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34 이정엽 ‘인디 게임의 성립 조건’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34 이정엽 ‘인디 게임의 성립 조건’

지난달에 열렸던 ‘인디게임 개발자 서밋’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성공했거나, 앞으로 게임을 출시할 예정인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게임을 포스트-모템 형식으로 회고하거나 앞으로 출시될 게임에 대해 소개하는 행사였다. 인디게임에 관한 행사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한국에서는 아주 귀중한 의미의 행사였다.

■ “대규모 자본 벗어나 개인-팀이 만드는 게임”
예정된 서밋의 발표가 대부분 끝난 뒤 발표자 몇 분과 인디계에서 이름 있는 인사들이 모여서 좌담을 하는 것으로 공식적인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이 자리에서 좌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인디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이 인디라고 생각하면 모두 인디다"라는 답변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답변이 있었지만, 인디 게임은 대규모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이나 작은 규모의 팀이 만드는 게임이라는 식으로 중지가 모아졌다. 외견상 문제가 없는 정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인디 게임이 단지 자본의 규모만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인디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 지향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개발자의 지향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디 게임이란 그저 현재 돈을 많이 벌고 있지 않은 게임에 불과하다. 한국의 인디 게임이 어떠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드러난 운동으로 격상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개발자의 시선이 자본의 유무, 게임의 상업적인 성공의 유무에만 쏠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디 게임은 지나치게 산업화된 게임 산업의 매너리즘에 대한 대안으로 자본에 대한 독립이나 게임의 생산 방식과 주제의 독창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북미나 유럽의 사례로 눈을 돌려보면 많은 인디 게임들이 AAA급 게임과는 다른 새로운 인터랙션 메커니즘이나 연출 방식을 통해 게임이 개발자 개인의 표현 매체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 영화 '인디 게임: 더 무비' 출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07080/
■ 다큐멘터리 ‘인디 게임: 더 무비’
실제로 해외의 많은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이유로 ‘개인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들고 있다.

2011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인디 게임: 더 무비’에서 ‘브레이드(Braid, 2008)’의 개발자 조나단 블로우와 ‘슈퍼 미트 보이(Super Meat Boy, 2010)’의 개발자 에드문트 맥밀렌과 토미 리페네스는 영화 내의 인터뷰에서 매끄럽게 다듬어진 대규모 스튜디오의 상업용 게임과는 달리 “인디 게임은 개발자의 개인적인 흠과 약점들을 게임 속에 삽입한 뒤, 이에 대한 반응을 지켜보고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인디 게임은 여타의 예술 장르와 같이 자기표현의 매체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게임 디자인은 글쓰기와 같은 의사소통의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대규모 스튜디오로의 취업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인디 게임을 선택한 소수의 개발자들이다.

■ 기존 게임과 다른, 새 인터랙션 메커니즘 ‘브라더스’
그렇다면 인디 게임은 이런 개인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위해 어떤 방식의 게임을 만들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기존의 게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터랙션(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동적인 상호작용, interaction) 메커니즘을 고안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인터랙션 메커니즘이란 스토리텔링이나 퀘스트 등보다 더 밑바닥에서 게임을 추동하는 토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탈관습적인 메커니즘의 고안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PC용 MMORPG와 FPS에서 캐릭터의 이동을 위해 사용되는 W-A-S-D 키의 사용과 같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관습들을 포기하는 순간 기존의 관습에 익숙한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게 외면받기 쉬운 것이다. 때문에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서 토대에 해당하는 메커니즘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에 스웨덴의 소규모 게임 개발사 스타브리즈 스튜디오(Starbreeze Studio)에서 개발한 ‘브라더스: 두 아들의 이야기(Brothers: A Tale of Two Sons, 2013)’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랙션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작품의 의미를 더욱 심화시킨 경우에 해당된다. 이 게임은 익사한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두 아들들이 병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명약을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 작품의 인터랙션 방식에 있다. 일반적인 게임과는 달리 이 게임에서는 두 형제를 동시에 조종해야 한다. 현 세대의 콘솔의 컨트롤러에는 두 개의 스틱이 부착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스틱을 동시에 움직여 각각의 캐릭터를 동시에 이동시켜야 한다. 캐릭터의 행동은 컨트롤러의 하단 양 옆에 부착된 트리거를 누르면 된다. 게임 내의 퍼즐들은 대부분 두 명의 형제를 동시에 움직여서 진행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 '브라더스: 두 아들의 이야기' 출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25080/
이는 기존의 게임 진행방식과 상당히 다른 편이다. ‘레고 배트맨’시리즈처럼 예전에도 둘 이상의 캐릭터를 서로 번갈아가며 진행해야 하는 게임은 많았지만, ‘브라더스’처럼 두 명의 캐릭터를 하나의 컨트롤러로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동생 나이(Naiee)의 조종은 오른쪽 스틱으로, 형 나이아(Naia)의 조종은 왼쪽 스틱으로 하게 되어 있지만, 둘의 위치가 뒤바뀔 경우 두 손은 생각만큼 정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시선과 행동의 축이 불일치하면서 빚어지는 실수에 해당되는데, 이 때문에 ‘브라더스’는 한 게임평론에서 ‘좌절감을 안겨주는 조작 시스템(frustrating controls)’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탈관습적 인터랙션 메커니즘은 나름의 의도한 바가 존재한다. 실제로 게임을 끝까지 진행하다보면 이러한 조작 시스템 덕분에 형제들의 협동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쉽지는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낯선 조작 방식을 통해 작품 전체의 ‘낯설게 하기(Verfremdung)’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는 두 형제 중 특정 캐릭터에 몰입을 하게 되지도 않고, 단순한 방관자의 위치도 아닌 곳에서 게임을 관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게임의 연출자인 요제프 파레스(Josef Fares)는 레바논 출신의 스웨덴 국적의 영화감독이다. 독립영화계에만 몸담아온 파레스는 게임의 기존 관습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스타브리즈 스튜디오 역시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여서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이러한 낯선 조작 방식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공주를 구출하고자하는 팀 이야기 ‘브레이드’

