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맘대로 바꿀 수 팩-건전지 충전, 게임마니아들 경악

지금은 누구나 손 안에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컴퓨터란 일반인이 함부로 접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가는 고가의 장비였다. 1990년대에나 들어서야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1가정 1PC’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물론 1980년대에도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집에 컴퓨터라는 값 비싼 장난감이 있었지만, 필자와 같은 경우에는 팸플릿에서나 볼 수 있는 사진 속의 물건일 뿐이었다. 컴퓨터와 더불어 각 가정에 게임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의 일이다.

[기계 속에 게임을 내장하고 있는 미니 게임기]
8비트니 16비트 하는 콘솔 게임기와 더불어 손안에 쥘 수 있는(이라기보다는 손으로 들고 이동하기에 편한) 미니 게임기들도 우후죽순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 당시 미니 게임기는 기기 자체에 게임이 내장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조금 발전해서 기기 한 대에 게임이 여러 개 들어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어딘가 부족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그런 게임기라도 하나 갖는 것이 필자의 어릴 적 소원이었다.

그때 당시에 필자가 구경했던 미니 게임기들은 1만~2만원대의 제품들도 있었고(이 가격대는 완전 단순한 게임들이 많았다). 3만~4만원 이상의 고가의 게임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흑백 화면이었고 간혹 화면이 컬러로 된 게임이라고 해도 제한된 색상을 사용하거나 배경 디스플레이 자체에 색을 입히는 미개한 수준이었다. 이런 미개한 수준의 것들도 그대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후에 ‘다마고치’로 재탄생하여 다시 한 번 화려하게 부활하지만..

■ ‘팩을 꽂아서 게임바꾸는’ 게임기 등장에 경악

[부잣집 애들만 갖고 있던 게임기..]
그렇게 까까머리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좀 더 큰 동네에 중학교에 입학하니 꽤나 다양한 놈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서는 좀 살았다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필자의 친구 한 놈이 이상한 벽돌 같은 기계를 들고 와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게임기였다. 더더욱 놀라웠던 점은 원하는 게임을 아무 때나 맘대로 바꿔 낄 수 있도록 팩을 꽂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장비에 원하는 게임을 골라가며 팩만 바꿔주면 할 수 있는 전자제품이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놈은 건전지 소비량이 꽤나 많아서 돈(건전지) 먹는 괴물 같은 놈이었지만, 그래도 게임 교환이 가능한 들고 다닐 수 있는 게임기라니.. 그 순간 그 친구는 모든 반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영웅이 되었다(그보다는 잘 사는 집안이라서 게임기 아니었어도 부러움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건전지지의 압박을 받던 중 다행히 ‘워크맨’이라는 신 문물이 등장하여 충전식 건전지라는 것이 생겨나서 부담이 덜해진 것 또한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었다(다 쓴 건전지를 또 쓸 수 있다니?).

‘게임보이 (GAME BOY)’라 이름 붙여진 이 신통방통한 물건은 1989년 ‘닌텐도’의 ‘요코이군페이’가 자사의 ‘게임 &워치’의 차세대 기종으로 개발한 휴대용 게임기가 시작이다.

게임기가 흑백화면인 이유는 그 당시에 완벽한 컬러 화면은 재현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플레이 타임을 위해 희생한 부분이 컸다. 현재까지도 이 게임기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휴대용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는 자사의 ‘닌텐도 DS’가 갖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닌텐도’를 이길 수 있는 건 ‘닌텐도’뿐이라는 것인가? (왠지 멋지다).

■ 끝없는 전설의 진화...컬러-어드번스-SP-마이크로-닌텐도DS
이렇게 세상에 등장한 ‘게임보이(GAMEBOY)’는 후에 ‘GAMEBOY COLOR’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흑백 화면에서 컬러지원이 가능한 컬러화면으로 진화되고 다시 ‘GAMEBOY ADVANCE’로 진화한 이후 백라이트 기능이 추가된 ‘GAMEBOY SP’를 거쳐 ‘GAMEBOY MICRO’모델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파충류 시절을 거치고 드디어 포유류가 지구를 정복한 것처럼 닌텐도는 그 동안의 기술과 경험을 집약시킨 ‘닌텐도 DS’라는 모델을 출시하고 ‘NDSL’ 이라고들 부르는 ‘닌텐도 DS 라이트’ 버전을 출시한 이후 ‘3DS’에까지 이르고 있다.

