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 탄생 기여 소문난 ‘만화 원작’....축구 시뮬레이션의 원조

요즘 전 세계가 월드컵으로 시끌시끌하다. 이 글을 마감하는 27일(오늘도)도 한국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필자는 잠시 소환사의 협곡에 산책 좀 다녀왔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행사이지만, 그 열기는 매회 식을 줄을 모른다. 사실 필자는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야구는 좀 좋아하는데, 축구 같은 경우 하루 왠 종일 뛰어다닐 체력이 안 되기도 하지만, 발이 참 괴발이라 그래서 개발자인가 보다.

[‘캡틴 츠바사’ - 일본 대표팀]
요즘처럼 축구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 오래 전 추억을 떠올려보니 필자도 축구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실제 축구는 아니고 축구 게임이었는데, 그 당시에 필자가 주로 했던 축구 게임은 ‘이태리 축구’라 불리는 PC게임이었다. 그 외에 지금처럼 ‘FIFA’니 ‘위닝’이니 하는 게임들은 아직 세상에 나오려면 조금 멀었던 시절에 오랫동안 한 푼 두 푼 티끌 모으듯 모은 용돈으로 어렵게 구입한 ‘SFC(슈퍼 패미컴)’에서 즐겨 하던 축구 게임이 있었다. ‘테크모(TECMO)’ 사에서 출시한 ‘캡틴 츠바사’라는 이름의 게임이다. 동명의 만화가 이미 있었는데, ‘츠바사’라는 말은 ‘날개(翼)’라는 뜻이다.

그래서 몇몇 잡지에서는 ‘캡틴익(翼)’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한 축구 관련 만화들 중에 비슷한 내용으로는 ‘축구왕 슛돌이’가 있었지만, 필자는 이미 ‘캡틴 츠바사’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축구왕 슛돌이’는 단순히 아류작으로 느껴질 뿐이었다(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꽤 높았다). ‘캡틴 츠바사’는 일본 내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의외로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렇게 높지 않은 듯 하다(‘축구왕 슛돌이’만큼의 지명도가 없음).

■ 페르난도 토레스 “축구선수 꿈꾸는 소년들의 성경”

‘캡틴 츠바사’ 만화의 경우 실제로 유명한 축구선수인 ‘티에리 앙리’나 ‘페르난도 토레스’같은 선수들이 어릴 적부터 보던 만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지금의 축구선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만화는 축구 세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만화다.

‘페르난도 토레스’는 영국 축구 잡지와 인터뷰 중에 ‘캡틴 츠바사 만화는 축구선수를 꿈꾸는 모든 소년들에게 성경과도 같은 만화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 또한 이 만화를 보면서 축구에 대한 열정과 스포츠맨십, 우정의 중요성 등을 배우며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꿈꾸며 자랐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젠나로 가투소’라던가 ‘나카무라 슌스케’등의 선수들도 이 만화를 보고 축구선수의 꿈을 꾸었다고 한다.

[사진 출저 : NHK]
필자도 어린 시절 만화를 먼저 보지는 못했지만, 게임을 하면서 축구가 참 즐겁고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느끼게 해준 게임이 바로 ‘캡틴 츠바사’ 게임이었다(하지만, 나중에 실제로 뛰어보니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축구왕 슛돌이’에 밀리는 이유가 한국 TV에서는 한번도 제대로 방영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한참 후인 2005년이나 되어서야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름도 ‘캡틴 츠바사’라는 이름은 그대로 쓰지 못하고 ‘캡틴 날개’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다(그런데 진짜 궁금한데 왜 ‘캡틴’은 되고 ‘츠바사’는 안 되는 거지?). 아마 그 당시 필자의 또래 중에 ‘캡틴 츠바사’를 만화 원작보다는 게임으로 먼저 접하게 된 친구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NHK]
‘캡틴 츠바사’는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지만, 홍콩에서도 꽤나 유명한 것 같다. 현재 홍콩에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기념으로 홍콩 번화가에 ‘캡틴 츠바사’ 5미터 정도의 대형 상을 4개나 설치했다고 한다. 홍콩에서도 굉장한 인기라고 하는데, 7월 2일까지 한정 설치라고 하니 실물을 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당장 홍콩 가는 티켓을..

