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한편-악당은 일본군...키보드로만 즐기는 비행게임

이번에 소개할 고전 명작 게임 '윙스 오브 퓨리(Wings of Fury)'은 필자가 중학교 시절 겨울방학 동안 미친 듯이 했던 게임이다. 그 당시 ‘오리아저씨’와 함께 이 게임을 많이 했다. 출시연도는 1987년이다.

게임의 내용은 전 세계가 서로 편을 갈라 한 쪽이 괴멸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기세로 전쟁을 벌였던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중에서도 1944~1945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물론 주인공은 미군이다). 출시 당시에도 이미 40년이나 지난 과거를 잊지 못하고 게임으로나마 다시 한 번 그 당시 못다 푼 한을 풀어보고자 만들었던 것일까?

[분노의 날개?]
이 게임에서 물리쳐야 하는 파괴의 대상이 되는 악당 역할은 ‘일본군’이 하고 있다. ‘일본군’이라는 목표 때문에 꼭 미국의 게이머뿐만 아니라 한국의 게이머들도 어느 부분에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한미연합 게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적군으로 등장하는 ‘일본군’의 설정은 때 늦은 복수극이나 철 지난 앙갚음이라기보다는 단지 게임 상에 스토리로 설정되어 있어 크게 괘념치 않아도 된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묘하게 감정몰입이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독립운동을 하신 조상님.
이 게임을 생각하면 줄줄이 연상되는 일련의 추억 중에 하나는 이 게임에도 등장하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집안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사실 어릴 때는 필자도 잘 몰랐었다(죄송합니다. 조상님).

어느 때인가 늘 걸려 있던 사진 옆에 종이 쪼가리들이 붙어 있고 집안 어른들의 연금을 받네 못 받네 하는 얘기들도 오고 갈 때쯤에서야 독립운동을 했던 조상님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련의 일들이 정리되고 현재 할머니께서는 얼마 안 되지만 국가에서 연금을 받고 계신다. 뭐 더 큰 일을 하신 분들도 많이 있고, 이런 친일-독립운동 얘기는 지난 과거에 어찌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개개인의 상황과 사정도 감안하여 깊은 얘기를 섣불리 꺼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내용이라 이쯤에서 생략하기로 하고..

[감사합니다! 조상님..]
저 때만 하더라도 중학교 시절부터 빠져들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책들이 필자에게 그렇게 시련을 가져다주게 될지는 몰랐다. 아직은 일본 문화가 개방이 되어 있지 않아서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모조리 주인공의 이름부터 심지어 내용까지도 각색-편집되어야 했던 시절이었고(그런데, 영어 이름은 괜찮은..) 정식 판본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만화책들도 죄다 해적판만 나뒹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해적판이어서 가격이 쌌던 것은 좋았다. 그 당시 일본 만화책들은 300~500원 정도의 핸드북 크기로 판매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일본 게임(콘솔)에 빠져 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살던 필자는 급기야 일본 애니메이션 성우의 세계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고, 돈이 모일 때 마다 EMS 항공 우편으로 애니 CD나, 성우 앨범 CD를 수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느날 온 가족이 모인 제삿날 ‘일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하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왜 그랬는지 필자도 모를 일이다. 그 뒤에 일어났던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10가지 일’ 중에 상위권에 포함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군색한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 1980~90년대 시절에 어린 시절을 지내온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게임이나 만화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공중파 TV에서도 매일 같이 틀어대는 ‘아동용’ 만화도 사실 거의 다 일본 작품들이 전부이지 않았느냔 말이다(주인공 이름만 한국식으로 바꾸면 뭐하나).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의 만화 캐릭터들도 한국 작품보다는 일본의 것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무서운 점으로 그토록 미워하고 때로는 유치한 복수극을 꿈꾸기도 하던 대상인 나라에서 만든 만화나 게임은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면 ‘밉지만 좋아’ 같이 모순적인 불가항력적 선택의 기로(岐路)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문화가 전면 개방된 아직도 일본이라는 나라와 한국은 묘한 갈등관계에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토 문제와 더불어 여러 가지 지난 과거사와 현재의 정치적인 문제부터 그런 것들은 밉지만 그렇다고 아예 배제하고 배척하기에는 사회 전반에 일본의 기술이나 제품들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묘한 관계의 나라다. 지금처럼 문화 개방의 시대가 되었어도 아마도 당분간은 일본 장수가 임진왜란의 어느 전투에서 승전보(勝戰譜)를 올리며, 조선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는 한국에서 상영하기 힘들 것이다.

아무튼 지금 소개하는 게임은 그런 과거사에 얽힌 한을 풀고자 하는 게임은 아니다. 분명 적군으로 설정된 ‘일본군’에 대해서 묘한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너무 몰입하지는 말자.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그래서 최근의 스마트폰 게임으로 리메이크되는 게임들은 특정 국가를 지칭해서 선택하게 하는 것보다는 단순화 된 구성으로 진행하는 게임이 많다. 물론 현재 앱 스토어에 올라와 있는 게임들 중에서도 ‘윙스 오브 퓨리’와 비슷한 게임들을 검색하면 여전히 미군 vs 일본군의 내용을 소재로 한 것들도 많이 검색된다.

■ 키보드만으로 즐기는 비행 액션~!

[제법 컬러도 있다.]
이 게임을 할 때만 하더라도 사실 마우스가 그렇게 대중화된 시절은 아니었다. 마우스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시절이었다(물론 맥 계열과는 얘기가 다르지만). XT(8086/8088) 시절에는 마우스 없이도 게임을 충분히 잘 즐길 수 있었다. 딱히 키가 많이 필요한 게임도 아니었고...

