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업그레이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공감 100% 열광 추억

길고 지루한 장마가 시작된 요즘 바닷가에 사는 필자는 습기에 더해 짠 내음까지 더해진 바람으로 집 밖에서 활동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날씨가 되면 필자가 대학교 시절에 비오면 비 온다고 안 가고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안 가고 눈 오면 눈 온다고 안 가던 때가 생각난다. (당연히 학점도..)

그 당시 ‘자취촌’이라 불리던 민박-자취 집결지역에 필자와 필자의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난민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던 시절에 한 친구가 불쑥 들고 온 게임이 있었다. 그게 바로 이번에 소개할 게임 ‘캠퍼스 러브 스토리’다.

이 게임은 흔히 ‘연애 시뮬레이션’이라 불리는 장르에 속하는 게임으로 다른 부류에서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시나 연애 시뮬하면 ‘도키도키’를 빼놓을 수 없지.) 한국 연애 시뮬레이션의 역사는 빛과 그림자로 얼룩져 있는데 좋은 의미로 본다면 연애를 소재로 한 게임일 뿐이지만, 더러 몇몇 게임은 연애의 그 끝을 극대화시켜 표현하는 바람에 소위 말하는 ‘야겜’정도로 불리기도 하였다.

주로 ‘DOS/V’를 써보신 분들이라면 전부 다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수는 ‘야겜’이라 불리던 게임을 한두 개 정도 해봤을 것이다. ‘동급생’ 시리즈가 제일 많이 알려졌고 그 외에도 ‘코브라 미션’ 이이라던가 ‘하원기가의 일족’,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 ‘연희’, ‘애자매’, ‘유작’, ‘취작 등 그 당시에 쏟아져 나오던 ‘미연시’ 게임들은 대부분 ‘H씬’ 이라는 어른들의 장면들이 표현되어 있어 그 장면들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기도 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야겜’의 소중한 추억이 없는 분들도 분명 있겠지만, 필자 역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경험 삼아.. 뭐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참고로 필자는 ‘DOS/V’에서 ‘대전략’ 시리즈 등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더 많이 했다(믿어주겠지?).

[동급생 - ‘H씬’만 없으면 참 아름다운 게임.. 그러면 누가 해?]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에 ‘DOS/V’ 정도는 써본 친구들이 모여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클래스 업그레이드가 되었으니 온갖 어른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던 그 시절에도 빠지지 않는 주제는 바로 이성과 관련 된 얘기들이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처럼 대고 천박하고 저질스럽게 이성에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기에는 아직 서로가 어색하던 때에 뭔가 조금은 어른스럽고 ‘H씬’ 따위야 상상이나 그림으로만 보던 청소년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합법적으로 가능한 나이가 되었던 그 때에 필자의 친구는 ‘캠퍼스 러브 스토리’라는 게임을 들고 왔다.

■ ‘ASKY’의 진리를 탐구하다.
실제로 이 게임은 필자와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해서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결국 ‘ASKY’라는 진리에 이르기까지의 눈물겨운 인생 스토리가 이 게임에 담겨있다. 이 게임에서는 현실의 세계와 달리 여자친구라는 환상 속의 존재를 만나서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데이트도 할 수 있지만, 소위 ‘공돌이’라 불리는 공대에 입학한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환상 속의 일이기만 했다(차라리 ‘폰 노이만’ 유령을 만나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캠퍼스 러브 스토리’ – 아니, 안 와도 되는데..]
이제 막 입학한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은 밤만 되면 소주에 새우과자 안주로 자신들의 중-고등학교 시절 무용담을 자랑하느라 밤을 새우던 시절이기도 했다.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이다 보니 실제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 친구가 그랬는지 어쨌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은 너도 나도 서로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야기의 시작과 달리 그 끝은 항상 과장되고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역시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했다.

매일 같이 등교 길에서 만나던 우연을 가장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와 빨판상어같이 따라다니는 옆 동네 여고생에 대한 이야기와 중학교 시절부터 동네에서 알아주는 인기남이었다는 설정 등등 지금 다시 들어보면 신경질 날 정도의 그런 뻔하고 뻔한 허풍과 과장의 설정으로만 가득 찬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1학기가 지날 무렵에는 이야기의 주제는 어느덧 1학년 1학기 동안의 러브 스토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 동안 밤을 새며 이야기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는 누구도 확인할 방법도 없고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서로 자신이 과장되게 이야기했던 수준만큼 상대방의 이야기도 그러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수 있지만, 이제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누구 선배하고 누구는 ‘CC’라더라. 등등.. 듣기 싫어도 듣게 되고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좁은 지역 사회의 특성 때문에 그 들려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받아들여지는 느낌 또한 달라지게 되는 법이다.

[필자가 살던 자취방하고 너무 비슷하다!]
하지만, 공대에서도 그렇게 큰 인기가 없는 학과이거나 반대로 (남자들에게)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남학생들만 가득한 학과에서는 소개팅에 목숨을 건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지금도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 가진 것이라고는 대학 입학 합격증과 몸뿐이고 필자와 친구들 같이 이제 막 1학년이 된 신입생들의 인기란 복학해서 지갑이 늠름한 선배라던가 차가 있는 선배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가 얻은 결론은 우리에게는 ‘ASKY’ 이다. 그래서 게임에서나마 위로를 받고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 모두가 이 게임에 빠진 것은 아니고 몇몇 친구들만 빠졌을 뿐이다. 필자는 그 시절에 ‘C&C’ 라던가 ‘디아블로1’ 게임에 빠져 살았다(왜냐하면 필자는 그 시절에 여자친구가 있었..).