한국에서의 인기는 ‘축구왕 슛돌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리는 느낌이지만, 절대 수준이 그 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다. TV만화로도 총 52부작이 방영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쯤 보면서 ‘축구왕 슛돌이’와 비교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그 당시에는 일본어를 TV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시대였는데, 한때 ‘축구왕 슛돌이’가 원래 ‘캡틴 츠바사’를 한국식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아니다. 싸움도 있었다. 실제로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캡틴 츠바사’의 인기가 더 많았다. ‘축구왕 슛돌이’는 상대적으로 밀리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다(비슷한 의미로 ‘피구왕 통키’ 역시 일본 내에서는 한국처럼 그렇게 큰 인기는 없었다고 한다). 인기도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캡틴 츠바사’와 ‘축구왕 슛돌이’의 DVD판을 구해보면 알 수 있다.

■ 시뮬레이션 축구 게임의 신기원
예전의 축구 게임은 물론이고 지금의 축구게임들도 하나 같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성 있는 축구 게임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필자와 같이 개발을 타고 난 사람들에게 사실성 있는 축구가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반대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게임에서나마 이루고 싶은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할 것 같다).

그래서 축구 게임들을 접하면 1시간도 못 버티고 패드를 집어 던지기 일쑤였는데 최강팀 브라질이나 스페인, 독일 팀을 골라도 FIFA 랭킹 200위 밖에 있는 나라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분통 터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사실성 있는 축구 게임 따위는 오히려 현실에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두 번 좌절하게 만드는 잔혹한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아직도 ‘피파’나 ‘위닝’은 접대용으로만 쓰고 있다).

[‘캡틴 츠바사’ – 아 이 황홀한 연출력..]
그렇게 축구 게임에 흥미를 잃고 있을 무렵 친구에게 빌려온 팩이 있었는데, ‘SFC’용 ‘캡틴 츠바사 3’ 게임이었다. ‘캡틴 츠바사 3’편은 8비트 패미컴 버전으로 출시되었던 1, 2편 다음으로 3번째 출시된 버전으로 16비트 ‘SFC(슈퍼 패미컴)’용으로 출시된 첫 버전이다. ‘캡틴 츠바사 3’편은 많은 ‘캡틴 츠바사’ 게임 마니아들로부터 2편과 더불어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 시리즈다(‘파이널 판타지’가 4, 5편 7편을 꼽는 마니아가 많듯이..).

필자는 3편을 해보고 바로 패미컴 버전인 2편도 구해서 해보았는데, ‘캡틴 츠바사’ 게임은 그 당시 여타의 게임들보다 확실히 배경음악이나 효과음들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화면 연출기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것이 지금 봐도 참고할만한 부분이 많다. 8비트 게임기였던 패미컴은 확실히 하드웨어 상의 제약조건이 많았지만, ‘캡틴 츠바사 1, 2’편을 보면 제약조건은 단지 핑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번쩍이는 단색 화면과 정지화면 몇 장으로도 굉장히 긴장감 있고 훌륭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캡틴 츠바사 2’편에서 주인공 ‘츠바사’의 사이클론 기술 습득 이벤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게임의 연출력이 하드웨어 제약사항에 구애 받지 않고도 이렇게나 멋지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런 게임이 16비트로 넘어왔다니 이건 이전보다 훨씬 더 긴박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연출이 더해져 축구 게임의 명품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게다가 그 당시 ‘SFC’는 하드웨어적으로 회전, 확대, 축소 기능을 지원했는데 ‘캡틴 츠바사’를 해보면 그 기능들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캡틴 츠바사 3’ – 당신의 선택은?]
필자는 한동안 ‘SFC’에는 늘 ‘캡틴 츠바사’팩이 꽂혀 있을 정도로 다른 팩으로 갈아 끼우지도 않고 이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 게임과 비슷한 느낌의 연출력을 보여주는 게임이라면 통칭 ‘슈로대’라 불리는 ‘슈퍼 로봇 대전’ 정도가 있다. 게다가 ‘캡틴 츠바사’ 게임은 기존의 사실성을 추구하던 게임과는 달리 굉장히 말도 안 될 정도로 만화 같은 장면이 계속되는데 사실 원작이 만화이니까 할 말은 없다.

