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MMORPG의 아버지, 3년간 개발 전념 "역시 제이크"

송재경 대표 '아키에이지 경쟁자는 리니지와 아이온'

한국 MMORPG의 아버지, 3년간 개발 전념 "역시 제이크"

"스타크래프트2와 아키에이지, 또 같은 해 출시는 정말 우연의 일치다.”
 
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세계 최초 온라인게임으로 알려진 '바람의 나라'(넥슨)와 MMORPG(다중접속온라인 역할수행게임) 최초로 대중화를 이룬 작품 '리니지'(엔씨소프트)의 개발자.
 
한국 MMORPG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재경(42)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지금 서울 테헤란로 역삼동 현정빌딩에서 야심작 '아키에이지'의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3년의 시간, 개발 비용만 300억여 원이 투자됐다. 올 여름 중 클로즈 베타서비스다. 우연일까. 그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블리자드, 이하 와우)에 대한 자신의 불만족을 채우고 구현했다고 했다. 그는 1998년도에 리니지를 만들 때 스타크래프트와 경쟁했다. 어, 이번에는 스타크래프트2다.
 
스타크래프트와 인연 “우연의 일치”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 아키에이지와 스타크래프트2 출시가 기이하게도 같은 해에 이뤄진다. 나름 특별한 인연이다. 그는 “장르도 다르고,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좋은 징조”라고만 했다.
 
‘아키에이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넥슨 창립멤버였고, 리니지를 개발하며 엔씨소프트 부사장이었던 그는 2003년 엑스엘게임즈를 설립했다. 엑스엘게임즈의 첫 게임인 레이싱 장르의 ‘XL1’이 잘 안될 때였던 2006년 그는 생각했다. “역시 전공분야인 MMO를 해야겠다.” 그는 당시 와우를 오래했다. 최고급 아이템도 맞추었다. 매일 하루 3시간씩 하다 보니 “와우도 이러이러한 한계가 있구나, 와우 단점을 개선한 MMO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2006년 말쯤 작가를 섭외하고, 2007년 초 엔진(크라이2) 선정하고 그해 8월에 엔진을 가져왔다. 그는 순정만화를 좋아한다. 이현세-허영만-이상무 등도 좋아했지만 그가 게임 원작자로 택한 건 만화가 신일숙(바람의 나라)-김진(리니지)와 판타지 소설가 전민희(아키에이지) 등 죄다 여성들이다.
 
그는 “남자 만화가나 작가들은 인연이 없었다. 전민희 작가의 경우 ‘세월의 돌’ 읽고 좋아 접촉했다. 그의 ‘룬의 아이들’의 세계관을 담은 게임 ‘테일즈위버’(넥슨)를 만든 경험도 있어 서로 타이밍이 맞았다”고 했다. 
 
게임 이름 ‘아키에이지’를 소문자로 써보면 archeage다. 뒷부분이 ‘리니지’(lineage)랑 비슷하다. 송 대표는 누구보다 탄탄한 원작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애착이 강하다. 그는 “리니지 초창기 게임 분위기, 커뮤니티 재미 등 추억을 떠올렸다. 리니지의 현대화, 리니지 정신 계승 등, 옷은 갈아 입어서 외모는 달라졌지만 그 모습을 살려 옥동자를 낳겠다”고 했다. 어쩐지 게임의 이름이 태초의 시대, 근본의 시대더라.
  
사장실이 따로 없는 이유
엑스엘게임즈 사무실에는 100명 가까운 직원이 있음에도 사장실이 따로 없다. 송 대표는 사무실 한쪽 구석의 일반 직원과 똑같은 책상에 앉아 일한다. '애플빠‘ 답게 그의 책상 위에 애플 PC, 아이폰 등 애플 관련 기기들이 즐비하다. 
 
그는 “직원들과 같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직원들이 게임 이야기할 때 얻게 되는 정보가 있다. 그것이 무의식 중에 쌓이면서 얻는 정보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직원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소중히 여겼다.  
 
송 대표가 생각하는 엑스엘게임즈는 어떤 회사일까. 그는 “장차 개발뿐만이 아니라 퍼블리싱도 하고 싶고, 좋은 MMORPG 회사로서 다른 온라인 게임, 소셜 네트워크 게임도 할 수 있었으면” 바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MMO 해외 수출을 했으면 한다. 지사도 세우고 그런 회사도 만들고 싶다“게 그의 꿈이다.
 
그가 앉은 등 뒤는 회의실 문이다. 입구에 비틀즈 젊은 시절의 포스터가 걸렸다. 그가 붙여 놓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엑스엘게임즈 로고 위의 붉은 색 나비다. 이 나비는 호접몽(胡蝶夢)으로 유명한 ‘장자의 나비’다. 회사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오면 마주 보이는 벽면에 ‘盡人事待天命’이라는 한문이 쓰여 있다.
 
그가 고3 때였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집에 오는 시간을 1년 했어요. 학력고사 시절에요.  제가 요즘 그렇게 살고 있어요. 고3 때 제 책상 앞에 써놓았던 것이 ‘진인사대천명’이에요. 이 사무실에도 똑같이 붙였어요. ‘성공하고 마느냐는 하늘의 뜻이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다해보자’는 뜻이죠.”
 
송 대표는 자신의 세 번째 MMORPG '아키에이지‘의 클로즈베타를 몇 달 앞두고 있다. 언뜻 스쳐가는 남모를 긴장감. 그의 환한 웃음이 눈깜짝할 새에 거두어지곤 한다. 언젠가 홀로 라커룸에 대기하고 있던 피겨퀸 '김연아의 고독'이라는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번씩 환하게 웃었지만 출전을 앞둔 연아처럼 긴장과 초조를 다 감추지는 못했다. 

