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동 이어 음악클럽 ‘고영준 라이브’ 오픈

“삼성동에서 인생 2막 2장 연다”

방이동 이어 음악클럽 ‘고영준 라이브’ 오픈 

‘어느 누가 나보다 사랑해줄까 당신을 사랑해줄까/나를 믿고 따라와요 내사랑 당신 나믿고 나믿고 당신/ 사는 동안 당신만을 아낌없이 사랑할거야 천년만년 영원한 우리사랑 행복하게 살아가요/ 후회없이 미련없이 나를 믿고 나믿고.’ 트로트 가수 고영준의 7집 타이틀곡 ‘나믿고’(2010)의 가사 중 일부다. 고영준을 만났다. 1990년 ‘정에 약한 남자’로 데뷔해 노래 ‘눈물젖은 빵’을 부르며 ‘산다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 외쳤던 가수. 또 ‘남자의 길’(2006)에서는 ‘내 살아온 길을 묻지를 마라’며 의리를 강조했던 사나이. 이제 그는 ‘나를 믿고 따라와요’라고 노래 부른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라이브 카페 ‘남자의 길’을 접고 삼성동에 ‘고영준 라이브 클럽’을 열며 인생 2막 2장을 시작한 그를 만나봤다.  

■ “삼성동 ‘고영준 클럽’에 나를 믿고 따라와요”

지난 11일 서울 삼성동 ‘고영준 라이브 클럽’ 오픈 날. 좌석 40여석의 클럽이 만원이다. 신장개업 소식을 듣고, 그의 오랜 팬들과 방이동 시절 단골, 지인들로 북적였다. 가수 이영화도 특별히 찾아와 축하송을 불러주었다.

축하 화환이 즐비한 입구부터 실내 벽 곳곳에 ‘대를 잇는 가요계의 귀공자’ ‘가요계의 왕족:고복수 선생, 황금심 여사 그리고 고영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그는 “방이동에서 내 히트곡을 딴 ‘남자의 길’을 2년 동안 운영했다. 이번이 두 번째 라이브카페”라며 “2000년 이후 트로트 가수를 위한 밤무대 업소가 다 사라졌다. 내 노래를 들려주고, 팬들과 만나 삶에 대한 대화도 나누고, 가요계 선후배도 초청해 열정의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오픈 소감을 전했다.

소극장 형식의 라이브 카페의 매력은 무대와 객석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 무대도 턱하나 차이다. 고영준이 밴드와 노래할 때는 관객들이 환호하고, 관객들이 노래를 신청해 한 곡 뽑을 때는 그가 관객이 되어 박수를 친다.

▲ 나믿고를 열창하는 고영준
오픈한 지 열흘만의 기습방문. 관객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방이동에선 아무래도 ‘남자의 길’이 신청곡 1위였다. 삼성동에서는 좀 달라졌다. 지난해 3월 발표한 최신곡 ‘나믿고’가 최고 신청곡이다.”

지난해 3월 발표한 7집 앨범의 타이틀곡 ‘나믿고’는 그와 유광선의 공동 작사다. “나를 믿고 따라와요 내사랑 당신~”도 그렇지만 “나를 믿고 나믿고 나를 믿고 나믿고, 나믿고 나믿고 나믿고 나믿고”의 후렴부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얼핏 일본어 “나미꼬” 같은 필이 묘한 매력을 준다.

그는 “나도 같이 썼지만 가사가 상큼하지 않은가. 자극적인 것도 아니고, 부를 때마다 진실한 느낌이 팍팍 든다. 그게 매력”이라며 자화자찬했다.  

■ 가요계의 왕족, ‘정에 약한 남자’ 고영준

고영준이 누군가? 사실 이 질문은 식상하다. 클럽 안 포스터에 적힌 ‘대를 잇는 가요계의 귀공자’란 문구처럼 그를 언급할 때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는 ‘타향살이’ ‘짝사랑’을 부른 ‘국민가수’ 고복수(高福壽, 1911~1972)와 ‘알뜰한 당신’ ‘삼다도 소식’으로 ‘꾀꼬리의 여왕’으로 불렸던 황금심(黃琴心, 1922~2001)의 맏아들이다.

