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클베 이후 암초 반성모드 끝 블루홀 스튜디오 대표

김강석 대표 “테라 완성도 높여 연내 큰 장 연다”

▲ 김강석 블루홀 스튜디오 대표
올해 상반기 게임업계의 핫이슈는 스타크래프트2와 테라의 출시였다. 스타크래프트2도 스타크래프트2지만 한국 게임업계는 MMORPG 최초 ‘논타겟팅’과 개발비 360억 원의 블록버스터급이라는 이슈로 화제몰이에 성공한 테라에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테라는 3차 클베 이후 암초를 만났다. 당초 상반기 오픈 목표를 바꿔야 할 정도로 안팎의 차가운 반응에 휘청거렸다. 유저들의 “지루하다” “힘들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피드백을 받은 개발팀은 “시장 트렌드를 못 읽었고 놓친 게 많다”며 반성 모드에 돌입했다.  
 
“교감하는 테라, 오래오래 플레이할 존재 이유를 보여주겠다.”
김강석(40) 블루홀 스튜디오 대표는 이 모든 걸 받아들였다. 솔직하고 처절한 반성문도 썼다. “왜 테라를 해야 하는지 목적성과 유저 마인드를 잡는 동기 부여가 부족했다.” “95%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마지막 5%가 정말 어렵다는 걸 알았다.”
 
축구로 치면 전 후반 열심히 뛰었는데 골이 안 터진 형국이다. 누구보다 답답하고 안타까울 이가 김 대표다. 그는 “다행히 연장전에서 어떻게 하면 멋진 골을 넣을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IT와 게임의 경계를 10년 세월 넘나든 선수(?)답게 해답도 찾아냈다. “게임에서 중요한 건 완성도다. 5월부터 매일 테스트를 하며 모든 걸 쏟겠다. 만렙 이후에도 로망을 주는 완성도 높은 테라, 올해 안에 큰 장 서는 테라를 꼭 선보이겠다.”

완성도 위해 오픈 연기 “기쁜 마음으로 반성문”    
블록버스터의 뜻은 ‘초대형 폭탄’이다. 그는 즐거움을 주는 폭탄을 다루는 조율사다. 입술의 한쪽이 터진 채로 “요즘 흰머리가 많이 늘었어요”라고 웃었다. 2월 중순과 말에는 그야말로 “히스테릭”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3차 클베 이전의 초조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되레 대부분 유저 콘텐트에 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유저들은 냉정했다. “MMORPG인데 퀘스트가 너무 반복적이다” “스킬이 적다” “아이템 개수가 너무 적다” “동선이 너무 길어요” 등 구체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이게 아닌데, 뼈 아팠다.

3차 클베 후 나온 총평 또한 가슴을 무겁게 했다. “MMO인데 성장이 너무 힘들다. 단순 반복만 계속돼 재미보다 MO처럼 피로감만 누적된다.”
 
3년이면 개발자들이 더 지친다. 하지만 어디 떠받들어야 할 유저님처럼 불만과 피로감을 토해낼 수 있는 처지인가. 좌절감 반 억울함 반 내부 개발팀과 피드백 과정을 통해 유저의 목소리의 행간을 읽어냈다.

단순히 반복 퀘스트 늘리고, 아이템 늘리는 것은 근본처방이 아니었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보니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유저 마인드로 가야 한다는 성찰(?)과 득공(得功)을 하게 됐다. “유저의 눈높이로 게임을 바라보자.”
 
이제야 깨달았다. “이렇게 만들면 재밌을 줄 알았는데 유저들이 잘못 소비하는구나. 시장의 센스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있구나.” 다른 게임의 퀘스트와 스크린샷을 분석해서 보내준 유저들의 수많은 고언과 피드백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

퀘스트도 조금만 심혈을 기울이면 달라진다는 것, 세계관과 스토리의 전달 기능이 제대로 연결되면 퀘스트가 반복되어도 유저는 충분히 이해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게임 초반과 중반에 스토리 전달이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제대로 스토리가 전달된 이후에야 파티와 솔로 퀘스트로 반복적으로 이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결국 “내가 이 게임을 왜 하지?”라는 목적성을 부여하는 게 스토리였다. 그래서 이제 정말 기쁜 마음으로 반성문을 쓴다. 2년 전인가, 기자가 이곳 블루홀 스튜디오을 찾았을 때보다 그의 몸에서 개발사 CEO풍이 완연이 배어난다.  
 
