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세상을 바꾼 명작...한국서는 서태지의 아이들과 동시대 인기

길거리 노는 형님들에 대한 피눈물 나는 로드 무비 액션 ‘스트리트파이터’ 게임이야 굳이 필자가 소개하지 않아도 소싯적에 게임 좀 해봤다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인기 게임 중에 하나다. 최근에까지 계속 시리즈가 이어지고 아직도 많은 캐릭터 상품이 출시되고 있는 한때 ‘CAPCOM’의 밥줄이자 미래였던 게임도 처음 시작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스트리트파이터 1 : 아니 류형 얼굴이 왜 그래!]
국민학교 시절 처음 동네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1’을 보았을 때만 해도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지만, 실제로 피 같은 동전을 잡아먹는 것을 경험했을 때에는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1980년대는 그래도 아직 이 땅에 상도(商道)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 피 땀 흘려 구걸하다시피 얻은 동전 하나로 최소한의 플레이 타임은 보장해주는 게임들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이 ‘스트리트파이터 1’ 게임은 나의 피 같은 돈이 눈앞에서 효용가치를 상실했을 때는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살던 동네 오락실에서는 얼마 안 가 이 기계가 자취를 감춰버렸고 한 동안 길거리 동네 노는 형들의 이야기는 이대로 끝이 나는 듯 했다. 그 당시만 해도 CAPCOM은 지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신생업체로 그것도 지방 오사카에 위치한 한국으로 치면 부산 어디쯤에 있는 소규모 스타트업 신생 업체였다.

■ 도쿄 소재 일본 아케이드 빅3-남코, 코나미, 타이토에 도전
그 당시 일본의 아케이드 시장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와 같이 남코, 코나미, 타이토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이 기사를 쓰고 있는 6월 11일은 CAPCOM의 창립 기념일 이기도 하다(1983년 6월 11일). 이 기사는 아마도 6월 16일 월요일이 막 시작될까 말까 도대체 이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의문스러운 그 시간에 편집국장님에 의해 세상에 공개될 것이다. 가끔 필자가 바쁜 척하며 일요일 오후에나 기사를 송부(送付)하기도 하는데, 마무리 편집 작업할 시간여유조차 주지 않고 편집국장님을 괴롭히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결국 이 기사도 13일 금요일 저녁에 완성되었다).

신생업체 CAPCOM이 1983년에야 시작한 것에 비하면 당시 아케이드 시장을 지배하던 남코는 1955년 6월 1일이 창립일이다. 코나미는 1969년 3월 19일이다. 타이토 역시 1953년에 설립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에 비해 1980년대에나 태어난 CAPCOM의 입지는 여러모로 열악하고 불리한 입장이었다. 이를 타개할 만한 무언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것을 만들어내야 할 강박관념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순전히 필자의 추측이다). 그런데 회사 이름의 유래를 보면 또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남코(NAMCO)의 경우 원래 처음 회사 이름은 한국에서 일본인 이름을 가지고 놀릴 때 주로 쓰는 ‘나카무라 제작소’라는 뜻의 ‘NAKAMURA Manufacturing Co.,Ltd ‘이었다. 그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는지 지금은 슬며시 ‘NATIONAL ASSET MANAGEMENT CORPORATION LIMITED’라는 단어의 약자로 NAMCO라고 우기고 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아케이드 시장 천하삼분지계를 실현하고 있는 3개 회사 모두 본사가 도쿄[東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도 본사가 도쿄에 위치해 있으며, CAPCOM은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에 위치해 있다. 오사카라는 도시는 ‘아즈망가대왕’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오사카 출신의 ‘카스가 아유무(春日 歩)’가 한국에 방영될 때 ‘부산댁’으로 나오면서 부산과 비슷한 도시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었다.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남코, 코나미, 타이토는 수도 서울에 위치한 잘 나가는 게임회사이고 CAPCOM은 서울 입장에서 보면 지방에 위치한 게임 업체인 것이다. 지금이야 CAPCOM도 잘 나가고 있지만, 처음 시작은 이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게임 하나 소개하는데 회사의 설립 배경부터 지리적인 위치 요인에 따른 부분까지 참 장황하게 말이 길었지만, 필자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는 것이 힘이다(뭐 대충 그럴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 게임 회사들의 이야기를 써볼 계획이다.

