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건담’으로 새 오타쿠 형성...일본 애니 3대 히로인 ‘린 민메이’ 게임으로

한국과 역사적으로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지리적으로는)가깝고도 (정서적으로는)먼 나라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이라는 섬나라에는 수많은 전설과도 같은 게임과 애니메이션들이 있다. ‘건담’과 같은 콘텐츠는 이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수없이 많은 매체로 등장한다. 그 안에서 계파가 갈리는 등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그에 못지않게 또 하나의 레전드급이 있다고 한다면 필자는 ‘마크로스’를 꼽고 싶다.

[기체미학의 절정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을 다른 말로 ‘히로인’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등장한 애니메이션에서 3대 히로인을 꼽는 논의가 한참 전에 있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그 당시 최종후보로 결정된 히로인들이 각각 ‘베르단디’와 ‘마도카’ 그리고 ‘린 민메이’이다.‘린 민메이’는 바로 지금 소개하는 ‘마크로스’라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 주인공 중에 한 명이다.

■ 전설의 탄생 ‘린 민메이’.... 슈퍼로봇 시대 ‘마크로스’ 등장
전설의 히로인 ‘린 민메이’는 ‘마크로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초시공요새마크로스’에서 애니메이션이 등장할 무렵의 1980년대는 ‘슈퍼로봇’의 시대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온 세상이(정확히는 일본과 그 부근에 있는 몇몇 나라였지만..) ‘슈퍼로봇’의 세상이었다.

흔히 ‘건담’ 역시 ‘슈퍼로봇’ 계열과 ‘리얼로봇’ 계열로 구분되기도 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슈퍼로봇’은 등장하는 로봇 기체 하나가 궁극의 무지막지한 파워를 자랑하며 한 대 출동하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의 평화까지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로봇들이 등장한다.

흔한 예로 ‘마징가Z’나 ‘게타’, ‘그렌다이저’ 등 딱 1대밖에 없는 로봇들이고 이 로봇에 탑승할 수 있는 주인공은 열 받게도 필자보다도 새까맣게 어린 녀석들뿐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 마다 평생을 죽어라 로봇을 개발하느라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김 박사’님들이 불쌍할 때도 있다.

‘리얼로봇’ 계열이란 쉽게 얘기해서 지금의 전쟁 장비들처럼 양산형으로 여러 대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며 여기에 탑승하는 인원도 대부분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거나 그다지 특출 난 인재들은 아닌 경우가 많다(그래도 주인공들 보면 일반사람보다는 뭔가 하나라도 뛰어나더라..).

즉, 로봇 그 자체는 현재 탱크나 전투기와 같은 미래의 전쟁병기 정도로 등장하는 것이다. 단 한 대 출격해서는 자살행위나 다름없고 현재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성능과 물량으로 승부를 내는 단지 하나의 전쟁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설정된 것들이 많다. 사실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에 대한 얘기는 굉장히 심오한 내용으로 필자는 대략적으로 간략한 설명으로 그칠까 한다(더 자세히 파고들면 이 글이 끝나질 않아..).

■ ‘마크로스’는 3년 늦게 등장한 ‘제2의 건담’
‘마크로스’는 ‘제2의 건담’이라 불리기도 했다. ‘건담’보다 3년 정도 늦게 등장했지만, ‘건담’과는 또 다르게 본격적인 ‘오타쿠’들에 의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멀리 바다 건너 미국에서 ‘재패니메이션’의 신화를 써 나가며 승승장구하던 ‘오타쿠’들답게 그 당시 ‘리얼로봇’의 대표작이었던 ‘건담’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마크로스’가 그 당시 ‘건담’과 갖는 차별점이 있다면 매우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된 배경 설정이 ‘리얼’의 계보를 잇는다면, 전투장면과 같은 부분에서는 다소 과하게 보이는 ‘슈퍼’ 계열의 다소 억지스럽고 과장 된 표현이 보인다는 것이다.

