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으로 풍선 쏘아서 터트리면 절반, 쪼개져 또 절반 '재미'

국어사전에 의하면 ‘팡’이라는 단어는 ‘풍선이나 폭탄 따위가 갑자기 터지는 소리’라던가 ‘풍선이나 폭탄 따위가 갑자기 매우 요란스럽게 터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등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풍선 따위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영어로도 ‘PANG’, 한글로도 ‘팡’]
아마도 최근에 정의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제공한 문제의 게임으로 ‘팡’이라는 동명의 게임을 의심하고 있다. 사실은 사전적인 의미 제공에 문제보다는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큰 문제를 안겨 준 게임이지만...

이 게임에 미쳐서 오락실에서 그 당시에는 꽤나 거금인 1만원이라는 돈을 써버리게 만든 게임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게임을 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수중에 돈이 다 떨어져 버린 것이다(그래도 하루아침에 다 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물론 그 돈은 몇 일 뒤에 중요한 곳에 쓰일 돈이었고, 그 돈이 행방불명된 것처럼 느껴지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돈이 사라진 사실에 발각된 그날에 필자도 게임처럼 ‘팡팡!’ 소리 나게 엄청 맞았다. 참고로 게임을 개발한 회사 이름 ‘MITCHELL(1989)’은 서양의 흔한 사람 이름이다(우리나라의 철수나 영희 같은..). 회사 이름이 흔한 사람 이름이다 보니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기는 엄청나게 힘들다.

[저 풍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게임이 시작된다.]
이 게임도 퍼즐 류에 해당하는 슈팅게임으로 사실은 거의 슈팅게임이다. 기존의 슈팅 게임과는 다른 것이 반으로 쪼개진 풍선들 사이로 피할 틈과 먼저 처치해야 될 풍선을 선정하는 등의 꽤나 번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필자는 2% 정도는 퍼즐의 피를 이어 받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팡’ 게임 시리즈는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어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슈퍼 팡’이라든가 ‘팡2’,’팡3(유럽판)’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기존 게임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구성으로 계속해서 추가되었다.

주로 게임기 버전으로도 많이 이식되었으며, 오락실에서는 초기 팡 기본 버전 외에 다른 버전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는 1990년대 이후로는 오락실의 기세가 수그러들고 1990년대 후반에 인터넷(WWW)이 널리 보급되면서 PC방의 등장으로 인해 사양일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적 오락실에 가면 ‘팡~파파팡~’ 하면서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PANG’ 타이틀 로고가 찍히던 오락 기계를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유명한 게임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어서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듣고도 무슨 게임인지 알 수 있었다. ‘보글보글’의 경쾌한 사운드라던가 육중하고 박진감 있는 ‘이까리’ 사운드라던가 왠지 구슬픈 것 같으면서도 차분하고 침착한 ‘시노비’ 사운드라던가 하는 식으로 게임마다 BGM과 효과음이 특색이 있었기 때문에 오락실 문을 여는 순간 한꺼번에 여러 오락기계의 음악이 흘러나와도 대략 어떤 게임들인지 알 수 있던 시절이었다.

■ 다소 빈약한 무기임에도 잔잔한 인기
어릴 적에 오락실에 갈 때마다 주머니가 터져나가도록 동전이 가득했던 부유한 시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오락실에 가면 직장인 아저씨, 누님들이 게임기 앞에 동전을 탑 쌓듯이 수북이 쌓아두고 ‘Continue?’라는 글자만 뜨면 자동으로 동전을 들이 붓던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그런 재력(財力)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중에 필자도 어른이 되면 그 정도 재력은 보유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놈의 오락실 게임 한 판 가격이 최근에는 500원이 기본이고, 체감형 게임 중에는 1000원짜리들도 있다. 어디 시골 터미널 근처에 한적한 오락실에나 가야 300원에 한판 하는 오락실을 찾을 수 있고, 필자가 사는 동네는 OO박스나 OO무비 같은 대형 영화관에나 가야 구석이 한 쪽에 오락기들이 몇 대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다 500원에 한판 하는 가격으로 예전에 그 어른 아저씨들 마냥 탑 쌓듯이 쌓으려면 1만원 정도는 필요한데 그 돈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어른들은 굉장한 재력가였던 듯..).

