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게임’ 김종화 대표, 미국 ‘USC IMGD’ 3년 게임유학기 삼부작 1

몰입(flow)에 관한 연구로도 게임 개발자들에게 친숙한,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일 칙센미할리는 ‘창의력(Creativity)’이라는 책에서, 도메인(domain), 필드(field), 사람(individual)이라는 창의력의 3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도메인은 어떤 학문(예: 물리학)의 분야를 뜻한다. 필드는 그 학문이 발전되고 교류되는 장(예: 물리학계), 그리고 사람은 반짝이는 인재(예: 아인슈타인)를 말한다. 칙센미할리는, 특출난 능력의 개인이, 어느 도메인의 지식을 섭렵하고, 그 도메인의 영역을 혁명적으로 확장시켰다는 것을 필드에게 인정받았을 때, 창의적인 인재가 등장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지난 약 3년 동안 미국의 USC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 게임즈 디비즌(Interactive Media & Games Division)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굴곡이 많고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지만, 돌이켜보면 유익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그 이유는 미국 현지에서 위의 도메인, 필드, 사람의 요소를 모두 체험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 기고를 포함해 총 3편에 걸쳐, 이에 대한 필자의 경험을 덧붙여 적어보려고 한다.

‘핸드메이드 게임’ 대표 김종화씨, USC IMGD 유학기 1
미하일 칙센미할리 책의 도메인-필드-사람 생생 체험

■ USC IMGD(Interactive Media & Games Division)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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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active Media & Games Division의 건물 SCI> 출처: http://interactive.usc.edu/
USC IMGD(Interactive Media & Games Division)는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영화학교(School of Cinematic Arts) 소속의 프로그램이다. 학부, 대학원, 박사과정이 있다. USC IMGD는 USC 공대의 게임 프로그램과 함께 USC Games로 불린다. 대학원 과정은 미국의 프린스턴 리뷰(The Princeton Review)에서 선정한 북미 게임 디자인 학교 랭크에서 4년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키넥트(Kinect) 나 오큘러스 리프트(Occulus Rift) 등의 이머시브 테크놀로지(Immersive Technology)를 이용하여 게임이나 인터랙티브 작품을 만드는 수업, 실험적인 게임을 만드는 수업, 유저 테스팅에 관한 연구와 방법론을 가르치는 수업, 스테레오스코픽 3D를 이용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수업, 인터랙티브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에 관한 수업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수업들이 있다. 또한, 공대와 협력하여 1년 동안 진행하는 심화 게임프로젝트(Advanced Game Project) 수업은 아이디어의 피치부터 그린라이트 받기, 팀 빌딩과 매니지먼트까지 큰 규모의 게임 개발 프로세스를 모두 체험해볼 수 있다. 심사과정과 한 해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데모데이(Demo Day)에는 현지의 굵직한 게임 개발사들도 많이 찾아오는 큰 연례 행사다.

<대학원생 졸업작품연구실 풍경, 가상현실을 활용한 체감형 저널리즘연구소 (오른쪽)>

USC IMGD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넘치고, 이런 프로젝트가 실제 필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게임 개발을 리드하거나 프로세스에 참여하고, 현지의 게임 산업에 뛰어들고 싶다면 심화게임프로젝트(Advanced Game Project)가 좋은 교두보가 된다.

소규모로 독특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뜻이 맞는 친구과 협업하거나, 수업을 통해, 또는 각종 게임잼 등 게임을 만들 기회는 넘쳐난다. 또한, 게임 혁신 연구소나(Game Innovation Lab)이나 애넌버그 혁신 연구소(Annenberg Innovation Lab) 등 각종 랩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 장학금을 받으면서 교육, 건강을 위한 기능성 게임(serious game)이나, 체감형 저널리즘(Immersive Journalism) 등 단지 게임 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졸업 프로젝트(Thesis Project)는 모든 대학원 과정 학생의 졸업 요건이 되는 수업들로, 각자 한 학기에 걸쳐서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학기 말 졸업전시회(Thesis Show)에서 발표한다.

■ 필자의 USC에서의 유학기

학과 로고 원은 게임의 핵심 메카닉, 화살표는 메카닉에서 발생하는 다이나믹, 그리고 가장 큰 원은 게임의 공간인 매직 서클. 출처: http://interactive.usc.edu/
필자가 USC를 알게된 계기는 2006년 IGF에 학생작품에 올라온 ‘클라우드(Cloud)’라는 게임을 통해서였다. 절제되고 효과적인 연출과 아름다운 그래픽으로, 일반적인 게임들과 전혀 다른 경험,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게임은,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크레딧 화면의 USC School of Cinema & Television(학과의 당시 이름)은 필자에게 크게 각인되었다.

