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들에게 물 대신 럼, 초보 의사-가상 전술 훈련받는 군인에게 필요한 게임

얼마 전, 우연히 애주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는 섬세하게 소맥(소주와 맥주)을 블렌딩하며, 최근 가장 애정(?)한다는 럼주 이야기를 꺼냈다. “럼주가 사탕수수로 만든 술이라 달달해서 맛있더라구! 요즘엔 그것만 먹으니까 해적이라도 된 기분이야.”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가 언제나 럼주에 취해있는 탓에 럼주와 해적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도현신의 책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에 따르자면, 13세기 경 항해기술과 선박 제조기술이 발달하며 사람들은 점차 먼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해가 길어질수록 마실 물에 대한 걱정은 깊어져만 갔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물 대신 포도주나 맥주 같은 술이었다. 알코올 성분이 들어간 맥주와 포도주는 물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도가 높은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지날 때면 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등장한 것이 사탕수수를 증류한 럼이었다. 위스키와 달리 값이 싸고, 도수도 높아 쉽게 상하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뱃사람들의 생명수였다.

럼주만이 물을 대신하는 음료수는 아니다. 석회 성분이 많아 수질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포도주가 발달하였고, 추운 지방에서는 체온을 높이기 위해 도수가 높은 보드카가 발달하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질에 대한 큰 문제가 없는 한국에서는 성인이라 하더라도 “술 먹고 있어”라고 하면 ‘유흥 활동’을 떠올릴 수 있지만, 뱃사람이었다면 ‘갈증 해소’를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임도 비슷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재미를 위한 것’이란 공식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은연중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술이 생명수가 될 수 있듯, 게임도 생명기술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열린 ‘2011 국제 기능성게임 어워드(2011 International Serious Play Awards)’에서 1등을 거머쥔 게임은 네덜란드 Utrecht 의대팀이 개발한 ‘에어 메딕 스카이1(Air Medic Sky 1)’이었다. 이 게임은 젊은 의사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그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 비디오 게임이다.

‘에어 메딕 스카이1’은 생체 피드백 센서를 게임에 적용한 인터랙티브 게임으로, 게이머(의사 및 의료 종사자)들이 수술 등의 실제 상황에서 생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는 연습 없이 실제로 환자를 대할 때의 사고를 줄일 수도 있다. 또한 문제를 극복할 경우 자신감이 붙어 실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의료분야뿐만 아니라 군사에서도 게임은 빛을 발한다. 해군 특수전 요원들은 모의훈련 체계를 게임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7일, 에픽게임스의 언리얼 엔진이 장착된 군사용 모의 훈련 프로그램이 나왔다. 이 모의훈련 체계를 통해 해군특수전(UDT/SEAL) 요원들은 가상세계에서 모의 전투를 경험할 수 있다. 실제 훈련을 할 경우 실전 감각이 살아날 수는 있겠지만, 모의훈련 체계에서는 조금 더 넓은 시야와 체력 확보를 통한 다양한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해군만 이런 좋은 걸 하는 게 아니다. 공군도 있다. KGC2013(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2013)에서는 국방과학연구소의 ‘공중 교전 모의 시스템’을 볼 수 있었다. 파일럿이 실제 환경과 흡사한 곳에서 가상 전술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이 시스템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게임 기술이다. 실제 전투와 가까운 상황 묘사와 현실성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술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아직까지 한국에서 ‘술’에 대한 이미지가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술에 대한 순기능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술에 대한 이미지가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식사 후 가벼운 맥주 한 잔은 예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쓰디쓴 독주로 위로를 받고, 즐거운 일에는 달콤한 술로 더욱 흥을 돋우는 것이 눈총을 받는 일은 아니다.

게임 역시 아직까지는 중독법과 각종 규제, 사회적 이슈로 인해 이미지가 아름답지만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못생긴(?) 수준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게임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동영상과 그래픽, 애니메이션 분야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통해 손이 미숙한 새내기 의사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치는 멋진 군인들에게 순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게임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언젠가는 게임의 순기능과 첨단 복합 예술로 조금씩 인정을 받을 것이다. 특히 나른한 점심시간에 게임 한판은 예의, 날씨가 안 좋을 때는 MMORPG 속에서 여행을 떠나며 위로받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게임을 하며 흥을 돋우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게임이 되길 기대한다.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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