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남코 작품....몬스터 공격시 작살 꼽고 공기 주입 '부풀리기' 매력

땅굴을 파듯이 땅을 파내려가는 이 게임은 ‘디그 더그(Dig Dug)’라는 게임이 원래 이름이지만, 이상하게도 필자의 동네 오락실에서는 원래의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땅굴!’이라던가 ‘땅굴파기’ 등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 게임이 출시된 1980년대를 살아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그때만 해도 이 땅에는 ‘반공’이라는 두 글자가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는 철저한 시대였다. 물론 한국만의 분위기라기보다는 전 세계적인 추세였는데, 정확히는 전 세계에서 미국 쪽에 편을 든 나라들이 대체로 이러했다.

안 그래도 냉전시대 분위기로 냉랭한 세계에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국제 사회에서의 테러리즘에 관한 문제에 심각하게 생각했다. 당시 테러리스트라고 하면 보통 공산주의자들이나 특정 종교의 지나친 원리주의자들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는 북한의 대남침투 ‘땅굴’문제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메이저 버전의 땅굴은 제1땅굴부터 제4땅굴까지 총 4개다. 그밖에 기타 마이너 버전의 땅굴까지 합치면 몇 개인지 잘 모르겠지만, 최초 1974년 11월 15일에 제1 땅굴이 발견된 이후로 이듬해 1975년에 제2 땅굴이 발견되고, 1978년에 제3 땅굴, 그리고 시기가 좀 지나서 이제 땅굴 그만 파나? 할 때쯤인 1990년 3월 3일에 제4 땅굴이 발견되었다. 휴전선 인근에 땅굴들이 차례로 발견됨에 따라 서울 위기론 등이 퍼지고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청 커지게 되었다. 그런 시절에 등장한 게임이 하필이면 땅을 파내려 가는 게임이다 보니 ‘땅굴!’ 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내심 이해가 간다.

무슨 게임 이름 하나 얘기하면서 거창하게 1980년대의 시대상과 전 세계의 국제 질서 분위기와 ‘냉전’ 이데올로기까지 끄집어내는가 하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 분위기는 코흘리개 꼬마였던 필자도 뭔가 사회적으로 일이 있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똘이장군 제 3땅굴편]
지금 보면 좀 심각한 분위기에 정말 그랬을까 싶지만,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에도 ‘간첩 잡는 똘이장군’이라던가 ‘제3땅굴편 똘이장군’이라든가 등장했다.

■ 작살 쏘아 몬스터 제거.....알고 보면 잔인한 게임
어쨌든 필자와 친구들은 어릴 적 이 게임을 ‘땅굴!’이라고 알고 있었고, 친구들이 ‘야 땅굴 파러 가자!’ 하면 이 게임을 하러 가자는 얘기였다. ‘디그 더그’라는 원래의 이름의 게임은 1982년 3월에 발매되었다. 회사는 지금도 유명한 ‘남코(NAMCO)’다.

한국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상관없이 옆 나라 일본은 한국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게임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은데, 다행히? 게임은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인기가 좋아서 가정용 콘솔 게임기(그 당시는 패미컴)로 이식도 되었고 집에서도 동전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불어! 불어!]
게임의 규칙은 굉장히 단순하다. 땅을 파고 이리저리 가로 세로로 움직일 수 있는데, 쫓아오는 적을 작살로 쏘아서 없애면 된다. 직접적인 공격 방법 외에도 중간 중간 바위 덩어리 밑을 파서 바위로 떨구면 깔려 죽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원래 이 게임은 주인공이 작살을 쏘아서 적을 맞히면 적 캐릭터가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게 되어 있는데, 그 당시에 필자와 친구들은 저것이 작살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고 자전거에 바람 넣는 도구(펌프)인줄 알았다. 그래서 앞에 적 캐릭터가 오면 다들 ‘(바람) 불어! 불어!’ 라고 소리지르곤 했었다.