이 게임을 하면서 상당히 놀랐던 점은 게임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내용이나 배경 등에 사실적인 섬세함을 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 안에서 시작되는 자취방의 모습도 현실에서 살고 있는 필자의 자취방과 너무나 흡사하게 생겨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책장 위에 얹혀져 있는 저 사과박스라니.. 필자와 친구들은 저기에 온갖 컴퓨터 부품이나 자주 안 쓰는 잡동사니를 집어넣어 두곤 했다. 그리고 그 안에 넣어 둔 걸 깜빡 하고 하루 종일 찾아도 없다고 난리를 피우고..

[게임톡 편집국장님..]
그리고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 역시 ‘최지혜’ 라던가 ‘정애란’, ‘채소라’, ‘이소현’, ‘오희숙’ 등 현실에서 있을 법하거나 실제로 있는 이름들이고 게임 중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같은 학교에 재직 중인 실존 인물과 같은 이름도 있어서 나름대로 현실감을 더해주기도 했다.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꼭 대학생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원 같이 그 당시에는 누님 캐릭터 비슷한 인물들도 있어서 연상-동급-연하 등 각자 취향에 맞게 적극 공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 게임의 특징 중에 하나다. 물론 이 게임 역시 그보다 먼저 출시된 ‘동급생’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상당 부분은 많이 닮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동급생’ 시리즈를 즐겨 본 유저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다.

■ 우리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사실적인 스토리에 빠져들다.
아마도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이 게임은 1990년대 말 출시 당시에 ‘연소자 관람 불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실제로 이 게임에 붙어 있는 ‘연소자 관람 불가’라는 딱지는 필자와 친구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열게 해주었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았을 때의 배신당한 것 같은 그 심정이란..

[맞아! 맞아! 이거 완전 내 얘기네!]
하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누군가 우리를 엿본 것처럼 현실적인 내용들이었고 지금 보면 초라한 그래픽이고 그 당시 기준으로도 저 정도 그래픽은 딱히 뛰어난 수준의 그래픽은 아니지만, 사진을 보면서 하는 게임이 아니라 내용으로 느끼는 게임이니 그런 부분은 눈감아 줄만 했다.

특히 게임 상에서 ‘채팅녀’를 알게 되고 ‘채팅녀’들과 채팅을 하다가 어느 순간 ‘번개’를 할 때 직접 만나게 되는데 게임 상에서 실제로 만나는 장면에서는 너도 나도 다 뒤로 자빠질 정도로 배를 잡고 웃었는데,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직접 경험을 해 본 친구들이라면 더 격하게 공감을 했을 것이다). 나중에야 친구들끼리 한 얘기이지만, 그래도 ‘다영’이라는 친구도 없는 주제에 다들 꿈과 희망만으로 이성을 그리다 보니 결국 ‘ASKY’라는 진리를 탐구한 것밖에는 남는 게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다영아! 미안하다!

[비디오방에서..]
또한, 그 당시에는 학교 주변에 비디오방이라고 하는 것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고(지금처럼 ‘DVD방’이 아닌 이유는 그 때에는 ‘DVD’가 아직 없던 시절이다).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물론 비디오방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테지만, 그 당시 비디오방에서 선택하는 영화의 기준은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다든가 재미나 감동이라든가 또는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라든가 하는 것들이라기보다는 무조건 영화 상영시간이 긴 것이 기준이었다. 왜 시간이 긴 영화가 기준이었냐 하면은 그것은.. 음.. (필자는 많이 가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그 당시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고 빠져들기에 충분한 재미를 선사했다. 그것이 게임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행이었을지 다행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현실적인 엔딩?]
게임 그래픽 자체로 보면 그렇게 썩 뛰어난 그래픽 수준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그 양이 상상한 것 이상 방대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한국적인 실정에 맞춘 묘사 역시 그 당시 한국의 젊은이(특히 남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비결 중에 하나였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 게임을 하면서 느끼던 이질감이나 위화감이 없이 바로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대학교 신입생부터 시작해서 이성과의 관계에 눈을 뜬다는 내용의 게임으로 게임 개발 과정에 실제 대학생들이 참여했다든가 경험담을 토대로 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그 당시 대학교 캠퍼스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이 게임을 해보면 이질감을 느낄지 동질감을 느낄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주춤한 분위기인데,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나 현실적으로 실제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해서 40~50대 어른들의 ‘동창생’ 게임을 만들었다가는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물론 대다수의 동창생 모임은 아주 건전하다. 그런데 그렇게 뻔하고 뻔한 스토리를 게임으로 만들진 않을 것이고..

■ 필자의 잡소리
인생의 많은 부분은 상당히 게임 같지만, 반대로 게임 같지 않아서 저장(Save)-불러오기(Load)가 안 된다. 게임으로 치자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리얼 타임 시뮬레이션 같은 게임이지만, 그 안에서는 ‘RPG’적인 요소나 ‘어드벤처’ 게임 같은 요소도 들어 있고 가끔 ‘액션’ 게임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저장-불러오기가 안 되는 매우 난이도 높은 게임이라는 것이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
가끔 영화 중에 단 한번 실수로 연인이 될 뻔하다가 평생 불구지천의 원수가 되어 버린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로 시간을 되돌려 다시 연인으로 사이가 회복 되는 소재의 영화들을 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저장-불러오기가 안 되는 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금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바로 다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 없이 함부로 했다가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갖는 재미가 아닐까.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는 창 박을 바라보니 문득 90년대 청춘 시절이 떠오른다. 대학교 시절 가슴 저리고 눈물 나는 연애 스토리 하나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불러오기(Load)하고 싶은 시점이 있다면 언제인가?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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