“만렙 이후에도 로망 주는 테라 나올 것”
테라는 그래픽과 캐릭터 실루엣, 사냥터의 피드백에서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최고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논타겟팅 방식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논타겟팅 방식을 최초로 MMORPG에 접목한 테라는 좋은 사례가 없어 좀 헤맸다. 현재까지도 플레이가 적합하도록 찾아가고, 찾아내야 하는게 고민이고 숙제다.  
 
그는 “논타겟팅을 놓고 플레이간 ‘너무 좋다’ ‘아예 없애라’ 등 평이 극명하게 엇갈린다”며 “유저들의 의견을 사려 깊게 듣고 있다. 하지만 ‘아이온이나 와우처럼 만들어주세요’라는 말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면 우리가 만드는 것은 바로 논타겟팅 테라니까.” 그는 테라의 근간이 되는 논타겟팅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걸 강조했다.
 
테라의 논타겟팅이 가야 할 길은 뭘까. 냉정해지자. 조작이 명확하거나 호쾌하지 않아 조작감이 떨어졌다. 전투 자체가 액션뿐만 아니라 몬스터의 인공지능, 장비, 레벨업 등의 다양한 변화에 대해서 유기적으로 연동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는 “이번 3차 CBT의 논타겟팅 액션은 프로토 타입과 비교해도 떨어진다”고 인정했다.
 
테라의 전투 패턴은 세 가지다. 일반 파티와 사냥, 그리고 중형 몬스터와의 전투다. 그는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한 것이 중형 몬스터와의 전투를 위한 파티 플레이”라며 “논타겟팅 액션은 몬스터 인공지능에 따라 변하는 전투다.
 
중형 몬스터는 아이템 파밍과 연결되고, 이것이 곧 성장과 보상의 욕구를 채워 준다. 또한 커뮤니티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구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앞으로 몬스터의 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사냥터의 구조와 동선이 스트레스를 주고 있어서 최적화도 필요하다.
 
이제 테라의 방향이 잡혔다. 상반기 출시였지만 연내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과제는 하나하나 구체적이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스토리성을 강화하고, 퀘스트의 보상이 약한 주 원인이었던 아이템을 늘리는 것도 관심사다.

인던의 드롭 템이나 빅 몬스터의 사냥도 늘려 등급도 마련하고 차별화된 요소도 넣어야 한다. 논타겟팅의 조작감을 높이고 정교화하는 것은 필수사항이다.
 
그는 “테라를 만렙 이후에도 로망을 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MMORPG에서는 다양한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어떤 꿈을 꿀 거냐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완성도 높은 테라에서 꿀 수 있는 로망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는 정치적인 로망과 전사의 로망을 예로 들었다. 집정관이 되어 대륙을 통치하고 다른 대륙과 경쟁하는 것은 정치적인 로망이다. 여기서 유저는 지도자로서 판타지적 리더십을 구현한다. 그런가 하면 컨트롤의 묘미를 살리는 집단 PVP나 전장에서 능력 있는 전사가 되는 것 역시 플레이어의 영원한 로망이란다.  
 
픽사 시절 스티브 잡스가 개발사 CEO 롤모델
3차 클베 후 당초 목표였던 상반기 오픈은 물 건너갔다. 일정 연기는 개발사는 물론 퍼블리싱 사인 NHN에게도 많은 비용 또는 심리적 자산 손실을 유발한다. NHN의 불만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NHN에서 오히려 3년 동안 고생했는데 빠른 출시보다 일정에 구애받지 말고 완성도에 신경써달라고 해줘 고마웠다. NHN에 테라만 있는 것이 아닐텐데 말이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실 블루홀은 테라가 첫 단추이자 전부인 신생 개발사다. 더욱이 MMORPG 개발은 평범한 사람이 지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록파 개발 실무책임자가 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잠깐, 개발사 CEO의 숙명에 대해 묻는다. “시장 목소리를 읽어내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개발자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게임 개발사 CEO의 몫”이라며 “디자이너에게 6시간을 앵벌이(?)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철저히 현장 중심주의자다. 어디서나 개발팀 식구들과 흉금을 털어놓는다. “아트 디자이너와 6시간 동안 이야기해 본 연유에야 나와 그들이 같은 단어를 놓고 다른 뜻으로 쓴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개발의 핵심은 역시 교감이다. 디자이너에게 앵벌이한 6시간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현장에서 교감하고 조율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개발사 CEO 같다”라고 했다.
 