[자전거 펌프]
아니 생각해봐도 당연히 자전거 펌프 같은 걸로 부는 게 아니면 점점 부풀어 오를 리 없지 않은가? 작살로 쏘는데 왜 부풀어 오르지? 어쨌든 필자와 친구들은 당연히 ‘자전거 펌프’라고 알고 있었고 나중에야 실제로 주인공 캐릭터가 쓰는 무기는 ‘작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철썩 같이 ‘자전거 펌프’라고 믿었던 필자는 꽤 충격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에 저런 자전거 펌프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기구로 인기가 많았는데, 그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서부 영화가 꽤나 인기가 높았고 ‘반공’의 흐름을 타고 각종 전쟁영화들이 매주 주말마다 TV에서 방영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서부시대나 전쟁영화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폭파 장면인데, 기찻길이나 땅굴 또는 다리 등을 폭파하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거기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저 ‘자전거 펌프’였다.

주로 쌍안경을 끼고 적군의 동태를 살피던 주인공이 아슬아슬 할 만큼의 결정적인 순간에 ‘지금이야!’ 라고 말하면 옆에 있던 친구가 위에서 아래로 힘껏 눌러주고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의 폭발음과 함께 화면 가득 화염과 연기로 가득했다. 나중에는 너무 쉽게 터지는 장면에 긴장감이 없었는지 종종 눌러도 터지지 않는 폭탄 때문에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폭탄이 설치 된 장소로 간다던가, 중간에 선이 끊겨져 있다던가 하는 장면들이 추가되었다. 당연히 한참 전쟁놀이에 재미를 느낄만한 나이대의 필자와 친구들에게 ‘자전거 펌프’는 아무나 누를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의 의지와 통솔권을 부여 받는 중요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손잡이를 위에서 아래로 누르면 실제로는 ‘푸슉’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 밖에 안 나지만, 누르는 순간에 입으로 ‘뿌앙~’ 이라고 폭발음을 내면 주위에 친구들은 너도 나도 ‘으아~!’,‘위생병~’ 등 상황에 맞는 연출을 했다.

어쩌면 전쟁놀이에서조차 쉽게 스위치를 누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디그 더그(Dig Dug)’ 게임 내에서 ‘자전거 펌프’로만 알고 있었던 주인공 캐릭터의 무기는 모두에게 버튼을 누를수록 부풀어 오르는 적 캐릭터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며 몰아지경에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바위로 깔려 죽게 만든다든가 부풀어 오르게 해서 터뜨려 죽인다든가 하는 부분은 실상 꽤나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이 아닌가? 물론 생각을 그렇게까지 끌고 오면 동물이 터져서 없어지는 ‘OO팡’ 같은 게임이야 완전 잔인한 동물 학살 게임밖에는 되지 않는다.

 게임은 게임일 뿐인데 이것을 실제 현실로 옮기면 굉장히 위험한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게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누군가의 이렇게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까지 생각해서 게임에 대한 위험성이나 유해함을 경고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 반대의 입장에서 게임을 즐기며 아끼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게임 중에는 정말 유해하고 위험한 게임들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모든’ 게임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 ‘미스터 드릴러’ 이후 세계관 설정....겉보기와는 다른 심오함
게임화면을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뭔가 특별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해 보이지만, 사실 이 게임은 꽤나 심오함을 담고 있다. 후에 나온 ‘미스터 드릴러’ 이후 원작 게임에 대한 세계관이나 주인공 설정이 정해진 요상한 게임이다.

