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보다 시청률 높아 신드롬, 흉내낸 소년들 주먹 부상 속출

어릴 적에 보던 만화책들은 주로 300~500원 정도 하는 손바닥 크기의 해적판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중에 거의 99%가 일본 만화들이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 문화 개방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온갖 해적판들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직수입이니 병행수입이니 하는 개념도 아니고 그냥 몰래 들여와서 먼저 찍어내는 사람이 임자였던 문화콘텐츠 해적질이 비공식적으로 승인 되었던 암흑의 시기였다.  

하지만, 점점 좁아지는 지구촌 세계에서 변해가는 세상을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로 가릴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다. 그 뒤로 점차적으로 즉시 개방할 분야와 개방 이후 단계적 개방에 대한 정책을 시행하여 현재는 일본 대중문화 유입이 전면적으로 허용되어 있다(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음반 등..). 

[성투사성시(聖鬪士聖矢 : 세인트 세이야)]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이 수십 년 넘게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는 거의 대부분 일본의 것이고, 지금의 중장년층이 기억하는 추억의 캐릭터들 역시 거의 대부분 일본의 것이다. ‘미래소년 코난’이나 ‘은하철도 999’ ‘하록선장’ ‘캔디’ 등 수없이 많은 캐릭터들이 일본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개방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 춘향이식의 한글화 정책의 반영으로 주인공의 이름들이 철수니 영희니 하는 수준으로 개명(改名)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던가 ‘기쿠지로의 여름’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아마도 1998년 이전이었다면 ‘영희와 철수의 행방불명’이라던가 ‘김철수의 여름’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됐을지도 모르겠다. 

한때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사이버 포뮬러’의 경우에도 상대팀인 ‘아오이(AOI)’이라는 단어가 일본어이기 때문에 공중파 TV에서 그냥 내보낼 수는 없었고, ‘AOI(아오이 영문)’를 ‘에이(A) 오(O) 원(1)’ 팀이라고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참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영어도 되도 일어는 안 되던 시절이다). 

각종 해적판 수입 상가라던가 음반 하나 구매하기 위해 EMS 항공 우편으로 일본 현지의 유학생들과 거래를 하고 ‘드래곤볼’이나 ‘시티헌터’ 해적판도 여러 개 버전이 있어서 어디서는 ‘사에바 료’라고 나오는 주인공이 어느 버전에서는 ‘우수한’으로 나온다든가 또 다른 버전의 다른 이름도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허용되지 않았던 ‘일본 대중문화 암흑의 시절’ 이야기는 후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세인트 세이야! – 페가수스 판타지!]
그 범람하던 해적판 핸드북 중에서도 1980년대를 주름잡은 작품들이 있다면 ‘드래곤볼’이나 ‘닥터슬럼프’, ‘북두의 권’과 함께 ‘성투사성시(聖鬪士聖矢:세인트 세이야)’가 있다. 이 만화는 ‘성의’라 불리는 자동으로 분해조립이 가능한 갑옷을 입고 고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년 액션 활극 판타지다.  

그런데, 그 당시 이 만화에는 문제점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필자를 제일 고통스럽게 만든 부분은 만화 중의 한 장면이다. 만화 시작 부분에 주인공의 누나가 꼬마였던 주인공을 훈련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문제의 시작인 것이다.  

그 장면에서 주인공의 누나가 꼬마였던 주인공에게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파괴한다는 것은 원자를 부순다는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이 당시만 해도 소립자, 미립자의 개념은 별로 없었고, 학교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는 원자이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이다. 라고 배웠던 시절이다). 게다가 파괴하려는 일점에 소우주를 불태우면 파괴할 수 없는 물질은 없다. 라는가 하는 식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사기를 친다.

[문제의 사기 장면 – 소우주를 불태워 돌을 깨보라고?]
그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30년 전의 필자는 이 장면을 만화책(해적판)으로 먼저 보았다. 그리고 온몸이 전율에 불타오르며 상당히 감동했다. 너무나 그럴싸해 보였고 왠지 내 몸 안에도 어딘가 소우주가 불타고만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온몸에 정신을 집중에 타격 일점을 노리고 현관 계단 옆 수석을 향해 내리친 순간 경쾌하고 청량한 소리와 함께 돌 대신 주먹이 원자 단위로 으스러졌던 것이다. 한 동안 깁스 하고 팔도 못 쓰고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내 소우주가 아직 부족한가?’하는 생각을 했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짓이다. 

미약한 소우주의 주먹으로 돌을 으깨려다가 반대로 돌이 주먹을 으스러뜨리는 사고 외에도 1초에 100번의 주먹을 뻗는다는 ‘페가수스 유성권’을 연마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짓거리 하는데 허비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도 다 추억이다. 그래도 1초에 100번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바보 같았던 그 때에도 1초에 1억 번을 뻗는다는 주인공 스승님의 ‘광속권’은 감히 따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인기 원작 만화, 애니-게임으로 잇따라 출시

이렇게 한 어린이의 주먹을 원자 단위로 바꿔놓을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의 만화가 게임으로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 만화 역시 만화책은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으로 다양하게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실현했다. 하지만, 실제로 출시된 게임 중에서 ‘성투사성시’ 원작의 제대로 된 느낌을 주는 게임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1987년 – 패밀리 게임기로 등장한 ‘성투사성시’ 게임]
이것은 비교적 최근의 게임들도 마찬가지로 ‘성투사성시’ 원작의 내용처럼 다소 황당하지만 가볍지 않고 묵직한 주제를 유저들에게 전달하기에는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출시된 게임들의 경우 단순히 액션의 묘사에만 치중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고, 피 끓는 그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얼마든지 재미있게 게임을 즐긴 분들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114편의 본편 애니메이션 주제가만큼의 감흥도 주지 못하는 몇 몇 게임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성투사성시’ 원작의 경우 1986년 ‘쿠루마다 마사미(車田正美)’에 의해 그려진 198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명작이다. 그 내용과 설정 모두 일개 코흘리개가 단순하게 보고 이해할 만큼 가볍지 않은 대작이었다. 원작의 내용은 그리스 신화를 기본 토대로 하여 북구 게르만 신화와 같은 북유럽 신화의 내용까지를 포함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주제로 설정 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뜨거운 액션으로 내용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다. 

