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호건 등 스맥다운-RAW 등 레슬링 시리즈 게임서도 '본방사수'

지금은 ‘WWF’라고 검색하면 세계자연보호기금(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이라는 환경보호 단체가 검색되지만,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이 땅에 수많은 국딩(지금의 초딩이라 불리는 저연령층 교과 과정의 학생 아이들)들은 ‘WWF(World Wrestling Federation)’라는 프로 레슬링 세계에 흠뻑 취해 있었다.

[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 로고]
팬더 곰이 바로 그 유명한 ‘WWF’의 로고다. 물론 프로 레슬링의 ‘WWF’로고가 아니라 21세기에서 말하는 ‘WWF (세계자연보호기금)’의 로고다. 그 당시 우리가 빠져있던 ‘WWF’는 지금의 세계자연보호기금 같이 숭고하고 거룩한 것이 아니라, ‘WWF(World Wrestling Federation)’라 불리는 프로 레슬링이었다.

‘WWF’라는 이름은 원래 프로 레슬링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세계자연보호기금에서 소송을 당해 그 이름을 뺏긴 이후 현재의 ‘WWE’로 바꾸게 된 눈물나는 스토리가 있다. 현재는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Raw, 스맥다운(Smackdown), NXT 등의 브랜드로 운영하고 있다.

‘WWE’는 프로 레슬링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업단체로 정확히 얘기하면 스포츠 단체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사업성의 쇼라고 볼 수 있다. ‘WWE’로 이름을 바꾼 뒤 그 인기도 예전만큼은 아닌 듯하다. 필자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세계자연보호기금에 표를 주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에 쓴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 영원한 라이벌 헐크 호건-워리어, WWF 황금기

그 시절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 점심 시간, 청소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전날 경기를 복기한 레슬링 한 판이 벌어지곤 했는데, 필자는 주로 ‘워리어’라는 캐릭터를 수행했다. 경기에 등장하는 선수들 중 제일 유명했던 선수들은 ‘헐크 호건’이나 그의 영원한 숙적 ‘워리어’ 그리고 ‘달러맨’, ‘스네이크’, ‘하트 파운데이션’, ‘언더 데이커’, ‘빅 보스맨’, ‘데몰리션’, ‘홍키토키맨’, ‘어스퀘이크’ 등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마치 대전 액션 게임에서 캐릭터를 선택하듯이 다양한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특색과 기술을 뽐내며 우리들을 유혹하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에 ‘WWF’는 지금의 아이돌 가수만큼이나 인기 있는 캐릭터들이었다. 누구나 선호하는 캐릭터가 한 둘은 있을 만큼 캐릭터의 구성도 잘 기획되어 있었다. 너도나도 프로 레슬링 한 판 한답시고 팔 다리 한두 번쯤 골절상 입어본 경험이 없다면 WWF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각본과 연출이 치밀하게 잘 짜여 있지 않으면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체육활동이었다. 무술감독이나 스턴트맨도 아니었던 필자나 필자의 친구들이 그런 합을 알 리 없었기 때문에 크고 작은 부상이 자주 있었다.

[헐크 호건의 이 동작 다들 기억나실 듯..]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학교측에서 당연히 이 과격한 체육활동을 엄격히 금지했다. 발견 즉시 합이 짜여 있지 않은 선생님의 실제 공격이 시전되었다. 그 당시 선생님들마다 각각의 고유한 귀속 아이템들이 있었는데, 필자의 담임 선생님 같은 경우는 유니크 레어 아이템인 말린 대나무 뿌리였다(아마도 법사 계열이었나 보다).

이놈의 대나무 뿌리는 타격력도 타격력이지만, 그 탄성이 곡괭이 자루나 당구 큐대, 가마솥 밥주걱 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후려치고 난 후에 내공이 실린 탄성에 의해 살 속 깊은 곳까지 그 아픔이 전해져 웬만한 생명력(HP)으로는 버텨내기 힘들었고, 선생님의 3회 연속 시전 후 콤보 게이지 활성화 상태에서의 피버(Fever) 모드까지 발동되면 이를 꽉 깨물고 버티지 않으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치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당한 ‘진우’ 학생 역의 대사처럼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와 같이 주문을 외칠 때쯤에는 거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갔을 무렵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필자와 친구들은 캐릭터가 리젠되듯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달이면 전날의 아픔 따위 싹 잊어버리고 다시금 과격한 체육활동에 몰두했다(이런 붕어대가리들..).

우리들에게 치명적인 재미의 유혹을 떨쳐낼 만큼의 자제력 따위는 향후 10년 뒤에나 찍을 수 있는 스탯(능력치)이었고 록(Lock) 상태의 자제력은 우리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앞만 보고 돌진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 형들 볼 때마다 저 옷에 찔리면 안 아픈가? 하고 생각해본 사람?]
요즘은 밤새 일하다 보면 다음날 기진맥진 빌빌대는데, 가끔은 그 시절의 지치지 않는 체력이 그립기도 하나.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약을 먹어도 예전 같지가 않다. 참고로 이 간 때문이야 약은 먹을 때는 별로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 복용하다 약을 끊으면 그 효과가 나타나는데, 끊은 다음 날 미친 듯이 피로하다(심리적인 부분일까?). 아무튼 간 때문이야~ 약도 필요 없었던 순수 자연 체력의 그 상태에서 몸 안에 축적된 힘을 발산할 거리가 필요했었고 ‘WWF’는 딱 좋은 대상이었다.