■ 오사카 지역 게임사 CAPCOM에서 받아준 게임 ‘환골탈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게임이 못내 아쉬웠는지 CAPCOM은 이 게임을 다시 살려보기로 한다. 정확히는 ‘오카모토 요시키’는 젊은 시절 이름처럼 반골 기질이 강했는지(이놈시키 요시키) 상사들 특히나 경영진들과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결국 그를 받아준 곳은 지방의 게임 업체인 CAPCOM이었고 거기서 그는 새로운 전설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심플하니 참 좋다.]
이미 ‘1942’ 게임과 ‘파이널 파이트’ 게임을 대성공시킨 그였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수가 없었는지 새로운 게임을 물색하던 중 참고에 조용히 잠자고 있던 ‘스트리트파이터1’을 꺼내들고 새롭게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살을 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불편요소와 망작의 기본 요건들을 과감히 제거해 나가며 전혀 새로운 모습의 ‘스트리트파이터’를 기획하게 되는데,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지금도 전설이 된 게임 ‘스트리트파이터 2’이다.

[스트리트파이터 1 세계 지도 - 이 자식들 한국은 또 빼먹었어!]
‘스트리트파이터2’가 전작의 1편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중에 가장 큰 차이점은 조작감과 다양한 캐릭터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동네 노는 형님(누님도 한 분)들이 등장하여 피 터지는 싸움을 하지만, 주고받는 주먹과 발길질에 상대를 존경하고 배려하는 우정이 담겨 있다. 이런 철학이 배어 그 이후에 설정들도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명품 게임이 출시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1991년 출시된 게임은 1980년대의 아케이드 시장을 정리하고 1990년대의 새로운 주인으로 ‘CAPCOM’이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신생 강호 ‘CAPCOM’의 뒤를 이어 또 하나의 새로운 강호가 일어섰으니 바로 ‘SNK’이다.

‘스트리트파이터 2’에 큰 감명을 받은 ‘SNK’는 일명 ‘스파2’를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그들만의 감각으로 새로운 대전 액션 게임을 만들어냈는데, ‘용호의권’, ‘아랑전설’, ‘킹 오브 파이터즈(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들이 그것이다. 1990년대는 그렇게 대전 액션 게임들이 아케이드 시장을 석권하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후에 쟁쟁한 라이벌 구도를 펼치던 이 둘은 루머로만 돌던 이야기를 실제로 이뤄내기에 이른다.

‘CAPCOM VS SNK’라는 게임으로 양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대전 액션 게임 마니아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었다. 영화로 치자면 최근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어벤져스’ 시리즈에 ‘저스티스리그’가 합쳐진 영화가 나오는 것만큼의 감동이었다. ‘울버린’, ‘아이언맨’, ‘헐크’, ‘토르’와 같은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마블 코믹스’에 소속된 캐릭터 영화에는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으로 ‘슈퍼맨’, ‘배트맨’ 같이 ‘DC 코믹스’에 소속된 캐릭터들이 나오지 못한다(언젠가는 꼭 한 영화에 같이 출연하는 것을 보고 싶다).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라.]

