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엔씨소프트 전격 인수... 김택진, 엔씨 대표직 유지

지난해 9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넥슨 임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게임업계 현황과 전망 등 여러 얘기를 했지만 단연 주목을 받았던 발언은 “엔씨소프트가 넥슨과 같이 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8일,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가 갖고 있는 지분 14.7%를 넥슨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김택진 대표에게 남아있는 지분은 9.99%로 넥슨에 이은 ‘2대 주주’가 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각개 약진’을 공언했던 엔씨소프트가 넥슨에 넘어간 것일까.

▲ 김정주 NXC 대표
▲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게임업체 대형화 불가피”

김택진 대표가 넥슨에 대주주 지분을 넘긴 것은 국내 게임산업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산 게임의 국내 PC방 시장 점유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출시된 ‘리그오브레전드’는 외산 게임으로는 6년 만에 PC방 점유율 1위(게임트릭스 기준)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달 나온 ‘디아블로3’는 고객들이 몰려들면서 게임이 다운되는 일까지 벌어질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두 게임의 PC방 점유율은 지난 7일 기준으로 37.1%에 이르렀다. 국내 게임 순위 1등을 달리던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3위(6.86%)로 주저앉았다. 리니지1와 리니지2는 시장 점유율이 올해 반토막났다.

엔씨소프트는 블레이드앤소울을 다음달 내놓아 상황을 역전시키겠다고 다짐해왔지만 디아블로3 등 외국산 게임의 기세가 워낙 거세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택진 대표는 “국내 PC방 게임점유율 상위 1, 2위가 외국 게임으로 바뀌었고 게임시장은 이제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이사직 그대로 유지할 듯

김택진 대표는 김정주 넥슨 대표의 대학(서울대) 1년 선배다. 각자 게임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김정주 대표가 2009년 제주도로 본사를 옮긴 넥슨의 지주회사 NXC로 사무실을 이전한 뒤에도 두 사람은 종종 등산을 같이 즐겼다고 한다.

이번 인수·합병(M&A)은 두 사람이 직접 만나 성사됐다. 두 사람은 외국산 게임에 맞서 국내 시장을 지켜내고 나아가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이다. 넥슨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67.2%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해 국내에서 유통시키고 있는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해외 유통망을 적절히 활용하면 게임 판매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넥슨 쪽에서 보면 ‘경쟁력 있는 게임을 갖고 있는 업체에 투자’하는 기존 사업방식을 또 다시 보여준 셈이다. 넥슨의 수익원인 ‘던전앤파이터(네오플)’ ‘메이플스토리(위젯)’ ‘서든어택(게임하이)’은 기존 회사의 지분을 인수해 확보한 게임들이다. 지난 2월에는 ‘프리스타일’ ‘룰더스카이’ 등으로 유명한 제이씨엔터테인먼트의 최대주주가 됐다.

김택진 대표는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직을 계속 맡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지분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의 상징적인 인물인 데다 엔씨소프트의 게임을 계속 총괄하며 개발했기 때문에 넥슨 입장에서도 김 대표가 대표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충격적인 뉴스는 처음”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 인수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 채 이뤄졌다. 지난 7일 최종 결정이 났는데도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양사 모두 사내 임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8일 오후 4시40분께 ‘공시’를 통해 공개했다. 넥슨이 인수한 지분이 14.7%인 것은 ‘독과점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상장사 주식 15% 이상을 인수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기업결합신고를 하면 공정위로부터 시장의 자율 경쟁을 제한하는지 여부 등을 심사받아야 한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결합에 대해 게임 업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매출이 줄어 게임업계 4위로 주저앉았지만 매년 3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한 ‘리니지’ 시리즈라는 캐시카우가 있기 때문이다. 차기작인 ‘블레이드앤소울’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도 많았다. 성종화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게임업계만 10년 이상 분석하면서 이렇게 충격적인 뉴스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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