그렇게 인상적인 첫 GDC가 지나고 필자는 ‘룸즈(Rooms)’의 첫 작품을 만들었다. ‘룸즈’를 통해 두 번째로 GDC를 갔을 때는,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의 ‘플로우(flow)’가 막 공개된 시점이었다. GDC를 마치고 40일 간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필자는 다짜고짜 USC에 방문하여 건물을 둘러보며 한 재학생에게 IMD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잠시였지만, 게임 크리에이터가 중심이 되는 활발하고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이곳에서 공부하고 게임을 만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 초,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를 갓 졸업한 필자는 ‘룸즈’를 막 닌텐도의 NDS와 Wii에 출시하고 (늦은) 군대와 유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했고, 결국 유학의 길을 선택했다. 사실 유학을 가겠다고 생각한 건 어릴 적부터 막연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영향도 있었다. 또한 대학시절 한국에서 외롭게 인디 개발자로 활동하며 느낀 갈증이 그곳을 더욱 이상적으로 보이게 한 영향도 컸다. 창작자들이 넘치고 창작이 장려되는 환경에서 살고 싶었다.

가장 큰 부담은 등록금, 95%는 미국인 또는 영주권자만
졸업 후 미국 유명 회사 스카우트는 ‘꿈같은 소리’

하지만, 몇 년 후 막상 와 보니 모든 것이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대부분 겪는 언어의 문제는 논외하더라도, 가장 큰 부담은 역시 등록금이었다. 보통 입학 시에 대부분 약간의 장학금을 주지만, 3년간 전액의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애너버그 펠로십(Annenberg Fellowship)을 제외하고는 등록금을 조금 덜어주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재학 중 학교 내외에서 장학금 기회도 많지만, 전체 메일로 오는 장학금 정보 중 95%는 미국인 또는 영주권자만 지원할 수 있다.

일단 USC에(또는 어떤 학교든) 발들 들이게 되면, 학교에게 소위 빨대를 꽂힐 준비를 해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룸즈’로 벌어놓은 돈으로 어느 정도 등록금을 커버할 수 있었고, 2학년에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3학년 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아 금전적으로 많은 부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소위 미국의 유명 회사들이 모셔갈 거라는 말 또한 현실과 멀었다. 미국대학의 학위가 게임 산업에 뛰어드는데 도움은 되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졸업 이후 몇 년간은 학자금 융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언어의 장벽은 제외하고라도, 미국에서 취업을 할 때 취업비자 스폰서를 회사에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핸디캡을 안고 간다. 비자 스폰서를 받고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회사는 언제든지 당신을 자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회사에서 해고는 흔한 일이며, 학생 시절부터 인턴을 거쳐 소위 미국의 대기업에 간 친구들이 너무나 손쉽게 해고당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미국인들은 다른 직장을 얻으면 그만이지만, 해고당한 후 1개월 안에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해 미국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봤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보다 유학 생활을 특히나 힘들게 한 건 “이미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하고 출시까지 해봤는데 게임에 관해 뭘 더 배울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었다. 게임을 만들기에 매우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이런 생각은 그러한 환경을 온전히 즐기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필자의 졸업작품인 SPACE MAESTRO의 컨셉 이미지

얻은 지식-새로움 장려 분위기, 최고의 팀 만나
‘스페이스 마에스트로’ 개발 놀이경험 반응 ‘황홀’

하지만 그러한 고민들은, 필자가 거기서 그리고 앞으로 창작자로 평생 동안 필자의 작품세계를 이끌어갈 주제의식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노력의 중간 과정이, 졸업작품이기도 한 ‘스페이스 마에스트로(SPACE MAESTRO)’다. ‘스페이스 마에스토로’는 플레이어는 자신의 몸을 지휘하듯 움직이며, 자신만의 은하를 만들어가고, 그 과정이 또한 음악이 되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아직 미완인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우주를 빚어 만드는 ‘신’적 존재가 되는 초월적 경험을 통해 우주에 대한 경외감과 우주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의 제노바 첸(Jenova Chen)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이 프로젝트는, 엄밀히 말하면 게임은 아니다. 계속 만들어가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정형화된 게임보다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놀이경험(play experience)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제작 중이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USC에 가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이렇게까지 만들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거기서 얻은 지식과 새로운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와 실질적 지원, 그리고 최고의 팀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래 이미지는 지난해 4월, 학교에서 열린 비주얼 뮤직(Visual Music) 행사에서 ‘스페이스 마에스트로’를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 플레이하는 사람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 때 경외감과 황홀함에 찬 사람들의 표정에서 필자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경험의 가능성을 보았다. 3년간 이런저런 몸고생 마음고생 하며 지냈지만, 저때의 경험은 필자에게 유학생활이 값졌다고 확신하게 해주었다.

SPACE MAESTRO를 플레이하는 모습. 출처: http://ambitiousk.wix.com/space-maestro

■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는데 대학원을 유학까지 가는 게 필요하지는 않다. 수많은 유명 독립 게임 개발자들에게서 게임 디자인 프로그램을 나온 특징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기존 오락으로서의 게임을 벗어난 무엇에 대한 갈증을 느끼거나, 게임 이상의 무엇인가를 찾고 싶다면 USC IMGD에서의 경험은 당신이 유니크한 게임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는 매우 값진 양분이 될 것이다.

결국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따르다 보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IMGD의 교수이자 USC Institue of Creative Technology의 디렉터인 마크 볼라스(Mark Bolas)가 한 수업 중 던진 말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에든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What you should do)’과 ‘내가 하고 싶은 것(What I want to do)’를 분간하도록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한경닷컴 게임톡 김종화 객원기자 ambitious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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