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EI' 전략 시뮬레이션...전쟁에서 이기면 그 나라 왕비를 아내로 '열광'

중국(中國)이라고 하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문학적인 면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많은 작품이 있다. 최담난의 열대기후부터 최북단의 냉대(북해빙궁)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자연환경에 전시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경제 규모에서 미국에 이어 2위지만 구매력으로만 보면 세계 최대 강대국이다. 이처럼 잘 나가고 있는 엄친아 같은, 옆집에 샘나는 친구 같은 존재다.

지리적으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한국과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은 예로부터 꽤 오랜 시간을 좋게 말하면 외교적인 관계를 잘 유지해왔다. 비꼬아 말하면 상전으로 받들며 살아왔다. 현재 중국 땅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거의 예외 없이 침입을 받기도 하는 등 어찌 보면 일본보다도 더 전쟁을 많이 겪었다. 그래도 다행히 민초들까지 힘을 모아 결사항전으로 나라를 지켜내어 아직까지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쓰면서 살고 있다(조상님들의 조상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혹독하고 어려움을 안겨준 일이라면 몽고의 고려 침략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일이라면 그 당시에도 최상위 집권층은 강화도로 이미 내뺀 상태였고, 내륙의 백성들은 온갖 횡포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내륙에서의 전투도 사실상 대부분 농민과 천민들에 의해 치러졌고 어느 성에서는 관노비들만이 끝까지 남아 항전하기도 했다(‘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은 언제쯤 우리나라에서도..).

[징기 징기 징기스칸~!]
그 당시의 가히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게임도 있었으니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게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KOEI’에서 개발한 ‘원조비사’ 라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 중에 한 명인 ‘징기스칸’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으로 이 게임의 특이한 점은 처음 시나리오는 몽골 대륙을 통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몽골대륙을 통일하면 그 때 게임의 맵이 세계 맵으로 바뀐다. 본격적으로 세계정복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영화나 게임의 주인공으로도 많이 나오는 세계적인 캐릭터이지만, 바로 옆에 붙어 살고 있는 한국에게는 좋은 추억만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저렇게 한국을 쳐들어왔단 말이지..]
실제로 현재 한국에는 그 당시 몽고의 침략으로 꽤 오랜 시간을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그 당시 몽고의 관습이나 문화가 아직도 현대 사회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그 당시 몽고라는 나라는 여기저기 침략질하고 다닌 것 치고는 꽤나 개방적인 문화를 지향하는 국가로 실크로드 사막길도 다시 부활시키고 중국 땅 안에서 서역인이라 불리는 외국인들은 물론 지금의 동남아 지역인 월남인 등 국제적인 통합 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국의 경우 총 7차례에 걸쳐 몽고의 침략을 받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옆 나라 일본은 그 당시 몽고의 침략을 태풍의 힘으로 물리쳐 그것에 감동 받았는지 이 태풍을 ‘신풍(神風, かみかぜ, kami-kaze, 카미카제)’이라고 부른다(이거 도대체 카미카제 하나를 몇 개 표기법으로 써야 되는거야..).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특공대로 유명했던 ‘카미카제’의 기원이 바로 이때였다.

그리고 사실 중국(中國)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뭣한 것이 그 당시 중국 땅에 위치한 원나라는 중국을 점령한 이민족이었을 뿐이다. 뭐 그래도 몽고 아니어도 중국에서 침략한 것도 꽤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 약소국의 피눈물 나는 설움
이 게임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이나 전국의 열혈 청소년들에게 므흣한 헛된 망상을 심어주게 만든 게임 내 콘텐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 어떤 선택을?]
뭐, 인류 보존 계획의 숭고하고 거룩한 사명을 띠고 역사적인 침략을 저지르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 나라의 왕비를 아내(정식은 아니고..)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막연히 맞이했다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꽤나 구체적으로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메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필자도 유럽의 백인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밤을 새며 전투를 했었는지..

