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출시 ‘레이커즈vs셀틱스 NBA 플레이오프’ 게임 전설 탄생

필자는 사실 구기종목에 매우 취약한 신체적인 캐릭터 속성을 타고났다. 축구는 물론이고 야구, 배구, 농구, 족구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단 하나 예외적으로 잘 하는 운동이 있다면 지름 6mm BB탄으로 하는 서바이벌 게임은 조금 잘 하는 편에 속한다(BB탄도 공이라면 공이지..).

그밖에 모든 구기종목에서 없는 셈치고 하기에도 같은 팀에 오히려 피해를 증가시키는 폭탄 같은 존재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 한 꿈들은 게임에서 이뤄주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 삼아 살아갈 수 있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유독 농구가 인가 종목이었다. 갑자기 청소년들에게 농구 열풍이 불어 닥친 이유는 예부터 유명했던 두 라이벌 연고전, 고연전(‘연’이나 ‘고’ 중에 앞에 무슨 글자를 붙이느냐에 따라 출신 학교 사람들에 원성을 피하기가 어려운 그 경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국민학교 시절 ‘드래곤볼’ 만화를 떼고 그 다음 단계로 접한 만화가 거의 대부분 전국을 휩쓴 ‘슬램덩크’라는 만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북산고교 스타팅 멤버
이때부터 중학교에는 지금의 ‘OO페이스’같은 고가의 아웃도어가 너도나도 하나씩은 꼭 갖고 있어야 되는 ‘Must Item’이었다면, 우리 때는 실생활에는 사실 불편한 농구화가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한쪽 어깨가 짓눌리는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명 망치 가방이라 불리는 농구 패션이 대 유행이었다.

두발 자유화에 탄압을 받으며 일찍이 일제 시대에 면암 최익현 선생님이 일제에 항거하며 말했던 ‘차두가단차발불가단(此頭可斷此髮不可斷-내 머리를 자를지라도 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을 외쳐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몽둥이 찜질과 부모님 소환의 이벤트뿐이었다. 그 시대에 패션이라는 이름의 겉멋을 치장할 수 있는 수단은 신발과 가방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농구화에 농구가방을 둘러메고 학교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농구화 가격은 저렴한 편에 속하는 것이 6만~8만원대였고 유명 선수의 이름을 딴 농구화들은 못해도 10만~20만원 상당의 고가장비였다. 거기에 뭔 놈의 펌프 액션이니 에어쿠션이니 하면서 실생활에 얼마나 유익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요상한 이름이 붙어있으면 가격은 훌쩍 뛰기도 했다.

그 당시에 시내버스비가 110원 정도였고 짜장면 한 그릇이 1500~1800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10만원이 넘는 농구화 사달라고 얘기 하는 것은 ‘제가 요즘 덜 맞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빗자루로 맞아 보고 싶은데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 일명 ‘망치가방’
거기에 더해서 농구가방까지 사달라고 얘기하는 것은 철없는 청소년기에 부릴 수 있는 객기의 끝에 닿아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필자도 그 당시 농구화와 가방을 얻기 위해 온갖 생떼와 협박에 이른 끝에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가는 그날 그 뿌듯했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서 사회에 진출하여 드디어 돈벌이를 시작했을 때 월급을 받는 날마다 그 당시에 필자가 생떼를 부려 가정 경제에 어려움을 안겨줬던 것이 떠올라 늘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 고가의 아웃도어를 입고 뿌듯해 하는 청소년 여러분들도 훗날 분명히 죄송한 마음이 들 날이 있을 것이다(그러니 맘껏 입어두어라..).

어쨌든, 뭐든지 계층 나누기 좋아하고 서열 가르기 좋아하는 한국적인 풍토에서 학교라고 다를 것은 없었고 농구화의 가격대에 따라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적 질서가 유지되기도 했었고 그래서 너도나도 기를 쓰고 메이커 농구화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었다. 어디 시장에서 사온 이름도 없는 농구화는 부모님의 마음도 모른 채 이런 걸 신고 어떻게 학교에 가냐며 투정 부리던 철없던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참, 생각할수록 죄송하네..)

■ 10편 넘는 대작 농구 시리즈, ‘EA = 스포츠 게임’ 금자탑
이렇게 사회적으로 농구라는 스포츠가 전국적으로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를 넘어 자연스러운 하나의 일상처럼 받아들여지던 시절에 게임이라고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오래 남고 유명했던 게임이라면 보통 고전게임 ‘NBA농구’ 정도로 알고 있는 1989년 출시한 ‘레이커즈vs셀틱스 NBA 플레이오프’ 라는 게임이다.