간단히 비행기를 조작하는 키와 무기를 발사하는 키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에 조작법을 익히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한두 번만 해보면 누구나 쉽게 조작법을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화면을 가로질러 진행하면서 다시 반전을 해서 되돌아오는 연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키 몇 개로 조작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연출과 조작의 유연한 연동에 대해 감탄하게 한다(지금에야 그런 생각하지, 사실 그 때는 그런지도 몰랐었다). 무기는 복잡하게 이것저것 주렁주렁 말고 다니지 않고, 제일 간단한 기관총(기총)부터 로켓탄 정도의 가벼운 무장으로 출격한다.

게임을 하면서 욕심을 부리다 보면 낭패를 당하기도 하는데, 기체를 급 하강시키면서 기총으로 사격을 하다 보면 가끔 비행기가 땅에 내려꽂히기도 한다. 그런데 하강하지 않으면 땅에 있는 목표물들을 사격하기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기동이기도 하다(폭탄이나 로켓탄이 다 떨어지거나 발사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기총이라도 쏴야 하는데).

[리메이크 버전 : 좀 더 보기 좋은 그래픽]
게임의 내용은 심오하다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바로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적군이 있고 적군을 쳐부수면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식의 직렬화된 스테이지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다. 요즘 간단한 미니 게임들 중에서도 ‘스토리텔링’이랍시고 덕지덕지 이것저것 붙여 넣고 꼭 없어도 될 것 같은 분기점을 만들어서 괜한 유료 아이템 판매만 유도하는 식의 구성으로 출시된 게임을 볼 때마다 이런 단출한 구성방식이 아쉽기만 하다.

‘윙스 오브 퓨리’ 게임은 ‘애플2(Apple II)’ 버전과 ‘DOS’ 버전으로 개발되었지만, 이후에 ‘Commodore 64’ 라던가 ‘Amiga’와 같은 플랫폼으로도 이식되었다. 어찌나 그 분노가 식지 않았었는지 거의 발매 가능한 웬만한 기종으로는 다 발매가 되었던 것 같다. 전 미국의 애국지사들도 이 게임을 많이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거창하게 이념과 신념의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이 게임은 충분히 재미있다. 재미만을 논하기에는 그 주제가 사뭇 가볍지 않으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영간의 설정 문제도 예민한 문제이다 보니 생각 없이 쉽게 얘기하기에 어려운 게임이 되어 버렸다(일본에서는 출시됐는지 제일 궁금하다).

■ ‘시작이 반이다!’

[엄한 야자수에 폭탄 뿌리지마라 이놈들아!]
진짜로 이 게임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정말 어울린다. 특히나 리메이크 된 버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원 작품은 ‘Broderbund’의 게임이지만, ‘Byte The Bullet’에서 ‘Windows’용으로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다.

특히나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경우 이륙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몇 번 갑판 위를 활주(滑走)하다 기체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바다에 쳐 박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신경질이 팍팍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엔진 시동 후, 랜딩 기어를 접어줘야 제대로 된 이륙이 완성 된다. 비행 시뮬레이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것은 실제 비행에서의 구성 요소를 적용한 것으로 비행기가 어떻게 이륙을 하는지 랜딩 기어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이고 집어넣을 수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은 이 게임을 하기가 어렵다(실은 게임 매뉴얼 보면 다 나와 있으니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게임 장면들 역시 실제 사건들을 모티브로 꾸며진 것으로 게임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사실적인 느낌으로 단순한 액션게임이 될 뻔한 게임에 깊이 있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것은 실제적인 사건이나 동작 방식 등이 최소한의 내용으로 적용된 연출에 기인한다. 상대 진영이 일본군이긴 하지만 배경에 야자수들이 나오는 것은 실제로 미국과 일본이 동남아 지역에서 벌인 전투를 모티브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맵의 크기는 단지 가로로 놓여있는 바다와 땅의 크기로 결정된다. 조금 넓다고 생각되는 맵들은 공격할 대상이 있는 땅에 도착하기 전까지 꽤 먼 거리를 비행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때로는 섬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목표물을 다 부시고 나서도 게임이 끝나지 않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화면을 잘 살펴보면 맵의 전체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맵 표시 기능이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리 주인공 비행기라 해도 무한정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주인공 비행기가 입는 데미지는 별도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점도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였다.

[‘윙스 오브 퓨리2’라는 이름으로 출시됐지만, 망했다.]
보통의 슈팅이나 액션 게임은 명확한 데미지 판정에 따라 소위 ‘체력’이나 ‘HP’로 불리는 게이지가 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 게임에서는 적군의 공격을 당했을 때 매연 같은 연기만 나올 뿐 현재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이 정도면 버티겠지? 싶다가도 갑자기 추락해서 게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적군에게 공격받지 않고 최대한 많은 적을 공격하면 된다라는 단순한 원칙에 따라 게임을 진행하면 된다.

■ 필자의 잡소리
‘윙스 오브 퓨리’ 게임은 이륙과 착륙의 과정이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는 엄청나게 단축되고 생략된 쉬운 비행기 게임이다. 사실 시뮬레이션 게임도 아닌 주제에 이륙과 착륙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여 조금은 주제넘은 게임이 아닌가 싶기도 했던 게임으로 그 당시 비행기를 소재로 했던 다른 게임(액션, 슈팅)들은 거의 대부분 이, 착륙에 대한 과정이 당연히 생략되어 진행됐었다.

연출적인 요소로 이륙이나 착륙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이나 정지화면으로 보여주기는 했지만 직접 유저가 개입하여 입력장치를 통해 제어하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이다.

스마트 폰 게임으로도 비슷한 게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예전의 향수를 느끼며 한 번쯤 해봐도 좋을 듯 하다. 하지만, 역시 손가락 반응 속도가 예전 같지 않은지 자꾸만 기총을 쏘다가 바다에 추락해버린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객원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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