보통 줄여서 ‘CVS’라 부르기도 하는 ‘CAPCOM VS SNK’는 ‘CAPCOM’이 개발을 주도했다. 하지만, ‘CAPCOM’은 ‘갑’의 입장에서 억지를 부리지 않았고, 둘 다 경쟁하기보다는 하나로 합쳐 살아남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는지 많은 부분에서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예 중에 하나가 바로 ‘스파’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조작 시스템 6버튼 체계를 버리고 ‘SNK’의 게임과 맞추기 위해 4버튼 조작 시스템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야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들이고 ‘스파2’가 발매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일단, ‘스파2’ 자체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충격도 가시지 않았던 상황이라 그럴 정신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처음 동네 오락실에 괴상한 게임이 하나 들어왔는데, 기존 게임들처럼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종’이던 ‘횡’이던 스크롤도 없이 그냥 화면 하나(스테이지)에서 왔다 갔다만 하면서 주먹질 발길질을 해대는데 버튼은 손, 발 2개만 있어도 될 것 같은 것이 어찌 6개나 버튼이 달려있는지 그것부터가 굉장히 충격적인 게임이었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무렵에는 이 버튼 6개로 조합을 해서 기술을 써야 되는데, 그것이 36가지 조합도 아니고 약, 약, 중 하는 식으로 무려 180가지가 된다는 둥 괴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점은 기계 앞에 앉았다 일어서는 시간이 매우 빨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게임을 만든 것이 아니라 거의 동전 잡아먹는 새로운 기계가 새로 개발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동전이 눈앞에서 신속히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몇 몇 친구들은 소위 ‘얍삽이’라 불리거나 동네에 따라 ‘짤짤이’ 등으로 불리는 신경질, 짜증을 유발하는 새로운 공격 기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얍삽이’에 당하면 분노가 극에 달하며 오락 기계 안에서의 싸움은 종종 현실에서의 주먹질, 발길질로 이어지기도 했었다(필자의 친구 중에서도 브랑카로 제 자리에 앉아서 전기만 지지는 놈이 있었는데, 의자들이 날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쌍끌이 인기-주마가편(走馬加鞭)
이렇게 한 방에 대박을 터트리고 흥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게임들도 많았지만, ‘CAPCOM’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스파2’ 대박 성공 이후로도 꾸준히 불편요소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면서 업데이트-유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실제로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만 해도 수 십 타이틀에 이른다.

[‘CAPCOM VS SNK’ - 이런 꿈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줄이야..]
또한, 일본,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게임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USA’에 당당히 입성하여 전 미국에 대전 액션 게임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북미에서는 게임과 함께 동양의 이미지로 디자인됐던 캐릭터들이 북미스러운 스타일의 우락부락한 캐릭터로 변한 ‘스트리트파이터’ 관련 애니메이션 들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90년대를 장식했던 ‘스트리트파이터’ 게임의 등장이 세상을 변하게 한 점이 또 하나 있다면, 기존의 게임들에서는 단순히 주인공 캐릭터는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Game Object’에 불과했지만, ‘스파2’ 이후로 플레이어들은 각각의 캐릭터들 중 취향에 맞는 캐릭터에 보다 더 몰입하여 자신과 일체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일종의 ‘오프라인 아바타’와 같은 개념이 생겨난 것도 이때쯤이다.

전교 ‘류’짱 친구와 ‘가일’짱 친구가 타이틀 매치를 하는 날이면 뒤 쪽으로 관중들도 북적거렸고, 친구들마다 마지막 비장의 히든 카드처럼 제일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캐릭터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참고로 필자의 주 캐릭터는 ‘춘리’였다. 승률은 35% 정도 됐던 것 같다. 이 게임이 그 당시 필자와 그 주변 친구들에게 미친 영향 중에 하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던 학교 짱들에게도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눈치 없이 너무 격하게 이겨버리던가 자주 이기면 그 뒤로도 괴롭힘이 더해졌지만, 그래도 한두 번쯤은 사나이 vs 사나이로 통렬한 격투를 통해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수 있기도 했다(필자는 중 2때 3학년 형을 연타로 이겼다가 그 뒤에 연타로 두들겨 맞았다).

‘스파2’가 세상에 공개 되고 얼마 안 있어 한국에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다. ‘스파2’의 등장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는데, 1991년, 1992년에 일어났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다.