‘디그 더그’ 게임의 주인공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는데, 자녀 중에 둘째가 ‘미스터 드릴러’ 게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리스스무’ 라는 놈이다. 첫째는 ‘호리아타루’라는 놈인데 왜인지 모르지만, 아버지(‘Dig Dug’의 주인공)와 엄청 사이가 안 좋다고 되어 있다. 셋째는 ‘토비타이요우’라는 놈인데, 땅 속을 뚫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두 형들과는 다르게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결국 땅 파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비운의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게다가 이름도 형들과 달리 ‘호리’라는 성을 쓰지 않고 어머니 ‘토비마스요’의 성인 ‘토비’를 쓰고 있는데, 막내 아들이 태어났을 무렵 부부가 별거 중이고 막내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이다. 파탄 난 가족의 비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남편 ‘호리타이조’와 그의 아내 ‘토비마스요’– 둘이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다.]
사실 ‘디그 더그’ 게임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따로 주인공 이름 같은 것은 없었고 적 캐릭터들만 ‘푸카(Pooka)’와 ‘파이가(Fygar)’라는 이름이 있었다. 나중에 ‘미스터 드릴러’라는 게임이 출시된 이후에 ‘미스터 드릴러’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가 ‘호리스스무’라고 정해진 뒤에 ‘디그 더그’의 주인공이 그의 아버지이며 그의 이름은 ‘호리타이조’라고 정해졌다. 참고로 ‘호리타이조’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 드릴협회 명예회장’이라는 직책도 겸하고 있다.

특이한 점 중에 하나라면 게임의 실제 인기에 비해 다소 과하게 다양한 기종으로 이식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인기 있고 재미있는 게임임에는 분명하고 인기에 대해 의견이 개인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정식 타이틀을 내세우며 출시한 기종만 해도 오락실(아케이드)을 기본으로 MZ-1500, X1, FM-7, FM77AV, PC-8001, PC-8001mkIISR, PC-8801, PC-8801mkIISR,PC-6001mkII, 패미콤, MSX,X68000, LSI게임, 게임보이,플레이스테이션1, 2, 3, GBA, PSP, Wii,Xbox 360, iPhone / iPod touch 등 지구상에 현존하는 웬만한 디지털 기기에는 거의 다 이식되었다.

필자도 오락실에서보다는 친구 집에서 ‘패미컴합팩’ 등으로 이 게임을 했는데, 이렇게 합팩이나 불법 복제 해적판 등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기종으로 접할 수 있는 게임 중에 하나였다.

[무지개떡이 먹고 싶게 만드는 스테이지 컬러]
필자도 얼마 전에 스마트폰게임으로 ‘디그 더그’ 게임을 만들어볼까 했는데, 어릴 적 이 게임에 감명을 받아 최근에 이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 때의 감동과 재미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 이름에 쓰이는 ‘Dig Dug’는 영어 단어인데 ‘Dig’는 땅을 파다(동사) 이고 ‘Dug’는 ‘Dig’의 과거분사이다. 영어 단어 2개로 된 게임 이름에 법적인 어떤 효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대로는 쓸 수 없었고 나름대로 우주판 ‘Dig Dug’라고 해서 ‘Space Dig Dug’라는 게임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비슷한 게임이 출시되어서 기획서를 하드디스크 깊숙한 곳에 봉인해 두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서 새롭게 재해석한 ‘Dig Dug’ 게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 필자의 잡소리
하나의 게임이 대를 이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은 흔하지 않다. ‘디그 더그’ 게임은 이 게임에 이어서 그 뒤로 출시된 후속작들과 ‘미스터 드릴러’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시간 동안 단지 흔하지 않은 소재와 설정이다. 이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게임 하나에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것을 잊지 않고 갈고 닦으며 더욱 새롭고 기발한 내용으로 대를 이어 시리즈를 이어가는 게임이라는 점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최근에 몇몇 게임들이 만들어 보고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으로 출시했다가 금세 시장에서 사라지고 다시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금방 사라지는 게임들을 볼 때마다 ‘Dig Dug’와 같이 세대를 이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게임들이 부럽기만 하다.

[‘미스터 드릴러’]
아버지 세대는 ‘Dig Dug’라는 게임으로 자녀 세대는 실제 ‘Dig Dug’ 게임의 주인공 자녀가 등장하는 ‘미스터 드릴러’로 이어지는 세대 화합의 게임들이 계속해서 많이 출시되었으면 한다. 또 한 30년 정도 지나면 ‘호리타이조’의 손자가 등장하는 게임이 나올까?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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