[팡3, 1995]
보통 오락기 앞에서 동전을 쌓아두고 게임을 하는 경우는 거의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45 STRIKERS’ 같은 슈팅 게임들이 그러했다. 솔직히 ‘팡’ 게임은 동전을 쌓아가면서 할 정도의 인기는 없었다(필자의 동네만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한두 판 해보고 다른 게임기에 자리가 나면 그 게임을 하러 가든가 할 때 조금 있어 보이는 말로 ‘킬링타임(Killing Time)’용 게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게임 자체의 재미는 있는 수준으로 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었다. 몇몇 게임들은 동전을 넣는 순간 게임 시작과 함께 동전에 사용된 광물 자원의 가치가 이토록 보잘 것 없다는 사실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게임들도 있었던 반면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나 필자와 같은 경우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게임에 빠져버렸다. 단 며칠 사이에 1만원이라는 돈을 써버리게 만든 게임으로 거의 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무턱대고 쪼개면 패가망신을 못 면한다!]
필자가 이 게임에 빠져든 묘한 마력이 있다면 단순히 총을 쏘기만 하거나 무수히 탄막이 쏟아져 나오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가는 스릴이 있는 게임이 아니라, 탄막(쪼개진 풍선)이 형성되어도 그것은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 스스로가 만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굳이 안 터트려도 되는 풍선을 총으로 쏘아서 터트리면 절반 정도의 크기 2개로 쪼개지는데, 이 2개가 다시 그 절반 크기의 4개로 쪼개진다. 물론 2의 제곱으로 늘어나는 풍선이 되기 전에 터트리면 되지만, 무턱대고 풍선을 쪼개다 보면 미처 피할 틈을 마련하지 못 해 풍선에 극약이라도 발라놨는지 풍선에 닿자마자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진행을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제적으로 상황이 주어지는 게임과는 차별성을 갖게 된다. 게임에서 사용되는 아이템은 종류가 다양하거나 미묘한 철학 따위는 담겨있지 않고, 굉장히 단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기본 총 외에 천장까지 달라붙는 작살 총이라든가 시간을 멈추는 스톱워치 정도의 구성으로 무기 시스템의 구성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도 게임 내용 자체가 무기를 업그레이드해 가면서 점점 강력해 지는 적을 처치하는 게임이 아니다 보니 다소 빈약한 무기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 문화의 힘, 게임 안에 한국은 없어 아쉬워
참 게임 하나로 여러 가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필자의 특성상 이 게임도 걸고넘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게임 스테이지를 선택하는 맵 화면에 문제가 있다. 그 당시 1980년대 그려진 세계지도가 아무리 현재와 기술 수준의 격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조악하게 생략 기법이 도입 된 맵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16세기 포르투갈 선원이 가진 지도가 이보다 더 정확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세계지도를 보여준다.

[이 자식들! 그런데 한국은 왜 없어..]
‘팡’ 게임의 기본 진행방식은 스테이지 형식으로 국가를 선택하면 해당 국가의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세계지도에 있을 만한 나라는 다 있지만, 몇몇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 북미와 남미도 바다로 떨어져 있고, 유럽에서도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부근은 생략의 기법이 도입되어 있다.

뭐 유럽이나 북미가 떨어져 나간 것 그렇다 쳐도 한국의 게이머 입장에서 떡 하니 일본은 있는데, 바로 그 옆에 나라가 없어졌다는 건 여러모로 생각 해 볼 문제다. 정치적으로 또는 그 밖의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국가 간 미묘한 신경전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지만, 국가가 통째로 사라져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런 의미에서라든가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기보다는 게임의 진행방식이 국가마다의 스테이지 형식이다 보니 뚜렷한 국가적 색채가 없으면 게임에 넣기가 모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게임의 배경화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유독 한국만 그런 것들이 없었던 것일까? 5000년 역사를 자랑한다고 나라 안에서만 혼자 떠들고 즐길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널리 퍼트리고 전파해야 할 의무가 이 땅에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역사적인 사명이 있다고 본다. 불국사나 석굴암 또는 천문대나 경복궁 같은 배경화면에서 팡 게임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그 당시 당국에서 허가를 안 해줬나?)