고복수는 일제 때 만주에서 ‘타향살이’ 한 곡으로 한 무대에서만 무려 33번의 앙코르를 받았던 세계 가요사상 유례없는 가수다. 가요계의 왕족이라 불리는 이유다.

고복수-황금심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 앞의 고영준.
1990년 첫 음반을 냈지만 그의 실제 데뷔는 더 빨랐다. 방송 데뷔로만 치면 벌써 34년이다. 그는 “열 아홉 살 때 변웅전씨가 진행하는 MBC라디오의 ‘그리운 옛가요’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그런데 변 선생님이 저를 불러내 ‘어머니 몰래 노래 부르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짝사랑’을 들어보자‘고 소개해 첫 방송을 탔다”며 깜짝 데뷔 순간을 소개했다.

그 방송이 나간 후 방송사에는 고복수 향수를 그리워했던 올드 팬들이 “고영준 가수 데뷔시켜라”는 전화를 무수히 걸어왔다. 그는 그 덕에 곧바로 인기 TV쇼 ‘유쾌한 청백전’에 출연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부모님의 후광이었다. ‘정에 약한 남자’로 홀로 서기까지는 말이다.  

■ 왜 인생 2막 2장인가?

인생이란 무대가 따로 있다면 그에게 1막 2장이 열린 것은 1990년부터였다. 그때 낸 음반 ‘정에 약한 남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고영준은 “‘정에 약한 남자’는 무려 10만장이 팔렸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판매량이다. 전국으로 불려다니느라고 어디에 잠시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며 “이렇게 40대에 비로소 ‘고복수-황금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뗐다”고 회상했다.

이후 5년간 그의 가요 인생은 고공행진이었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은 같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94년 사업을 했던 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보증을 섰고, 그 회사가 1년 만에 부도가 나면서 별의별 곤욕을 다 치렀다. 집은 압류당했고, 빚 독촉과 협박 등에 시달리며 인생의 밑바닥을 맛봐야 했다.

2막 1장은 재기를 꿈꾸는 시절에 찾아왔다. 그는 “친구 빚을 다 청산하고 재기를 위해 이를 깨물었던 2001년.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어 같은 해 어머니마저 파킨슨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청천병력 같은 일”이었다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1972년 부친이 작고하고 어머니는 오랜 병환으로 고생했다. 그 와중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인마저 세상을 떠났다. 2004년에는 음악을 하는 남동생마저 늦은 결혼여행을 떠난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했으니, 이처럼 기막힌 일이 어디 있을까.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할 수 없었던 지독한 슬픔을 그는 2006년 6집 ‘눈물젖은 빵’에 실린 ‘남자의 길’로 이겨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서 어찌 인생을 논할 수 있니”라고 노래한 그는 “사나이 뜨거운 눈물에 과거를 씻어버리고” 굳게 일어섰다. 이 음반은 5만장 이상 팔리며 그의 인생 2막 2장을 열어젖혔다. 

■ “올해는 어머니-아내 10주기, 애들 덕에 행복”

세상에서 가장 짧은 예술이 3분 30초짜리 노래라고 한다. 고영준은 ‘남자의 길’을 노래하면서 ‘나 살아온 길 묻지를 마라. 비바람 헤치고 왔다’는 구절을 담았다. 짧은 가사에 인생의 드라마가 녹아 있다. ‘나 믿고’의 ‘천년만년 영원한 우리사랑 행복하게 살아가요. 후회없이 미련없이 나를 믿고 나믿고’도 마찬가지다.

그는 “세월이 너무 빠르다. 올해가 아내(4월 28일)와 어머니(7월 9일)의 10주기다. 그런데 딸 아이(유림)가 오히려 날 위로했다. ‘아빠, 세상에 가족을 먼저 보낸 게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하고 말이다.”