하지만, 이것도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그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 왕비는 아내로 맞이했지만, 왕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당연히 사라진 것으로 마무리된 건가? 참고로 고려의 왕비는 굉장히 도도하고 고고(高古)했다는 기억이 난다. 점령을 당하는 국가의 왕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치욕적이고 진노할 일이지만, 어쨌든 이 게임의 주인공은 전 세계를 점령하고자 하는 정복자의 입장이다. 정복 이후에 굳이 ‘후궁 시스템’을 넣었어야 했나? 하는 의문점이 있지만, 그 때 철없던 청소년기 시절에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을 리가.. 그래도 그 당시에 암암리에 교실 전체를 떠돌던 소위 빨간 비디오 보다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었다. 

[여보! 미안해!]
이토록 주변국들과 대륙 너머 또 다른 대륙에까지 온갖 민폐를 끼치며 승승장구하던 몽고도 지금은 대륙에서도 내륙 한 가운데 위치해서 주변에 바다라고는 천체망원경으로 봐야 보일 정도로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이 전 국토의 30%가 넘고 기후 또한 여름에는 굉장히 무덥고 겨울에는 영하 40도에 이르는 혹한이 이어지는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다. 전 국토에서 농작물 경작이 가능한 토지는 1%도 안 되며, 99%의 토지가 초원, 사막 지대이다.

그래서였는지 그토록 보다 나은 기후와 자연환경을 갖추고 사는 나라들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괴롭히던 약소국과 같은 신세가 되어 한때는 점령자로 군림하던 중국 땅에서 쫓겨나 1688년 결국 청나라에 의해 복속되기에 이른다. 국가가 소멸하고 이름도 ‘자치구 외몽골’로 변방 취급당하기를 200년이 더 지나서야 1911년 겨우 중국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지금의 몽고로 독립하였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역시 남을 괴롭히면 언젠가 자신도 그 화를 당하기 마련이다).

언젠가 [게임별곡]기사에 대해서 애독자분 중 한 분이 너무 주제와 동떨어진 잡설이 많지 않느냐? 하는 충언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필자는 게임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한 분야나 주제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종합적인 인류 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원조비사’ 게임 하나 때문에 뭔 놈의 몽고라는 나라의 기원과 흥망성쇠(興亡盛衰)까지 알아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필자는 단언하다. ‘알고 하면 더 재미있다.’ 

■ 시작은 일단 부족을 하나로..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세계를 지배하기 전에 일단 흩어진 부족들부터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필자는 그 말보다는 안 감독이 서태웅에게 ‘먼저 국내 최고가 되어라’ 라고 한 말이 더 와 닿는다.

[먼저 국내 최고가 되어라.]
게임 시작 시 시나리오 선택 화면에 보이는 메뉴 중에 1번 시나리오는 몽고편이고 2번, 3번 시나리오는 세계편이다. 1번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몽고 전체를 통일하게 되면 자동으로 2번 세계편으로 넘어가게 된다.

화면에 보이는 ‘테무진’은 아시다시피 ‘징기스칸’이 되기 이전 이름이다. ‘테무진’이 1206년 ‘몽골 울루스(큰 몽골 나라)’라는 나라를 세우고 통치자의 칭호로 ‘징기스칸’이 되었다. 아직은 몽골의 지방 세력에 불과하므로 ‘징기스칸’이 아닌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웬만한 게임 두 개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임에 등장하는 국가만의 특수 병과들 역시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데,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해서 전장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코끼리 병사들도 볼 수 있다(물론 그 코끼리 보다는 엄청 작다). 여담이지만 그 장면에서 필자는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했던 ‘AT-AT’가 떠올랐다.

다시 본론을 돌아와서 ‘원조비사’ 게임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다 보니 그 당시에 사용 했던 기본적인 무기 칼, 창, 활은 물론이고 보다 더 선진화된 국가들의 경우 화약병기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총 16개의 세계적인 부대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제일 강력한 부대는 당연히 주인공 국가인 ‘몽고 기병’과 옆 나라 ‘일본 무사’다.

그래서 총이나 대포를 가졌어도 그것만으로 전 세계를 정복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게임을 해보면 알게 된다. 물론 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반드시 정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라는 것을 게임 하는 내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의지와 열정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럴 때에는 언제나 ‘PC-TOOLS’나 Text Editor들의 힘을 빌리면 됐었다.