▲ ‘VGA’도 아닌 ‘EGA’ 그래픽
이 게임을 개발한 ‘일렉트로닉 아츠, Electronic Arts’는 지금의 ‘EA’라는 게임 회사다. 그 이후로 쭉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출시한 ‘NBA’시리즈만 해도 대략 10편이 훨씬 넘는 대작 시리즈다. 다가오는 2019년이면 출시 3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으로도 정통성 있는 시리즈 게임이다. 지금까지 출시한 시리즈만 봐도 거의 매년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하였는데, 목록은 다음과 같다.
1989, 레이커즈vs셀틱스 NBA 플레이오프
1992, 불스vs레이커즈 NBA 플레이오프
1993, 불스vs블레이저스 NBA 플레이오프
1994, NBA 쇼다운, NBA 라이브 95
1995, NBA 라이브 96
1996, NBA 라이브 97
1997, NBA 라이브 98
1998, NBA 라이브 99
1999, NBA 라이브 2000
2000, NBA 라이브 2001
2001, NBA 라이브 2002
2002, NBA 라이브 2003
2003, NBA 라이브 2004
2004, NBA 라이브 2005
2005, NBA 라이브 06
2006, NBA 라이브 07
2007, NBA 라이브 08
2008, NBA 라이브 09
2009, NBA 라이브 10
2010, NBA 엘리트 11 발매 취소
[역대 ‘NBA’출시 시리즈]

1980~1990년대만 해도 EA라는 회사는 아케이드, 액션, 비행 시뮬레이션, 교육용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스포츠 게임 위주로 기억될 정도로 다른 분야보다는 스포츠 게임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EA Sport’라는 로고를 달고 출시되는 게임들이 거의 전 스포츠 분야를 아우를 만큼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게임으로 출시하고 있다(물론 거의 인기종목 위주이기는 하지만..).

▲ 그래도 캐릭터에 그림자 처리도 되어 있다
사실 현재의 ‘EA = 스포츠 게임’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EA’라는 게임회사가 스포츠 게임의 명가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계기도 따지고 보면 1989년에 출시한 ‘레이커즈vs셀틱스 NBA 플레이오프’ 게임부터 시작 된 것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이 게임은 ‘EA’의 역사상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 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라이벌 업체들의 반격이 있던 것이 축구나 야구, 미식 축구 같은 게임이었지만, 농구 게임에서만큼은 1989년 당시에 뚜렷한 라이벌이 없었고 그 뒤로 계속해서 시리즈화하면서 농구 게임 하면 ‘EA’를 떠올릴 만큼 NBA게임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게임이 없었다면 지금의 ‘EA Sports’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명작 게임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기적으로 1990년대는 하늘을 날아 ‘에어 조던’이라는 별명의 ‘마이클 조던’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등 최근에는 은퇴하거나 보기 힘든 선수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세계적인 선수들이 활동한 시대였다. 그 뒤에 나온 ‘샤킬 오닐’도 그의 이름을 딴 농구화나 가방이 나와 인기를 얻기도 했다(참고로 필자의 농구화도 그 상표였다). 게임 자체도 비교적 간단한 조작 키로 게임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밤에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혼자 슛 연습하며 처량하게 보이기도 하는 왕따 같은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2인용 게임이 가능했던 것도 인기의 요인이었다.

그리고 최소 사양이 ‘XT’ 컴퓨터에서 충분히 실행이 가능했다는 것도 인기를 얻은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 당시에 ‘XT’보다도 낮은 사양의 PC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MSX’와 같은 8비트 컴퓨터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 ‘IBM-PC’ 호환을 ‘PC’ 기준이라고 본다면 ‘XT’는 물러설 수 없는 최저의 마지노선과도 같은 사양이었던 것이다. 저 사양에서 충분히 실행될 수 있는 조건과 2인용 플레이 모드를 지원하는 게임 시스템 등 누구나 부담 없이 평생에 한 번 가보기도 힘든 미국의 ‘NBA’ 농구 현장을 뛰어 다니며 상대방 골밑까지 드리블해서 슛을 넣었을 때의 짜릿한 기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참고로 이 게임의 이름 끝에 붙어있는 ‘Play Off (플레이 오프)’는 ‘NBA’게임 경기 룰에 하나이며, 총 30개 팀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82경기를 치르며 순위가 결정된 뒤에 정규 리그가 끝나면 상위 팀들이 ‘Play Off’에 진출하여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을 결정하는 게임을 얘기한다. ‘NBA’는 동부와 서부 이렇게 2개의 컨퍼런스로 구성 되는데, 동부와 서부 각각의 컨퍼런스가 시즌 성적을 가지고 순위를 결정한다. 동부의 15개 팀과 서부의 15개 팀에서 각각 1위부터 8위까지 8개팀이 ‘Play Off’에 진출하는 것이다. 양쪽 합해서 총 16개 팀이 ‘플레이오프 Play Off’에서 동부는 동부에서 서부는 서부에서 경기를 마치면,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1위 팀이 붙는 결승전을 ‘NBA 챔피언십’이라고도 하는 ‘NBA Finals(NBA 파이널)’에 진출하여 여기서 이기는 승리 팀이 그 해의 ‘NBA’ 우승팀이 되는 것이다.