‘브레이드(Braid, 2008)’ 역시 인터랙션 메커니즘의 변화를 통해 미학적 효과를 부여하려고 한 게임이다. ‘브레이드’에서 게임 진행 중 사용되는 가장 돋보이는 인터랙션은 Shift 버튼을 누를 때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도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Prince of Persia: The Sands of Time, 2003)’같은 게임에서 비슷한 형태의 인터랙션 메커니즘이 구현된 적은 있다. 하지만 ‘브레이드’에서 시간을 뒤로 돌리는 인터랙션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작용하게 된다. 일반적인 플랫폼 게임과 마찬가지로 ‘브레이드’는 공주를 구출하고자 하는 팀의 이야기를 그 소재로 하고 있다.

▲ '브레이드' 출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6800/
그런데 특이하게도 ‘브레이드’는 시작부터 월드 1이 아닌 월드 2에서부터 출발한다. 월드 6까지 클리어하고 나면 시간 자체가 처음부터 거꾸로 돌아가는 월드 1이 시작되고 엔딩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엔딩에서 팀은 공주를 구출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공주를 구출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지금까지의 구출하려고 했던 장면을 그대로 플래시백으로 다시 보여준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재현되는 장면을 통해, 플레이어는 팀이 공주를 구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공주를 쫓고 있는 악당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팀이 공주를 구출하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집착이며, 공주는 그 집착의 대상이었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엔딩 직전에 잠깐 등장한 월드 1은 거꾸로 흐르는 시간이 실제의 시간이며, 게임 속에서 바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팀의 착각이자 환영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이 게임의 개발자인 조나단 블로우가 인디 게임을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와 관련된 메시지들을 스토리 내에 연출했다는 점은 인디 게임이 지닌 자기표현의 매체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 KGC 스타트업 토론회 ‘작가적 색다름’ 주장 빠져 씁쓸
지난주에 열린 KGC의 모바일 게임과 관련한 한 라운드테이블 발표는 현재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나 이사들이 나와 모바일 게임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여기에서 이 대표들은 겉으로 보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주문을 참가자들에게 던졌다. 우선 한 대표가 모바일 게임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작가주의를 버리고, 무조건 대중적인 취향을 좇아야 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이 점점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으니 해외 모바일 시장을 목표로 삼아야 된다는 주문도 동시에 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여러 게임 플랫폼 생태계에 익숙해진 해외유저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자기만의 새로운 작가적인 색다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차별점도 없이 대중 추수적인 어중간한 게임으로 해외 오픈마켓 시장을 두드리는 것은 우리 게임계의 인식이 여전히 자본주의의 천박함 속에 갇혀 있음을 드러내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이러한 천박함이 부끄러움으로 바뀌어 내 얼굴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한경닷컴 게임톡 이정엽 객원기자 elises@snu.ac.kr

■이정엽은?
1980년대 초 아케이드 게임과 아버지가 사주신 애플 ][e와 북미판 닌텐도를 시작으로 게임을 하드코어하게 즐기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7년째 게임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을 개설해 왔다.

이 수업들을 통해 제자들의 스타트업을 장려하고 후원하고 있다. 현재 모바일 게임회사 엑스몬게임즈의 감사 겸 서울대 연합전공 정보문화학 연구교수 및 카이스트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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