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용 지원 깜짝, '비행청소년' 필자 최초로 ‘PC 2인 비행 시뮬레이션' 추억

필자가 평소에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비행(?) 청소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디스켓을 흔들어 보이면서 ‘이거 한 번 해볼래?’라고 이상한 게임을 건네 준 적이 있다. 바로 그 이상한 게임 ‘SKY CHASE’이다. 동명의 게임도 많이 출시되어 제목으로 검색하면 진짜 그 이상한 게임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바람돌이 소닉’도 동명의 게임이 있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한데..]

박스 아트만 봐서는 그 당시 자주 하던 ‘F-15 II’라던가 ‘F-19’, ‘F/A-117’ 등의 ‘마이크로프로즈’ 사의 게임들과 별반 다를 것 없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실상을 봤을 때는 한동안 넋이 나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SKY – CHASE’ - 타이틀 화면]

문제의 타이틀 화면이다. 뭐 1988년이라는 출시연도를 고려했을 때 시작화면이 이럴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는 수준이다. 타이틀 화면만 봤을 때는 ‘F-15 II’ 정도 그래픽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문제는 게임이 시작됐을 때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크게 관심 두지 않았는데 무려 ‘Maxis’라는 ‘심(Sim)’시리즈 마니아라면 친숙한 회사이름까지 붙어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친구들 사이에서 ‘스카이 체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체스판 같은 배경화면을 보고 다들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실제로 이 게임은 체스 게임이 아니고 ‘CHASE’ 역시 체스라는 뜻이 아니다. ‘CHASE’ 는 ‘뒤쫓다, 추적하다’라는 뜻으로 공중전에서 서로 꼬리를 물기 위해 기동을 하는 모습을 두고 한 말이다.

■ 기대한 것 이상의 배신감
그 당시에 컴퓨터 환경은 그래도 XT 컴퓨터를 쓰는 친구들은 이제 거의 소멸했고, 보통 AT (286) 컴퓨터나 좀 잘 사는 친구는 386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게임을 접한 것은 발매하고 나서도 몇 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필자 역시 한창 ‘Gunship 2000’이라는 헬기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을 때이다.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메뉴화면까지도 그 당시 게임 수준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탈 수 있는 기종도 꽤 많이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기종 선택까지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Cockpit(조종석)에 앉아서 출격하기만을 기다리는 필자의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트리는 게임화면을 보고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분노의 함성이 올라왔다.

[그리다 말았냐?]

이것은 게임 개발 테스트 단계에서 캐릭터 모델에 색을 입히기 전에 유출된 건가?라고 의심할 정도의 그래픽을 보여주는 이상한 게임이었다. 바닥은 신도시 건설 택지지구마냥 네모네모로 줄이 그어져 있고 하늘에는 선으로만 그려진 비행기들이 날아다녔다.

다음날 친구를 찾아가서 멱살까지 잡은 정도는 아니지만, 감히 고급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세계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 이따위 저급한 게임을 주었냐고 화를 냈다. 아침에 해가 뜨고 학교에 그렇게 빨리 가고 싶었던 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자 친구는 저녁에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이놈이 뭔가 먹을 걸로 이 사건을 무마할 생각인가 보다 했지만, 막상 집에 가자마자 했던 일은 다시 이 게임을 화면에 띄우는 일이었다(이놈이 사람을 두 번 죽여?). 처음 그래픽에 열 받아서 제대로 게임을 해보지 않은 필자에게 친구가 보여준 세계는 놀라운 것이었는데, 이 게임은 화면을 반으로 나눠서 2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 혼자 하면 재미없는 게임
마음을 침착히 가라앉히고 다시 메인 메뉴화면을 보니 ‘어? 정말이네?’ 메뉴 화면에서 ‘Two Player Game’이라고 해서 2인용 게임을 지원하고 있다. 당연히 화면이 둘로 쪼개진 것만 봐도 알아챘어야 했는데, 처음 게임 화면에서부터 열이 받아 그런 것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2인용 지원!]

‘야 이거 진짜 2인용 되는 거야?’라고 의심하던 필자에게 친구는 공중전 대결을 신청해왔고, 그날 밤은 밤새 ‘야! 한판만 더!’를 외쳤던 것 같다(집에 갔던가 안 갔던가 기억이 안 나네.) 1990년대 초기만 해도 그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일반인들이 아직 구경하기 힘들 때였다. PC통신만 해도 신세계로 받아들이던 시절이다. 모뎀을 사용해서 PC통신을 하고 간혹 게임 중에 줄여서 ‘모플’ 이라 부르던 ‘모뎀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들도 있었는데, 엄마한테 죽기 바로 직전까지 맞을 각오 아니면 애초에 쳐다볼 물건이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만나 언제라도 게임을 할 수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그 당시에 온라인에서 만난다는 것은 구멍 난 주머니에 동전을 가득 넣고 길거리를 뛰어가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위험한 짓이었다. 모뎀으로 접속하는 일은 지금처럼 한 달에 얼마! 하는 식으로 인터넷 네트워크 사용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만큼 지불하는 전화요금 고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학생 때 사설BBS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다른 사설BBS를 밤마다 찾아다니던 시절에 42만원 전화요금 고지서를 들고 10원에 한 대씩 (죽도록)맞았던 기억이 난다.

[왕년에 ‘모플’좀 해봤다 하는 분들이라면 아실 화면..]

이렇게 자라나는 비행(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청소년들에게 모뎀플레이를 할 수 있는 통신망이란 곧 어마어마한 돈과도 직결되던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에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오프라인이긴 하지만, 2인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지원하다니! 이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2인 플레이를 지원하는 PC용 게임들은 제법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1인 플레이 게임들이었고 간혹 변태 같은 3인 플레이 지원용 게임도 있긴 했다(램피지라던가..).

이 게임 이후로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탱크 시뮬레이션 게임 등 2인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들이 등장했지만, 필자가 최초로 PC에서 2인 플레이를 했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 게임이기 때문에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게임이 되었다(‘윙커맨더 프라이버티어’ 버전도 2인 플레이를 지원했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이 게임에서 최강의 기체가 있는데, ‘F-16’ 이나 ‘F-18’ 같은 당시에는 최신예기에 속하던 기체들이 아니다. 이 게임에는 우리가 흔히 접는 종이 비행기가 등장하는데, 이 종이비행기가 제일 세다.

■ 필자의 잡소리
중학교 시절 많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했지만, 그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임이 ‘SKY CHASE’라는 게임이다. 비록 이 게임의 그래픽은 보잘것없고 이 착륙이나 브리핑 따위 간소화하다 못해 생략 되어버리는 등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실적인 부분들 역시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 동안 했던 게임들이 외롭게 홀로 전장을 누비며 날아다니던 것에 비해 친구와 함께 사이좋게 화면을 반으로 나눠 피 말리는 공중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Lock On!’]

물론 서로 각자의 화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대충 상대의 기동을 예상할 수 있어서 웬만큼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했던 친구들이 서로 공중전을 붙게 된다면 더더욱 서로의 꼬리를 잡기가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한 화면을 같이 쓰기 때문에 안 봐도 보이는 것을 ‘야 내거 보지마라’ 하면서 티격태격 하던 것도 이제는 다 추억 속의 일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