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18. 전재우 ‘영감의 기원’

[게임톡 창간 2주년 기획] ‘인디 정신이 미래다’ 18. 전재우 ‘영감의 기원’

한경닷컴 게임톡이 창간 2주년을 맞아 ‘인디 열정사랑방’이 열렸다. 당대 내로라하는 개발 독립을 꿈꾸는 재야 개발자 고수들이 속속 칼럼진과 기획진을 구성됐다.

필진은 김성완 부산게임아카데미 교수를 비롯한 박선용 인디게임 스튜디오 터틀 크림 대표, 장석규 도톰치게임즈 대표, 전재우 인디게임개발자그룹 GameAde 운영자, 국내 최초로 인디개발자 총회와 지스타 인디게임전시회를 개회한 이득우씨, ‘별바람’으로 유명한 김광삼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다. 그리고 인디 게임 개발팀인 파이드 파이퍼스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디자이너 임현호씨, 핸드메이드 게임’ 대표 김종화씨가 새로 합류했다. 그 열여덟째에는 전재우씨가 ‘영감의 기원’을 집필해주었다. [편집자 주]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다.” 사자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이다. 영화에서 ‘오마주’라는 말이 있다.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다.
 
요즘 표절 의혹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단순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 광고, 만화 등등 수많은 창작물에서 발생한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논란은 빈번해지고 있다. 게임의 범람, 게임의 생명주기 단축, 높은 개발비, 수익구조의 획일화 등으로 점차 비슷비슷한 게임들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는 이번 회에서는 이 사회에서 일고 있는 ‘표절 의혹’에 대한 색다른 시선으로 문제제기를 할까 한다. 무엇보다 “모방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을 버리자”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강박적인 두려움은 자칫 게임 매체와 산업의 침체, 다른 퇴행적 모방의 반복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 경험, 스타일을 첨가하여 본래의 것을 발전, 개선하거나 재해석하는 창조적 모방을 지향해보자는 것.

프랑스어로 ‘오마주’는 ‘감사, 경의, 존경’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일종의 경배를 뜻한다. 결이 다르듯이 단순한 베끼기와 창조적인 카피는 다르다. 기실 수많은 창작물들은 예술가들의 삶의 추억과 ‘오마주’의 다른 의미다.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을 비롯한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창조적 모방’의 사례를 짚어보기로 하자.

■ 해외에서도 묵은 논란 ‘카피캣’-‘클론’ 논쟁 
 표절 논쟁은 과연 한국에서만 불거지고 있을까.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도 '카피캣','클론'이라 불리는 게임들이 넘쳐난다. 다만, 외국은 대중이나 미디어에서 그런 모방작들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거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물론 매장당하기도 한다).
 
한국의 미디어나 대중의 초점은 산업으로 보는 관점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비슷비슷한 게임의 양산을 더욱 부채질한다.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수익을 만드느냐보다, 무조건 돈 많이 버는 게임이 최고라는 식의 성과주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퇴행적인 모방작"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필자도 최근 동안 논란이 된 국내의 "퇴행적인 모방작"들에 대해 반감이 크다.
 
그러나 건강한 모방은 진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 SF소설 '유년기의 끝'
 
■ 소설 ‘유년기의 끝’과 일본 애니 ‘전설거신 이데온’ ‘신세기 에반게리온
SF 소설의 거장, 미래학자, NASA의 자문위원, 아서 클라크의 작품에서 시작되는 영감의 원천이 있다.

1953년 아서 클라크는 장편 SF소설 '유년기의 끝'을 출간한다. 외계 문명에 의한 인류의 진화를 다루는 이 소설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전설거신 이데온’
 1980년도에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전설거신 이데온’은 '유년기의 끝'에서의 세계관과 인류몰살과 새로운 진화라는 충격적인 결말을 노골적으로 차용한다. 이 시절 관객이었던 안노 히데아키(훗날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 될)는 ‘전설거신 이데온’을 보고 엄청난 영감과 충격을 받게 된다. 훗날 그의 작품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유년기의 끝"의 충격적 결말과 주제가 그대로 재현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유년기의 끝'의 충격적 결말과 주제가 재현되었다.

■ 게임 ‘스타크래프트’도 세계관과 명칭 ‘유년기의 끝’ 표절
한국 게이머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았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오버로드’, ‘오버마인드’와 같은 명칭, 캐릭터 사라 케리건의 모습, 전체적인 세계관과 배경 설정들은 ‘유년기의 끝’에서 표절이라 말할 만큼 그냥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유년기의 끝’의 세계관 설정, 캐릭터 등은 이후의 수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걸작이 되었다.  
 
사실 위의 경우만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비슷한 캐릭터, 세계관, 스토리가 등장하는 것은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계에서는 빈번하다. 
 
영화 '스타워즈' 의 장면
일본 영화 '7인의 사무라이'
영화 ‘스타워즈’의 경우 스토리, 캐릭터의 의상, 광선검, 제다이의 그것은 일본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하다. 물론 감독 조지 루카스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1953년작 ‘7인의 사무라이’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사실 1980년대에 이름을 날린 할리우드 영화 감독들은 일본문화에 지대한 영항을 많이 받아, 이 시기에 촬영된 할리우드 영화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일본 문화가 등장한다(‘7인의 사무라이’는 훗날 ‘황야의 7인’으로 서부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 ‘창조적인 모방’ 권장하라....문화는 섞일수록 풍요로워진다
“문화는 섞일수록 풍요로워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식의 팬보이(fanboy)문화와 일본과 미국의 문화산업 공생관계는 매우 오래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걸작도 영감의 뿌리를 찾아가면 결국 앞세대의 걸작들의 재조합, 재정의 된 또 다른 모방작임을 깨닫게 된다(‘창조적인 모방작’이라 할 수 있겠다).

고귀한 것은 오래 가는 법이다. 그것을 어릴 때부터 경험하며 성장한 다음 세대는 자신들만의 해석에 따라 또다시 재창조하게 된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모방을 하자. 본래 걸작에 대해 남들은 생각해낼 수 없는 자신만의 관점을 듬뿍 섞어내자. 남들이 흔하게 뛰어들고 있는 가치에 이끌려 한 가지 가치만으로 게임을 만들지 말자. 그런 것들이 제자리 걸음의 복제품을 양산해낸다.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다

1979년 겔럭시안

▲ 1981년 겔러그
엄연히 ‘그냥 카피(Copy)’하는 것과 ‘창조적인 카피’는 구분해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기발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뛰어나고, 특별한 것들을 많이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해서 스스로의 취향을 풍요롭게 하면 금상첨화다.
 
 모방에 대한 강박적인 혐오가 무서운 점은 창작을 하기도 전에 표절 시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노력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하고 비난받을까 봐 발상과 도전, 실험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고, 그런 노력이 모두 의미없는 것으로 인식이 굳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고유의 문화나 영역을 만들지 못하고 스스로 외부의 소비 식민지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임이 산업으로 문화로 고루 발전하려면 우리는 더 많이 다양하게 충분히 모방해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비판해야 한다. 무엇이 의미 있는 모방인지 구분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경닷컴 게임톡 전재우 객원기자 im.jay.jeon@gmail.com

전재우는?
1인 개발로 시작. 기획자와 프로그래머로 여러 스타트업을 거친 후, 깨달음이 있어 다시 독고다이로 돌아옴.

비밀조직이된 인디게임개발자 모임 게임에이드(GameAde) 운영자의 운영진으로 활동중. 각종 인디게임 관련 행사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활동, 현재 암암리에 자신의 게임을 개발하며 게임개발 관련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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