[누구나 기억하는? 화면]
아마도 1980~90년대에 게임을 했던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화면이다. 특히나 ‘KOEI’의 게임을 많이 했던 유저라면 삼국지, 랑펠로, 원조비사 등 늘 쪼달리는 병사와 군수물자, 군자금을 충원 하느라 들락날락 했었을 것이다. 꼭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니더라도 액션이나 슈팅 게임들에서도 생명력을 늘린다든가 폭탄 개수를 늘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많이 썼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이런 개개인의 수작업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자 사명감에 불타는 몇몇 암흑인들에 의해 전문 에디터 프로그램들이 배포되기도 하였고, 현재에도 각종 게임의 에디터 프로그램들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당시 제일 많이 쓰였던 툴은 ‘PC-TOOLS’라는 툴이다. 이 덕분에 필자는 16진수라는 새로운 수의 체계를 알게 되었고, 이것은 나중에 직업 프로그래머로 생활비를 마련 할 때 두고두고 도움이 되었다. (컴퓨터의 메모리 주소체계)

이 게임에서 눈 여겨 볼 부분 중에 하나는 현재 재벌 가족경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게임에서도 자신의 왕자를 장군으로 임명하는 메뉴가 있는데, 이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다. 실제로 징기스칸 역시 초년 시절에 수많은 지인들의 배신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은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꽤나 신중했을 것이다. 단, 왕자는 10살이 넘어야 장군으로 임명할 수 있다. 그래도 10살이면 10대로 쳐주니까.. 9살과 10살은 많은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배신하지 않는 아이는 황새가 물어다 준다든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다든가 알에서 깨어난다던가 하지 않는다.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후궁 시스템’을 잘 활용해야 한다. 체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여러모로 어려움이 존재한다. (음?)

게임의 난이도는 전체적으로 높지는 않은 편이다. 물론 최약소 국가를 일부러 선택했을 경우에는 죽을 맛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만.. 타 국가를 점령 할 때도 꼭 전쟁이라는 강경수단을 쓰지 않아도 ‘항복권고’라는 메뉴를 통해 점령이 가능하다(의외로 항복이 잘 먹힌다). 전쟁 역시 크게 어렵지 않은 시스템으로 전투 맵 자체의 크기가 상당히 아담한 편이다. 실질적인 지형을 활용한 전술을 펼치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 점이 게임의 전체적인 난이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지옥을 맛보고 싶으면 ‘고려’를 선택하라!).

■ 필자의 잡소리
처음 이 게임을 접했을 때는 ‘고려’라는 나라는 맵에 존재하는 정복 대상국가일 뿐이었다. 선택을 할 수 없고 오로지 점령 이외에는 쓸모가 없는 국가였지만, 한글판이 정식 발매되면서 ‘고려의 대몽항쟁’ 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시되면서 시나리오 상 고려가 선택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선택 가능하게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아서 내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몽골언덕의 징기스칸 초상화 (참조 : 네이버캐스트 인물세계사)]
하지만, 그렇게 국내 출시 덕분에 억지 춘향이식으로 선택 가능하게 되었지만, 선택만 가능하지 그 뒤에 일은 피눈물 나는 고난이도의 행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고려로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게임 내 최강군단으로 군림하는 ‘몽고 기병’과 ‘일본 무사’가 바로 옆으로 좌우에 나란히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 번도 고려로 전세계를 통일해보지 못했다. 물론 고려로 전 세계를 통일한 전략가도 존재하겠지만, 에디트 한 번 없이 통일하기란 정말 힘들다.

어찌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힘없는 설움을 당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서 울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이 땅에 깃발을 꽂은 단군 할아버지를 탓하기도 뭐하고.. 이래서 초기에 서버-진영 선택 한 번 잘못하면 나중에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가끔 현실 세계도 ‘PC-TOOLS’같은 툴로 에디트가 가능하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본다. (그럼 일단 내 통장에 잔고는 ‘FF FF FF FF’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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