“창조적인 DNA 주인공은 필요성”
그의 ‘바람의 나라’(1996)나 ‘리니지’(1998)는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한발짝 이상 앞서가는 창조적인 마인드가 넘쳤다. 그는 창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겸손했다. “모든 사람은 다 창조적 DNA가 있다. 당시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든 것뿐”이라고 했다.
 
“ ‘울티마’ ‘네트핵’ 등 싱글 게임 하다 보니 여러 명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의 나라 등 텍스트 머드 게임 하다 보니 그래픽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리니지 만들었다. 이처럼 순전히 개인적인 욕구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송 대표는 스스로 “리니지가 나오면서 100만 유저 수를 헤아리며 산업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보통 사람처럼 말하려고 한다. 
  
아키에이지는 어떤 면에서 새롭고 창조적인가. 그는 리니지와 와우를 비교하며 월드를 설명했다.  “리니지가 처음 서비스하던 시절에는 다른 세상 ‘월드’라는 느낌이 있었다. 와우의 경우 게임으로 구현되는 거 많지만 월드라는 느낌이 없었다.  리니지가 살아간다는 느낌을 준다면  와우는 구경꾼 같은 느낌이었다.  와우의 경우 월드이기는 한데 잘 만들어졌을 뿐 살아있는 느낌이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고민한 것은 와우 같이 훌륭한 완성도 가지면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이 어떤 세계일까였다. 고민의 결과가 아키에이지다. “와우의 완성도와 껍데기 외모, 리니지나 울티마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잘 결합해보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래서 그런가. 아키에이지 출시 후 가장 맞서야 할 호적수로 의외로 ‘아이온’과 ‘리니지’를 꼽았다. “블레이드 앤 소울이나 테라는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부딪칠 수 있는 부분이 적다”고 했다.  
 
와우+리니지+울티마 온라인
그는 지난 2월 25일 3년간의 침묵을 깨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게임테크2010'의 강사로 나섰다. 그는 아키에이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와우와 리니지 그리고 울티마온라인을 합친 콘텐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외모는 와우스럽게 변했지만 리니지나 울티마온라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니까 아키에이지는 정통 MMORPG다. 요즘 MMO가 액션과 액션성의 강화 쪽으로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그의 개발 방향은 MMORPG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람끼리 부대끼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는 PVE, 리니지에서는 PVP, 울티마온라인에서는 소셜 커뮤니티 콘텐트의 장점을 참조해 두루 담아냈다”고 소개했다.
 
제 아무리 스타 개발자지만 아키에이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높은 관심은 알게 모르게 커다란 심리적 압박이 된다. 홈페이지가 오픈한 지 얼마 안됐지만 유저들의 “논타깃팅 해주세요” 등 새로운 제안을 해온다. 그는 게시판에서 이런 의견들을 수집해 틈틈이 사내 게시판으로 펌질을 해온다. 내부 개발팀을  자극하는 의미에서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똑같이 발견하고 얻어내서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바람의나라', '리니지'로 세상에 이런 게 있습니다라고 내놓았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블리자드가 와우라는 것으로 응수를 한 것이고, 제가 다시 그것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보통 사람의 내공으로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닉네임 jake "소셜네트웍 새 웨이브“
송재경이라는 사람은 가정에서 어떤 모습일까. 그는 집에서 두 아들과 셋이 다정히 게임을 한다고 했다. 닌텐도DS, 아이팟터치, Wii 마리오, 포켓몬, 좀비 대 플랜트 같은 아이폰용 게임 등 평소 못한 것을 주말에는 가능하면 놀아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 나오면 역시 그는 개발자다. 스승인 카이스트 전길남 박사가 “한 분야에서 연속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권했을 때도 그는 자기 길을 고집했다. 그는 “신선한 것, 남이 안 해본 것을 해볼 생각이 여전히 있다”고 했다.
 
참, 그의 닉네임 Jake는 트위터에서도 제법 알려져 있다. 그는 '데스탑의 종말? 마우스의 종말?'이라는 말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예측하는 미래상을 내놓기도 했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시대와의 접점을 찾는 작업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나온 MMO의 약점을 발라내고, 강점을 녹여내 새로운 차원의 게임을 개발하기 위함인가.
 
그는 “리니지가 인터넷 보급을 타고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보면 요즘은 아이폰으로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모바일, 소셜네트웍, 웹게임 등이 웨이브가 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런 전망을 했다.
최근 정부가 과다한 옥죄기에 나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중독 문제와 관련 피로도 시스템과 셧다운제, 아이템 거래 규제 등 강공 일변도다.
 
그는 “개선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지, 사용할 테크놀로지까지 지정하는 것은 발전의 여지를 막는 결과가 생길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피로도 시스템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개발자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수많은 혁신적인 방법들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정한 테크놀로지, 특정한 방식을 강제하기보다 제너럴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에서 송재경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과연 그것을 의식하며 살까.
그는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 아예 신인이었으면 부담 없이 오히려 잘 할 거 같다. 그런데  과거 성공이 기대 수준을 높이고 선입관을 심어주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며 “훗날 멋진 게임, 훌륭한 게임, 감동을 주는 게임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도식적인 모범답안이었다.
 
천하의 자유인인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끝나고 나면 3년 잠수타고 싶어요.” 
 

박명기 기자 플레이포럼 20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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