[무려 컬러다!]
그 중에서 필자가 제일 아끼는 모델은 ‘GAMEBOY MICRO 마리오20주년 한정판’이다. 제일 오랫동안 손에 들고 다녔던 게임기는 ‘NDSL’이다. 이 게임기들을 들고 다니던 시절은 어린 시절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게임기를 드디어 직장인이 되어 월급이라는 것을 받게 되자 그 시절에 복수라도 하듯이 게임기를 사들이기도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게임기들이 특별한 이유는 필자의 고향은 대전인데 졸업 이후 서울에서 취직을 하여 살아가던 중 20대 후반에서야 게임기 하나 정도는 무리해서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어 ‘GAME BOY MICRO 마리오 20주년 한정판’을 사기 위해 ‘국전’을 갔다가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난 기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 놈도 10년이 훨씬 지나도록 아직도 게임에 영혼을 팔고 있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대전에 중학교 같은 반 친구를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인가? 의외로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때 이후로 거의 매주 가다시피 했던 용산이나 ‘국전’에서 중-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작지만 강한 녀석! – GAME BOY MICRO]
지금까지 출시된 닌텐도의 미니 게임기 중 ‘GAME BOY’시리즈 중에 ‘GAME BOY MICRO’는 가장 작은 사이즈에 속한다. 한손에 쏙 잡히는 정도가 아니라 손이 어중간하게 큰 사람들은 오히려 버튼을 누르는 게 조금 힘들 수 있는 정도다. 필자는 이 게임기를 사자마자 ‘파이널판타지 1’편을 구해서 늘 꼽고 다녔는데 ‘매뉴얼 없이 대사나 공략본 없이 게임을 재대로 한 번 해보자!’하는 마음에 시작했다가 6개월을 꼬박 날린 적이 있었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마다 최소 하루 1시간 이상씩 했으니 못해도 100시간 이상은 플레이를 한 셈이다(주5일 기준). 그렇게 허공에 삽질 하듯이 오랜 시간을 게임을 했지만, 전혀 지겹지도 않고 봤던 장면을 또 보고 또 봐도 새롭고 재미있었던 이유는 8비트 콘솔 게임기 ‘패미컴’이 등장하고 ‘파이널판타지 1’편 게임이 나오던 시절에 필자의 집은 그 게임기와 게임을 살만한 형편이 안 되었다. 늘 친구들이 부럽고 가진 것 없는 필자가 처량하던 지난날이 떠올랐고 그 시절에 너무나도 이 게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랐던 점은 이 작은 게임기로 ‘파이널 판타지’ 게임을 하면 캐릭터도 당연히 작게 그려지는데 캐릭터의 눈동자는 점 하나 크기로 그려진다(도트 하나 사이즈).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면 이 눈에 표정이 보인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희로애락이 도트 하나에 표현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분명 필자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 게임을 하던 그 당시에도 게임 개발 한답시고 온갖 폼은 있는 대로 다 잡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화려한 볼거리와 눈에 보이는 효과에 집중하던 필자에게 이것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앞뒤로 짜임새 있게 구성 된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어 게임 속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게임의 기획, ‘스토리’ 구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물론 지금도 필자는 점 하나로 희로애락을 느껴지게 만드는 게임을 만들지 못 하고 있다).

■ 전설의 라이벌-GAME GEAR 등 모조리 무릎 끓다
지금은 포터블 게임기 시장을 소니의 PSP와 양분하고 있는 손 안에 게임기라 불리는 닌텐도의 미니게임기들이지만, 처음부터 혼자서만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거의 전부 명맥을 잊지 못 하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놈들이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니 게임기어도 있었다!]
미니 게임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업체는 ‘닌텐도’뿐만 아니라 ‘SEGA’나 ‘NEC’, ‘SNK’, ‘Atari Lynx’라던가 ‘반다이’, ‘GP 시리즈’등 지금 들어도 유명한 회사들이었지만, 결국 ‘닌텐도’의 ‘GAME BOY’ 앞에 무릎 꿇고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사실 자발적으로 철수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당시에 출시된 ‘SEGA’의 ‘GAME GEAR’는 TV를 볼 수 있는 튜너도 별매품으로 지원하고 있어서 기절할 뻔했지만, 문제는 이 놈은 건전지를 넣자마자 흡혈하듯이 빨아먹는 건전지 흡혈귀 같은 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당히 고가의 제품이었다는 것이 부담이었다.