조금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미국 농구의 경기 진행 방식이다. 그 ‘플레이오프’ 중에서도 역사상 최대의 라이벌로 꼽히는 LA의 ‘레이커스’팀과 보스턴의 ‘셀틱스’팀의 ‘플레이오프’전이 이 게임의 핵심 스토리다. 한국으로 치자면 ‘연고전’, ‘고연전’ 정도? (아 도대체 이거, ‘연고전’이던 ‘고연전’이든 한국 맞춤법 통일 기구나 어디서든 표준 좀 정해주시죠).

‘레이커스’와 ‘셀틱스’는 1969년 ‘NBA 챔피언십’ 경기에서 처음 맞붙은 것을 시작으로 무려 10차례 이상 결승전에서 피 튀기는 혈전을 치른 팀들이다(그리고 실제 농구 경기보다는 각 팀의 치어리더들이..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 스포츠 게임의 태동
사실 그 당시는 스포츠 게임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인기를 얻는데 유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비슷한 시기에 스포츠 게임들은 지금처럼 공식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각 선수들의 치밀한 데이터나 유명했던 경기를 재현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적인 요소가 확실히 부족했고, 미국에서는 큰 인기가 있는 ‘미식 축구’라 불리는 ‘National Football League(미국프로풋볼리그)’ 게임들은 정작 출시되어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게임보다는 간혹 TV 주말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들이 대학에서 스포츠를 하는데 그것이 미식축구다 하는 등의 설정으로 서민적으로 공감을 얻으며, 대중의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지나치게 세밀한 설정과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 게임들이 인기를 얻으며 출시되고 있다. 가끔은 수치로만 표현되는 ‘Data’ 그 이외의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과거의 스포츠 게임들이 그리울 때도 있다.

사실 스포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할 만큼 숫자로만 표현되는 선수들의 능력치나 감독의 능력치 등에 관계없이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보이기도 하는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은 1초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투혼(鬪魂)에 따라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예는 실제로도 자주 일어나고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팀들 사이에 경기일수록 더 치열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지켜보다가 결국에 역전승을 거두는 순간 환호성을 질러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때의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필자는 감히 말하건대, ‘스포츠는 숫자가 아니라 정신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가 시작이다.’

그렇다. 사실 필자는 이렇게 진지한 다큐멘터리 같은 스포츠 게임보다는 시속 200Km가 넘는 마구를 던져대는 야구 만화라든가(결국 공이 불타오르면서 날아온다). 난데없이 공 뒤에 호랑이나 독수리가 날아 드는 ‘응? 여기는 사바나인가?’ 하는 축구 게임들을 좋아한다(실제로 아프리카 사바나에는 호랑이가 없다). 그래서 ‘피구왕통키’나 ‘축구왕슛돌이’ 같은 만화를 나이 들어서도 꺼내 보기도 하는 등 아직도 그런 환상에 젖어 살고 있다.

■ 필자의 잡소리
미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알만큼 유명한 지구인 중에 한 명으로 ‘마이클 조던’을 꼽는데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뛰는 모양을 본 뜬 로고에 신발이나 의류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영화 등 다양한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고 ‘농구는 몰라도 마이클 조던은 안다’고 할 만큼 지구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농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형님이다.

▲ 영원한 23번 -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일설에 의하면 그의 등 번호 23번 번호는 ‘마이클 조던’이 어린 시절 형 ‘래리 조던’에게 늘 패배의 쓰린 기억으로 형의 절반이라도 닮고 싶다는 의미로 형의 등 번호였던 45의 절반인 23번을 골랐다고 한다(그런데 절반이면 22.5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그가 썼던 번호는 23번만 있던 것은 아니었고, 형의 등 번호였던 45번이나 1번과 12번을 입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이클 조던’하면 23번으로 많은 상품들이 23번 숫자를 그를 대신해서 사용했다.

그 당시 ‘마이클 조던’은 경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승리해 있다.’와 같이 켄시로의 주문과도 같은 마법을 부리는 전설적인 선수였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늘 혓바닥을 내밀던 그를 보면서 ‘저러다 넘어지면 혓바닥 잘릴라..’ 하면서 괜한 걱정을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1990년대를 관통하는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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