1980년대만 해도 지금 같은 국가적인 위상은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주위에 외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아직도 ‘KOREA’라는 나라가 어디쯤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 우리가 세계 열강에 대해 아는 10분의 1만큼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최근에서야 2002년 월드컵을 기준으로 전세계 TV에 전파되면서 ‘KOREA’라는 나라가 좀 더 알려졌을 뿐이다. 그것도 ‘JAPAN’이라는 나라와 함께라서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런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게임에서 나오는 지도는 우리가 어릴 적에 세계사 시간에 배우든가 한국에서 세계지도라고 알려져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보는 세계지도]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지도는 태평양이 지도의 중심에 있다. 한국(어부지리로 덩달아 일본도 함께)도 지도의 중심 부근에 있다. 미국은 오른쪽 끝에 유럽과 아프리카는 왼쪽 끝에 있는 지도를 많이 보게 된다.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보아왔고 지금도 어느 아파트 거실 벽면에는 커다랗게 프린트 된 ‘세계전도’라는 이름으로 걸려있는 지도와 달리 정작 서양(유럽)에서 사용하는 지도는 아래와 같은 모양의 지도다.

[서양에서 보는 세계지도]
흔히들 지리적인 위치로 한국을 표현할 때 ‘동아시아(East Asia)’라고 하며 여기에는 한국, 일본, 중국도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을 ‘극동아시아(Far East)’라고 한다.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실제로 저 세계지도를 보면 한국은 확실히 동쪽의 끝(극동)에 위치해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라고 부르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는 어째서 ‘동남아’인가? 우리가 쓰는 지도로 봤을 때는 한국에 입장에서 ‘서남아’가 맞다. 하지만, ‘동남아’인 이유는 서구-서양의 기준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지도에서는 ‘중동(Middle East)’이 왜 가운데 아시아라는 뜻인지 모호했지만, 저 지도를 보면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는 확실히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 가운데쯤에 위치해 있다.

이 게임은 기존의 동양(극동아시아) 기준으로 그려진 세계 지도가 아니라 서양(유럽)을 기준으로 하는 세계지도를 쓰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진출에 여러모로 신경 쓴 흔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초기에는 동양 중심의 지도를 썼다가 해외 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이질감으로 인해 뭔가 어려움을 겪고 나서 바꿨다든지 하는 등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팡’ 게임의 지도는 서양 중심의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세계지도와 다른 모양새의 세계지도를 보니 한 없이 끝에 위치한 작은 반도국가의 처지가 절실히 와 닿는 듯해서 복잡한 심정이 된다. 게임 하나로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한국이 세계 최고의 강력한 국가였다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세계 지도에서 중심에 있는 나라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언젠가는 그렇게 될 날이 올지도?).

■ 필자의 잡소리
그 풍선 한 번 제대로 터트려보겠다고 발악을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풍선 따위는 불어 본 기억이 ‘다섯손가락’의 ‘풍선’을 듣고 자란 세대에서 ‘동방신기’의 리메이크 ‘풍선’의 시대까지의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다섯손가락 II – SIDE B 3번 트랙 ‘풍선’]
게임 하나로 세계 정세에서부터 문화의 힘과 지난 시절의 노래까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필요하게 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게임이다. 비슷한 방식의 게임도 스마트 폰 게임으로 많이 출시되어 있으니 지난 추억을 벗삼아 한 번쯤 풍선을 터트려 보자. 물론 배경음악으로는 취향에 따라 ‘다섯손가락’이나 ’동방신기’의 ‘풍선’을 들으면서.. (필자는 ‘다섯손가락’을 추천한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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