CEO는 판타지적 리더십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 리더십의 발휘가 중요하다. 테라의 장점을 이상이나 로망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롤모델이 궁금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를 꼽았다. “애플사의 잡스가 아니라 디지털애니메이션사 픽사의 사장인 잡스”다.
 
애플의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신화를 일궜지만 “독재자”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통한다. 잡스는 자신이 창립한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새로 인수한 픽사에서 ‘토이스토리’ 등 만화영화로 성가를 날렸다. 그는 아무리 비교해 봐도 픽사의 잡스가 더 좋다.

“픽사의 잡스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잡스는 지원하고 영감을 주고 후원을 하는 CEO였다. 변신을 할 줄 하는 픽사의 잡스가 더 끌린다”고 했다.
 
알았다. 직원들이 뭐가 필요한지 알고, 영감을 던져줄 경영자, 시간을 앵벌이할 줄 아는 CEO가 그의 롤모델이란 말일 게다. 실제로 블루홀엔 사장실을 별도로 두지 않는다.

그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한다. 직원들과 돌아가며 점심을 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직접 사장을 찾아와 문제제기를 할 정도로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다. ‘찾아가 대화하는 CEO, 픽사의 잡스 같은 CEO'는 결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아침마다 아이들 유치원 태워다 줄 때 행복
그는 아침마다 딸 둘을 유치원에 차로 태워다 준다. 다른 건 못해도 이건 꼭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 제일 행복하다. 대신 출퇴근은 자동차로 하지 않는 뚜벅이족이다. 왜? 책을 읽기 위해서다.
 
그는 기자에게 “저는 일찍이 PDA,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였다. 아이패드 얘기 듣고 사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는 게임을 잘 만드는데 집중하려고 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CEO가 돼보니 인격적 성숙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책꽂이에 꽂아놓고 가끔 빼서 읽곤 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M. 스캇 펙)이란 심리의학 서적을 주위사람에 권해주곤 한다”며 꼭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99년 데이콤에 입사해 오즈테크론로지와 세이클럽을 거쳐 2002년 네오위즈에 합류해 게임 소싱과 투자, 퍼블리싱 등을 담당했다. 그가 내세울 만한 추억의 성공 게임도 적지 않다.

국내나 해외 판권을 담당했던 그는 글로벌 판권으로 계약한 FPS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대박 소식에 기분이 좋았단다. 당시 25명이었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가 몇 백명의 회사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뿌듯해졌다. 그가 회사를 옮긴 건 야구게임 ‘슬러거’의 성공적 유료화가 진행되었을 2007년 3월 경이다.  

그는 개발사 블루홀을 “MMO에 강한 블록버스터급 게임 개발사로 키우고 싶다. 다른 장르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MMO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갈 길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다. 저가형 MMO는 이미 중국이 턱밑까지 따라와 있고, 갈 곳은 블록버스터인데 비용, 인력, 테크닉 수준 등 요구치가 낮지 않아서다.
 
MMO에 대한 기회와 위기의식은 동전의 양면 같다. “이제 콘솔 유저가 온라인으로 넘어올 것이다. 거기에 대비해 콘솔 문법을 담은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게임시장은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등줄기가 아니라 멱살을 잡으려드는 중국의 저가형 MMO 또한 복병이다. 경각심이 필요하다.
 
이제 곧 계절의 여왕 5월이다. 5월을 즐길 새도 없이 블루홀 내부에서는 테라의 라이브 버전이 실행된다. 직접 플레이하면서 점검하고 수정하는 시스템이다. 매일 플레이 테스트를 하고 개별적인 완성도와 유기적인 연계를 다듬어간다. 날마다 쉬지 않고 콘텐트 점검과 완성도도 높여 나간다. 
 
그는 5월이 되면 신발끈을 고쳐 매고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토너 아니면 전후반을 끝내고도 골을 못 얻었지만 연장전에서는 반드시 골을 넣겠다며 휘슬을 기다리는 축구 선수처럼 변신한다. 
 
그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동접-매출도 중요하지만 테라가 연내에 열 큰 장에 대한 유저와 업계의 평가도 중요하다. CEO로서 블루홀이 좋은 작품으로 다듬어질 것 의심의 여지 없다”고 매조지했다. 1시간 넘는 진솔한 대화였다. 그의 선한 눈빛과 다소곳하며 부드러운 행동거지는 역시 언제봐도 몸에 밴 바른생활 생활자의 모습 자체였다. 
박명기 기자 플레이포럼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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