내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공사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과연 이 게임의 제작사가 왕년에 설계회사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필자가 공사장 현장에서 일할 때 하루 일이 끝나고 저녁이 되어 삼삼오오 술자리에 모이면 아저씨들에게 제일 많이 듣던 얘기가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되게 하기 싫어서..’ 라는 아버지들의 힘겨움이 녹아 든 자식 사랑의 말이었다.

그런 마음을 한참 사춘기 시절의 자녀들이 얼마나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공사장 현장에서 같이 땀 흘리며 일하다 보면 이 땅에 수많은 아버지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뭐 게임 하나 하면서 그렇게 진지하고 복잡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 이 게임을 생각하면 단순한 게임의 재미 뒤에는 그런 수많은 아버지들의 아픔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동전 하나에 가치를 소홀히 하지 말고 더더욱 열심히 망치질해서 최종 보스까지 꼭 엔딩을 보도록 하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원래 목수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이 땅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일해서 얻은 집이 하루 아침에 ‘쿠로모쿠 조합’ 이라는 악덕업체에서 철거반을 보내 다 때려 부셔 버린다. 게임의 내용은 이렇게 성실한 주인공 목수가 홀로 나무 망치 하나로 악의 세력과 싸워 나가는 과정을 그린 눈물 나는 스토리이다. 그러다 보니 망치로 때려 부수는 것에는 자비가 없다.

게임 중간에 보면 ‘야쿠자’들의 자동차들도 망치 하나로 다 때려 부수고, 마지막 최종 보스 악덕업체 사장도 망치로 때려준다. 그런데, 이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도 그렇게까지 악인들은 아니었나 보다. 최종 보스인 사장도 결국에는 ‘인생에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주인공 ‘겐’씨의 말을 듣고 깨우침을 얻는다. 아마도 이 게임이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돈’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메시지라면 몇 십 년이 지난 현재에까지 유효한 것이 아닐지..

■ 허영만 만화 '망치', 같은 시대 또 다른 망치

허영만의 만화 '망치'
요즘 친구들이야 ‘망치’ 들고 다니는 캐릭터 하면 ‘토르’를 떠올리겠지만, 필자가 어릴 적에 ‘망치’는 ‘허영만’ 선생님의 ‘망치’라는 만화였다. 만화책의 영문 표지도 있는 걸 보니 해외판으로 수출도 됐나 보다.

만화책의 표지 뒷장에 보면 “망치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내고, 해결하는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해 이루어내는 어린이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린이에게 희망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만화 주인공으로서의 인물이 망치였다”라는 작가의 설명이 나오는데, 우연하게도 이 게임하고 분위기가 딱 맞아 떨어진다.

물론 허영만 선생님이 이 게임을 보고 나서 만화를 그렸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판 스마트 폰 게임으로 ‘HAMMERIN HARRY’를 만든다면, 이 만화를 원작으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과연 허영만 선생님이 ‘망치’ 캐릭터 사용을 허가 해 주실지 모르겠다(저와 같이 게임 한 번 만들어 보시죠? 수익금의 대부분을 한국 만화 영화 발전 기금으로 후원하겠습니다).

■ 필자의 잡소리

대망의 엔딩
게임의 엔딩 장면에서는 한때 자신을 괴롭히던 악당들도 마지막에서는 모두 화해하고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는다. 필자가 본 게임 중에 가장 훈훈한 장면이 아닌가 생각 된다. 주연도 조연도 그리고 악당 역의 캐릭터들도 모두 한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고 난 뒤에 기념 촬영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결국에는 이렇게 화해하고 서로 돕고 이해하는 장면으로 기록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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