[1987년 – ‘성투사성시’ 게임 : 주인공의 마무리 필살기 – 페가수스 유성권]
이런 거대한 세계관 설정 위에 주인공과 그의 친구가 되는 다른 성투사(聖鬪士)들과의 우정과 갈등을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보통은 거의 진중하다). 하늘에 빛나는 88개의 성좌를 수호하는 각 별자리의 성의를 입을 자격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6년간의 목숨을 건 수행을 거쳐 여신 아테나를 위해 성투사(聖鬪士)로 거듭나는 것이다.  

반드시 이런 내용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마치 풀베기 게임과 같은 단순한 액션 게임으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어 아쉽기도 하다. 한국은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지만, 게임만큼은 원작(만화, 애니메이션)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주가가 한참 높았던 때에는 TV애니메이션으로 11%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드래곤볼’보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원작을 소재로 한 게임은 ‘드래곤볼’ 게임보다 한 단계 낮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서도 ‘성투사성시’보다 ‘드래곤볼’을 더 잘 아는 친구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이것은 역시 말 그대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인가? 아마도 ‘시티헌터’나 ‘란마 1/2’를 기억하는 사람보다도 적을 것 같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렇게 출중한 원작을 두고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드래곤볼’의 경우 온갖 잡다한 게임들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수십 종 이상의 게임이 꾸준히 출시되었고, 외전이나 TV편도 계속해서 제작되었다. 또한 ‘드래곤볼’은 캐릭터 사업으로도 어느 정도 시장을 차지하고 있고 매년 개최되는 국내외 유명 피규어 모델 대회에서도 주인공인 손오공이나 트랭크스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등 최근까지도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투사성시’의 경우에는 한때 그 인기가 ‘드래곤볼’이상으로 드높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드래곤볼’의 경우 얼마 전 2014년 5월 30일에 ‘드래곤볼 풀 컬러판 사이어인 편’ 1~3권이 나왔을 정도로 최초 출시 이후에도 지금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하게 관리하고 독자, 유저들에게 잊혀지지 않게 계속해서 새로운 내용을 선보였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성투사성시’ 경우에는 최초 출시 이후 큰 인기를 얻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이후로 한 동안 방치하다시피 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져가는 잊혀진 명작이 되어 가는 중이다. 

[소년이여 불타올라라!]

물론 일본에서는 최근까지도 작품활동을 여전히 진행중인 듯 하고 게임도 출시되는 듯 하지만, 판매량을 인기도로 보았을 때 그 인기가 예전만큼은 아닌 듯 하다.

얼마 전에는 원작의 작가 ‘쿠루마다 마사미’ 데뷔 40주년 이벤트가 있었다. 그리고 ‘성투사성시’ 역시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에피소드 G’ 시즌 2 연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국내에 정식발매 번역본의 꿈은 요원할 것만 같다. 

[어째서 ‘진삼국무쌍’만큼 유명해지지 못한 거냐!]
그나마 최근에 출시 된 PS3용 ‘성투사성시 : 세인트 세이야 전기 (Saint Seiya: Sanctuary Battle)]’ 게임은 기대를 많이 해서 실망이 컸는지 필자가 생각했던 ‘성투사성시’라기보다는 뭔가 ‘북두의 권’에 가까운 액션 게임으로 출시되어 실망을 많이 했던 작품이다. 캐릭터 묘사도 왠지 원작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그래도 ‘성투사성시’는 생각보다 제법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들이 출시되었다. FC는 물론이고 GAME BOY용으로도 출시되었고 닌텐도 DS, PSP, PS2, PS3용으로 출시되어 웬만큼 구색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필수 구매 타이틀에는 못 미치는 내용으로 원작의 열혈팬이 아닌 이상 돈을 들여가며 구매 할 타이틀에는 끼지 못하는 것 같다.

[제발 사달라고!] 

■ 필자의 잡소리

필자가 ‘성투사성시’를 특별히 애착을 갖고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주인공이 말(페가수스) 성의를 입는 성투사라는 점이다. 필자가 말띠이기 때문에 뭔가 웃긴 얘기지만 어린 시절의 필자는 같은 말을 주제로 하는 만화를 보면서 필자의 가슴속에도 어딘가에 소우주가 불타오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페가수스의 기운이여 솟아라!]
아직도 연재활동을 하고 있는(그런데 한국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는) 원작의 작가 ‘쿠루마다 마사미’는 1953년생이다. 즉, 한국 나이로 환갑이 넘었다. 대표작으로는 ‘성투사성시’ 시리즈와 ‘링에 걸어라’ 등이 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를 보며 필자 역시 60이 넘는 나이까지 계속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에 대해 얘기하기를 즐겨 하는 할아버지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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