건전지를 무려 6개나 먹고서도 3시간을 버티기 힘들어서 손에 들고 3시간이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기 때문에 휴대용 게임기 임에도 불구하고 휴대가 가능한 시간은 3시간 안쪽이 고작이었다. 별도의 출력 단자를 통해 전력을 제공하는 어댑터를 사용할 수 있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휴대용 게임기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게임기는 그 당시 휴대용 컬러 게임기의 기본 개념을 제시한 기기로 비록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TV 튜너’ 기능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훗날 ‘소니’의 ‘PSP’나 최근의 휴대폰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아마도 가격만 조금 더 낮추고(그래도 다른 컬러 기종에 비해서는 많이 저렴했다). 전력 문제만 보강 됐었다면 지금의 ‘NDSL’의 자리는 ‘SEGA’의 게임기가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필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운 게임기 중에 하나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때 당시 닌텐도의 ‘게임보이’는 국내에서 ‘현대전자’가 담당했다. ‘미니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다. 현대는 ‘패미컴’시리즈를 ‘컴보이’ 시리즈로 이름을 바꿔서 출시했었다(‘슈퍼패미컴’은 ‘슈퍼컴보이’로..). 그리고 SEGA의 ‘GAME GEAR’는 ‘삼성’이 담당했었다. 역시 이름은 원판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핸디 알라딘보이’로 판매했다.

그 당시 삼성 역시 현대전자처럼 일본에서 판매되는 게임기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판매를 했었다. 삼성은 주로 ‘알라딘’ 이라는 이름을 썼다. 일본에서 닌텐도와 SEGA가 피터지는 경쟁을 하면 한국에서는 현대와 삼성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 때 라이벌이었던 닌텐도는 흥하고 한국전에서 현대전자는 삼성에 밀리고 말았지만, 그 때 만약 삼성이 닌텐도를 담당했었더라면..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포터블 게임기 시장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 같다.

참고로 닌텐도의 ‘게임보이’는 이라크전 당시 미군의 필수품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긴 플레이 시간을 자랑하는 알뜰한 전력 소비량과 내구도 높은 게임기이니만큼 전쟁터에서도 사랑 받는 중요 전시물자였던 것이다. 실제로도 전쟁터 한복판에서 폭격을 맞아 외장이 녹아서 일그러진 ‘게임보이’가 멀쩡히 게임이 실행되기도 했다. 이는 애초에 게임기 설계 자체가 어린 아이가 야외에서 갖고 노는 게임기라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어린 아이의 야외활동 에너지는 전쟁터 한 복판의 폭격만큼의 위력이 있다는 것이 입증 되는 것인가?).

■ 필자의 잡소리
팩(카트리지)을 교환하며 한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게임기를 처음 만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을지 상상을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결국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났고 우리는 정말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게임기를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계에 내장 된 게임만 하는 단순하고 지겨운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원하는 게임을 바꿔가면서 할 수 있는 게임기를 손에 쥔 기분이 어땠을지는 지금의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내 손안에 너 있다.]http://www.levelup.com/articulos/164732/Feliz-25-aniversario-Game-Boy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항상 최고의 자리에는 한 사람의 승자만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우주 어딘가에는 태양이 둘, 셋 있는 행성도 있다던데..). 닌텐도의 미니게임기(포터블 게임기) 시장은 늘 경쟁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했고 잠시 공조하면서 협력하기도 하며 1989년 최초 발매된 지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에까지 살아남아 있다. 매 시절마다 경쟁하던 라이벌은 SEGA에서 소니로 바뀌어 있고 이제는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느라 손이 모자란 현대인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아직도 닌텐도의 게임에 대한 애정을 담은 정신은 살아서 이어져 오고 있다.

전설의 시작과 그 끝에서 지금의 닌텐도를 있게 해 준 ‘게임보이 시리즈’의 개발자 ‘요코이군페이’는 1997년 10월 4일 아쉽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우수한 기술이 우수한 게임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첨단 기술은 개발과 생산에 비용을 발생시켜 아이디어를 경직시킬 뿐더러 고가의 게임이 되어버린다. 기존의 기술을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 - 요코이군페이’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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