[노래하러 달려나가는 경쾌한 걸음의 ‘이이지마 마리’]
하지만, 탄탄하게 설정된 시나리오와 ‘하루히코 미키모토’의 그림체와 ‘이이지마 마리’가 맡은 ‘린 민메이’의 노래 이렇게 삼박자가 어우러져 ‘마크로스’는 사실 이들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천사의 그림물감’ 같은 노래는 필자가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고 할 만큼 굉장한 명곡이다. ‘마크로스’는 당시 분위기인 ‘리얼’의 정통성에서 조금은 벗어난 길을 걷게 되는데, 여기에 등장시킨 아이템이 바로 ‘아이돌’이라는 개념이다. 그 중책을 맡은 것이 3대 애니 히로인 중에 한 명으로 꼽히는 ‘린 민메이’이다.

[젊은 시절의 ‘린 민메이’]
애니메이션 속에 ‘아이돌’로 등장하는 ‘린 민메이’의 등장과 함께 그녀의 노래를 실제로 부른 ‘이이지마 마리’ 역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실제로 그녀는 ‘천사의 그림물감’ 외에도 역시 명곡인 ‘사랑 기억하고 계십니까?’도 불렀는데, 이것을 계기로 애니매이션‘마크로스’는 기존의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다르게 ‘노래’라는 컨셉을 주요 아이템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천사의 그림물감’ 노래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데, 기본 버전 외에도 극장판엔딩에 쓰였던 편곡된 노래도 굉장히 좋다(뭔가 더 애절하달까..).

그녀는 무려 노래 하나로 지구의 운명과 우주의 평화를 지켜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음을 그녀에게 감사하자.

[중년의 ‘린 민메이’–‘화무십일홍’]
언젠가 중년이 된 ‘린 민메이’가 과거를 회상하며 ‘천사의 그림물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필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갑자기 눈물이 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던 기억이 난다(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데 여기에 그 한 번을 쓸 뻔 했다).

아마도 ‘마크로스’를 보신 분들이라면 필자의 감정을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노래 하나로 전 우주의 평화를 지켜냈지만 정작 그냥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는 떠나보내야 했던 그녀의 비운을 아는 분들이라면 저 장면에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나쁜놈)히카루’가 마이크를 건네주자 젊은 시절의 ‘린 민메이’로 돌아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발랄함 속에 감춰진 서글픔이 느껴지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쏟지 않으면 체온이 식은 인간이다.

■ ‘마크로스’, 온갖 게임으로 거듭나다
어째 게임 얘기하려다가 이렇게 말이 길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정으로 필자는 오락실에 ‘마크로스’ 슈팅 게임이 등장했을 때 정말 미칠듯이 좋았다. 그 당시에는 ‘슈퍼 코브라’ 아니면 ‘라이덴’과 같은 게임들을 주로 했던 시절이었다.

[오락실에 뙇!]

물론 ‘전설’의 애니메이션답게 온갖 종류의 ‘마크로스’ 게임들이 나왔지만, 필자가 제일 좋아했던 ‘마크로스’ 게임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슈팅 게임이었다.

그 당시 오락실 구석에 앉아서 ‘타소가레~ 우츠스~ 마도베에토~ 마이오리루~우우~ 키라메쿠~ 소요카제~ 스이코응데~’ 하면서 ‘천사의 그림물감’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총알 발사 버튼을 누르는 중학생 까까머리의 필자를 보던 분들이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 내내 오락실에 가면 꼭 이 게임은 한판 이상 의리상 꼭 했던 것 같다. 이 게임은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 마다 중간 중간에 삽입 된 애니메이션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이 장면이 나오면 필자도 같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슈팅 게임으로 이 게임은 그 당시 등장했던 다른 슈팅에 게임에 완전히 새롭다거나 뭔가 특별함 같은 것은 없었지만, ‘마크로스’는 ‘마크로스’ 그 자체로 이미 특별한 존재다. 그 이전에 ‘MSX’버전으로도 출시된 적이 있었지만, 그 때에는 아무리 팬심을 200% 발휘한다 해도 무언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은 죄책감에 몰입되기는 쉽지 않았었다. 어느 분의 말처럼 ‘못 만들어서 기억에 남는다’라고까지 할 정도의 퀄리티였으니..