예를 들면 슛을 했을 때 주인공급의 캐릭터들이 슛을 하면 그 공을 막으러 달려오던 상대팀 선수들이 가슴으로 막으려다 공을 맞고 튕겨져 날아간다던가 골키퍼가 공을 막으려고 펀칭하려다 공의 위력이 너무 세서 골키퍼가 날아가고 골대가 찢겨 나간다던가 하는 식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소림축구’를 보신 분들이라면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그러고 보면 ‘소림축구’도 이 만화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필자가 이 게임을 특히나 좋아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축구와 같은 사실성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축구라는 소재를 통해 벌어지는 캐릭터들간의 경쟁이나 우정, 팀워크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게임 역시 사실성 있는 드리블이나 패스와 슛을 통해 점수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중요한 순간마다 선택을 통해 전략-전술을 구사해 나가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시뮬레이션’ 방식의 축구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아 이 슛 맞으면 골대 터진다.]
필자와 같이 개발을 타고난 비운의 신체조건으로 현실 세계의 축구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라도 이 게임은 굉장히 재미있는 축구 게임이다. 축구의 룰이나 전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이 게임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을 어떻게 키워나가고 어떤 기술을 쓰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라지기 때문에 겁먹을 필요 없다. 실제 축구가 진짜 이렇게 황당무계한 무협지 같은 기술을 쓰는 선수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게임인데 뭐 어떠한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

[‘캡틴 츠바사 V’]
실제로 ‘캡틴 츠바사’ 축구 만화나 게임으로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꽤나 많은 편이고 일본의 ‘J리그’가 이 만화 때문에 생겨났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이다(사실 여부는 어디서 확인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인지도나 영향력이 있다는 증거이다.

[‘SFC (슈퍼패미컴)’]
그 당시 필자는 이제 막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상태로 이 게임 나오는 대사의 10%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어도 이 게임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냥 아무 키나 누르고 선택의 순간에도 이게 죽으러 간다는 건지 살러 간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그 뒤에는 멋진 연출의 화면이 보여지기 때문에 게임 하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면을 쳐다보며 게임을 했다.

나중에는 여러 번 누르다 보니 대충 어떤 기능인지 알게 되니까 자연히 게임을 잘 하게 됐다. 아마도 이 게임이 현실 세계의 축구를 기준으로 가장 허구에 가까운 낮은 단계에 있다면 사실성을 바탕으로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게임이 악마의 게임이라 불리는 ‘풋볼매니저’ 같은 게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선수의 시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피파’나 ‘위닝’과 같은 게임이 될 것이다.

[‘날아라 캡틴’]
필자는 스포츠 게임 같은 경우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성이 안 느껴지는 게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이 ‘캡틴 츠바사’라는 게임은 필자와 같은 부류에게 정말 좋은 게임 중에 하나다. 원작 만화 역시 한국에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했는데, 이름은 역시 맘대로 ‘날아라 캡틴’이라는 제목으로 정해졌다(역시나 ‘캡틴’은 되지만, ‘츠바사’는 안 되나 보다).

필자가 예전에 보던 번역본은 주인공 이름이 한국식으로 개명되어 ‘츠바사(날개)’라는 뜻을 차용하여 ‘한 날개’ 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 이후에 정식 출간된 버전에서는 제목에 일본어를 쓰지 않은 것과는 달리 내용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개명하지 않고 원작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날아라 캡틴’은 등장인물들의 원작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쓰는 만화 1호의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그런데 왜 내가 본 번역본에서는 한국식 이름이었지?).

■ 필자의 잡소리
아직도 많은 팬들이 있는 ‘캡틴 츠바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스포츠 만화로 ‘소년 점프’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1981년부터 1988년까지 1차본 37권 단행본이 완결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다른 잡지를 통해 후속작을 계속 연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아직도 미완인 상태다. 한국에는 1차본 37권 단행본까지만 나오고 그 뒤에 이어지는 ‘츠바사 월드 유스편(18권)’이나 ‘Road to 2002(15권)’, ‘Go to 2006’이나 단편 ‘캡틴 츠바사 골드 드림’과 같은 경우는 정식 출간된 적이 없는 것 같다(원작 구하기도 힘들다).

[‘캡틴 츠바사 3’]
동명의 게임은 1988년 ‘캡틴 츠바사 1’편이 ‘FC (패미컴)’ 버전으로 출시됐고, 1990년에 2편 역시 ‘FC’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1992년에 ‘SFC (슈퍼 패미컴)’ 버전으로 3편이 출시된 이후로 2년 간격으로 출시됐던 전작과 달리 1993년 4편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5편이 1994년 출시되어 ‘테크모(TECMO)’사에서 출시는 이로써 끝이 난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시리즈들이 출시되었지만 ‘반다이(BANDAI)’나 ‘코나미(KONAMI)’와 같은 다른 회사에서 출시한 게임으로 그 재미나 느낌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원작의 팬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었고, 현재에도 ‘캡틴 츠바사’ 게임은 ‘테크모’에서 출시한 게임을 최고로 꼽고 있다. 다시 4년 뒤에 이어질 월드컵을 기념으로 테크모에서 한 번 더 만들어주면 안 될까?

한국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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