■ 하이텔 정영덕 님 혼자 PC용 개발 감격 ‘또다른 전설’
‘스트리트파이터 2’ 얘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아직 PC버전이 발매되기 이전에 콘솔 게임기가 없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스파2’를 하고자 하는 염원을 이뤄주기 위해 당시에 ‘CAPCOM’에서조차 생각하지도 않았던 PC버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하이텔에서 활동하던 ‘정영덕’님께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SFC’버전의 ‘스트리트파이터 2’를 ‘비디오 블래스터’를 이용하여 스샷(캡쳐) 노가다를 통해 스프라이트 파일을 작성하여 PC용으로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도트가 상당히 튀는 등 원작에 비해 다소 부족한 퀄리티를 보여줬지만, PC에서 ‘스파2’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파2’ 유저들은 감격했다.

이후에 계속된 업데이트로 원작에 가까워져 갔고 그 이후에 다른 파생 버전도 여럿 공개됐다. (이를 테면 드래곤볼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버전이라던가..) 지금에서라면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특히나 라이선스 문제.. 그 당시에는 그런 부분보다는 ‘스파2’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이뤄낸 결과라는 것에 대해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그 때도 따로 연락드릴 사이가 아니라서 감사의 표시를 하지 못했는데, 20년이나 지나서야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린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영덕(wd40)님 덕분에 수 많은 동전을 세이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한국의 게임업계가 지금처럼 거대해지기 이전 한국인 게임 개발자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에 간간이 게임 잡지나 신문에서 한국에서 개발한 게임! 이라며 짧은 뉴스만 접할 수 있던 시절에 ‘스파2’라는 세계의 대작 게임을 한국에서 한국인이 PC버전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장래 게임 개발자가 되고자 했던 필자에게 큰 용기를 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필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정영덕’님의 PC버전]
이렇게 ‘스트리트파이터 2’ 게임은 본 게임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필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원작 개발사인 ‘CAPCOM’보다 한국의 PC통신에서 활동하던 개인 개발자의 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된 PC버전 ‘스파2’를 접한 필자에게 꼭 게임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게임 개발자로 빈둥거리면서 잘 살고 있다.

‘스파2’ 이후로도 계속 된 시리즈가 성공하고 지금도 ‘스파’ 시리즈는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모든 영광도 비운의 명작 ‘스트리트파이터 1’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스파1’이 없었다고 해도 ‘스파 2’같은 게임이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실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스파 1’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작의 실패를 이겨내고 역전의 화려한 부활을 한 게임도 많지 않다.

‘스파2’는 유저들뿐만 아니라 오락실(업소) 주인 아저씨들에게도 굉장한 환영을 받았다. 일단 테이블 회전이 굉장히 빨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판에 100원하던 게임보다도 비싼 게임비도 한몫했다. 필자의 동네에서는 ‘스파2’ 출시 초기에 한 판에 300원이나 했다. 단순하게 ‘세상을 변화시켰다’라고만 하면 상당히 거창하지만, ‘(게임)세상을 변화시켰다’라고 하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은 현재 ‘전설’이 되어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다.

■ 필자의 잡소리
최근 게임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중독이다, 마약이다 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 된 것 같다. 아마도 ‘스트리트파이터’가 기존에 없던 게임으로 최근에 출시가 되었다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 보고서 등에 폭력성에 대해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 같다.

[아 마이 누님..]
하지만, 생각해보면 ‘스파2’가 처음 출시된 그 때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고 TV뉴스나 신문에서 ‘스파2’를 하던 청소년이 폭력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등의 뉴스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그렇게 ‘워짭짭두겐’ 이니 ‘아도겐’ 이니 전기를 지져대고 ‘소닉붐’을 날리던 친구들도 실제로 사회(현실)에 나와서까지 그 폭력성에 영향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어찌됐던 적절한 시기에 때를 잘 맞추어 출시하는 것도 복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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