오락실(아케이드)용으로 등장한 ‘초시공요새마크로스’ 슈팅 게임 이후에도 ‘세가 새턴’이나 ‘플레이 스테이션’용으로 다른 버전의 ‘마크로스’ 게임들이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 슈팅 게임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애니메이션의 영광을 등에 업고 게임 자체의 재미는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별로 없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오락실용 ‘마크로스’ 게임은 슈팅 게임이면서 슈팅 그 자체에 재미도 충분한 수작 게임이다. 설사 ‘마크로스’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해도 게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으로 보통 ‘원작을 살린’이라는 설명으로 쓰고 ‘원작보다도 못한’으로 귀결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사랑 기억하고 계십니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게임에서도 나온다.]
게임 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들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이라면 추억에 잠길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고, 스토리 진행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좀더 현실감 있는 광원 처리나 기체 질감들을 추구하려던 당시의 슈팅 게임들에 비해 오히려 이런 원색적인 컬러를 선택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리즈로 인식될 수 있었고 그 점이 원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더 게임에 몰입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슈팅 게임에서도 종종 존재하는 시스템이기도 했지만, ‘마크로스’에서는 변신 시스템이 존재한다. 일종의 갑옷 역할을 하는데 변신 상태에서는 ‘1회 격추 방어권’을 주기 때문에 변신 상태의 기체를 보고 있으면 뭔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갑옷이 깨지면 뭔가 굉장히 초조하고 불안한 느낌이..

[발진!]
게임 화면의 시작은 뭔가 메카니컬한 미래적인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이덴’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게임 초반부는 그리 어렵지 않게 클리어 할 수 있고 보통 기본적으로 슈팅 게임을 접해본 분들이라면 5 스테이지 이상은 충분히 갈 수 있다. ‘동전 투입 대비 시간 효용성’이 굉장히 높은 게임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개발자가 후반에 초심을 잃었는지 난이도는 극상으로 치닫게 된다. 솔직히 필자도 아직까지 원 코인으로 엔딩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 당시 웬만한 게임들은 거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로 이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못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슈퍼 패미컴’기종으로 이식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추억의 IMPLAY]
이렇게 매일 같이 오락실에서 ‘마크로스’ 게임을 하고 온 날이면 저녁에 집에 가서 PC에서 다시 한 번 ‘마크로스’의 기분을 만끽하곤 했는데, 그 당시 하이텔의 ‘김형태 (jam777)’님이 만든 IMS 파일 덕분에 매일 저녁에는 집에서 혼자만의 노래방이 열리기도 했다. (완전 감사합니다. 지금은 뭐하고 계실는지..)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MP3’니 ‘OGG’니 하던 것들은 대중화 되기 이전이었고, ‘ROL’파일이나 등‘IMS’파일 으로 음악을 접하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그 당시 PC에 사용하던 OS는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Window 95’조차 등장하기 이전이었고 대부분 DOS라는 운영체제 위에 Windows 3.1을 얹혀서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마크로스’는 만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음악적으로도 여러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아마 이 뒤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들 역시 ‘마크로스’의 성공을 참고삼아OST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도 수많은 ‘마크로스’ 시리즈들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마크로스’의 위상은 오직 단 한 명의 히로인 ‘린 민메이’가 없었다면 사실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베르단디’ 없는 여신님을 생각할 수 있나..)

■ 필자의 잡소리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우주 최고의 평화지킴이 아이돌 ‘린 민메이’는 설정상 1993년 10월 10일 출생으로 지금은 지구 행성 어딘가에 태어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93년 출생이라면 2014년 현재 이제 술, 담배가 가능한 법적으로 성인이 된 것인가? (별다른 의미는 없다).

[‘사랑.. 기억하고 계십니까?’]
다만, 그녀는 2016년 7월 7일자로 ‘마크로스’ 시리즈의 공식연표에 〈2016년 메가로드-01과 함께 은하계 중심부에서 소식이 끊겼다〉 라고 설정되어 있다.

앞으로 그녀와의 이별까지 1년 9개월도 남지 않았다.

비록 ‘건버스터’는 아니지만, 언젠가 1만 2000년 뒤에 그녀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그 날을 위해 ‘オカエリナサイ(오카에리나사이)' 글자를 준비 해 둬야 할까..

참고로 필자는 ‘건버스터’의 엔딩 장면에서도 눈물이 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로써 태어나서 세 번 울 것 중에 두 번을 참아냈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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