올해는 경사도 생겼다. 그는 “아들 연욱(32)이 200대 1의 경쟁을 뚫고 롯데홈쇼핑에 입사했다. 애 엄마가 있었더라면 아는 사람 다 부르고 축제 분위기였을 텐데”라고 말을 흐렸다.

“애들 때문에 산다”며 행복하는 그는 “아내가 떠날 때 10년 안에 아내 세례명을 딴 기도원을 지어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못했다. 비록 5년을 늦췄지만 인생의 마지막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있다. 봉사하고 사는 것이 내 마지막 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물었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롭지 않느냐고. 그는 “가정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때가 있다. 아이들도 가끔 새 가정을 꾸려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연분을 못 만났다”며 쑥스러워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라도 ‘후회없이 미련없이 나를 믿고 따라올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귀띔했다.

지금도 휴일이면 청계산, 북한산, 남한산성 등 지인 3~4명과 산에 오르며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그동안 지켜봐주고 성원해줘서 고맙다. 특히 부부간에 사랑하며 삽시다”라며 말을 마쳤다. 글 사진=박명기 기자 cool@ilgankg.co.kr  

고복수-황금심의 장남 ‘정에 약한 남자’ 데뷔

가수 고영준은?

가수 고 고복수-황금심 부부의 장남으로 1990년에 '정에 약한 남자'로 데뷔했다. 대표곡으로는 ‘눈물젖은 빵’과 ‘남자의 길’ 등이 있다. 2010년 3월 20일에 신곡 '나 믿고' 를 발표했다.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아내는 2001년 작고했다. 지난해엔 문화예술대상 성인가요 10대가수상을 수상했다. 또 국회에서 주는 나눔대상 봉사부문에서도 수상했다. 

TIP 1

고영준 클럽은?

클럽의 풀 네임은 의외로 길다. ‘고영준 7080 CLUB-유쾌한 라이브’다. 위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코엑스와 봉은사 낀 길을 따라 자이언트호텔과 라마다서울호텔 쪽 방향 못 미쳐 있다. 원래는 연예계 30년지기인 절친, 코미디언 유쾌한이 운영하던 ‘유쾌한 라이브’였다. 고영준의 결혼 때 사회를 보았던 유쾌한이 다른 사업을 모색하자 고영준이 맡아 ‘고영준 클럽’으로 새단장한 것. 7월 11일 오픈한 클럽에는 이미 고영준의 오랜 팬들과 방이동 ‘남자의 길’ 단골이 대거 이동해왔다. 

TIP 2

“새로 생기는 종편에선 성인가요 프로 꼭 만들었으면...” 

가수 고영준은 트로트 가수들에게 사회에서 더 많은 배려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털어놨다. 그는 “2000년대 이후 밤업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가끔 지방에서 가물에 콩나듯 행사를 하긴 하지만 업소 몇 주년 기념이 고작이다. 현재 공중파 남아있는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 뿐이다. 그러다보니 공중파엔 출연기회가 거의 없다”며 “이제 공중파에서도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고,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하면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를 방송국 당 하나씩 의무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 고영준 7집 '나믿고'의 앨범 재킷
실제로 성인가요(트로트)계는 공중파 등 방송이 적어 새 가수 배출이 잘 안 된다. 시장이 자꾸 위축되고 있다. 성인가요 전문채널 inet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중장년층이 볼 수 있는 프로를 의무적으로 만들어 좋은 시간대 방송해줬으면 좋겠다. ‘가요무대’ 봐라. 얼마나 장수 프로인가 말이다”며 시청률 지상주의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공중파가 전문음식점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지만 어디를 틀어도 말장난 하는 예능프로만 잔뜩 있다. 또 댄스가요뿐이다. ‘나는 가수다’ ‘세시봉’이 뜨고있지만 트로트는 눈을 씻고 볼래야 볼 수 없다. 적어도 공중파라면 많은 대중을 위해 다양한 음식을 차려줘야 한다.”

맞는 말이다. 예전에 한 방송에서 아침 11시에 ‘가요큰잔치’를 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는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또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시청률 때문에 안 만든다는 것은 억지 같다.

박명기 기자  일간경기 201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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