아직은 FX Sound를 입으로 소리내면서 액션을 펼치는 것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시절 우리는 그렇게 ‘WWF’에 열광했다. 교내 ‘WWF’ 의 룰은 의외로 간단한 것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이건 씨름도 아니고 유도도 아닌 것이 어디선가 봤을 법한 동작들은 죄다 쏟아져 나오는 진흙탕 막 싸움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단 하나 지켜지는 ‘절대 룰’이 있었으니 어떻게든 상대를 엎어트리고 그 뒤에 움직이지 못 하게 올라탄 뒤 ‘원! 투! 쓰리!’를 외치면 이기는 것이다. 실제 그 당시 프로 레슬링의 룰에 따른 것으로 ‘원! 투!’ 하는 순간 일명 배치기를 통해 퉁~하고 위에서 누르고 있는 상대를 튕겨낼 때의 칠전팔기(七顚八起) 오뚝이 정신은 주위에 친구들에게 ‘와~!!’ 하는 함성을 자아내게 했다.

나중에는 이것이 과열 되어 점점 힘이 실려 진짜로 피가 터지는 싸움이 되기도 했는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고받고 하다가 어느 순간 욱해서 진짜 주먹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대로 또 다른 구경거리가 생겨서 친구들은 참 좋아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다른 애들 싸우는 거 구경하는 것이 좋았는지 어디서 싸움이라도 나면 교실 문이 열리면서 ‘누구하고 누구하고 싸운다!’라고 외치는 친구가 꼭 있었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꼭 책상을 발로 밟고 뛰고 날아다니면서 너도 나도 우~하고 달려가 싸움 구경하는 재미에 온갖 세상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꼭 이럴 때면 조용히 앉아서 ‘수학의 정석’이라던가 ‘성문 종합 영어’책을 펼쳐 들고 수준 낮은 장면이라도 봤다는 듯이 살짝 불쾌한 표정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폭동 진압을 위해 출동하신 선생님들에 의해 금방 제압되었고 선생님 근처에 가까이 있으면 ‘들어가 임마!’ 하고 머리통을 몇 대씩 맞기도 했기 때문에 구경할 때의 위치선정은 여러모로 신중해야 했다.

■ 본방사수 목록에는 ‘출동! 에어울프’-‘맥가이버’-‘WWF’

요즘 말로 ‘본방사수’라는 것이 있는데, 그 당시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필자의 경우 ‘출동! 에어울프’, ‘맥가이버’, ‘WWF’ 정도가 있었다. 거의 다 비슷한 시기 1980~1990년대에 TV에서 했던 것들이다. 대학교 물리학과 전공하면 누구나 ‘맥가이버’가 되는 줄 알았지만, 막상 대학교 가서 물리학과 친구들에게 물어봤다가 욕만 들어 먹었다(물리학과 출신이라고 다 ‘맥가이버’처럼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다른 TV 시리즈와 달리 ‘WWF’의 경우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전날 벌어진 경기를 복기하는 모습이 주변 여기저기서 보였다. 각자 맡은 캐릭터에 빙의(憑依)되어 제 정신을 못 차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생님에 의해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모습들도..

[출동! 에어울프]
사실 ‘WWF’ 이전에도 프로 레슬링은 한국에서 꽤나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이었다. 1960~70년대 김일 선수의 박치기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했다. 물론 필자는 70년대생이기 때문에 실제로 김일 선수의 활약상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스승 ‘역도산’의 이야기도 영화화 됐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다. 60~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던 한국의 프로 레슬링이었지만, 그 뒤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으로 이러저러한 사건을 거쳐 1980년 컬러 TV 보급과 함께 프로 야구, 프로 축구 출범 등으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러던 것이 ‘WWF’의 등장으로 다시금 프로 레슬링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맥가이버]
당연히 이렇게 피 끓는 열혈 콘텐츠가 게임으로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풀지 못한 원통함은 오락실에 가면 대리만족으로 풀 수 있었으니 ‘WWF’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프로 레슬링이 얼마나 인기였는지 동물 레슬링이나 로봇 레슬링 등 다양한 레슬링 게임들도 출시됐었다.

‘WWF’ 또는 프로 레슬링 게임은 필자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5~6종류는 되는 것 같은데, 어느 게임이 정통 라이선스에 따른 게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에 그런 기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회사의 다른 게임들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락실에만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 인기를 반영하듯이 다양한 플랫폼으로도 출시되었는데, 현존하는 웬만한 게임기로는 거의 다 출시가 됐다. 최근까지도 ‘스맥다운(SMACK DOWN) 대 RAW’ 시리즈가 XBOX 360이나 PS2, PS3, PSP, Wii 등의 콘솔 게임기용으로 출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필자는 필자의 애장품 ‘럼블로즈’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아쉽지만 사진은 생략하는 것으로..

[오! 형들! 잘 지내?]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물론이고 실제 캐릭터들도 거의 키가 2미터 넘는 거구들이다. ‘헐크 호건’의 경우에도 전성기 때 키, 몸무게가 201cm-137Kg으로 눈앞에 이런 형님이 떡 하고 서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주변에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친구들이 없어서 쉽게 상상이 안 간다. 그런 거구의 형님들이 뛰어 내리고 날아다니면서 찌르고 차고 하는 프로 레슬링의 매력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단순히 일차원적인 폭력의 발현에서 오는 재미라기보다는 이중 삼중으로 교묘하게 장치적으로 숨겨져 있는 캐릭터들 간의 ‘권선징악(勸善懲惡)’적인 코드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善)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들과 악(惡)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들과의 싸움은 어느 한 쪽에 일방적이지 않고 밀고 당기며 보는 이로 하여금 주먹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드라마틱 스토리를 제공했다. 비열한 캐릭터에게 착한 캐릭터가 당하면 너도 나도 분해 했고 얍삽한 기술을 쓰는 캐릭터를 보며 야유하며 계속해서 당하다가 결국에 착한 캐릭터가 온몸에 땀범벅이 되어 기진맥진한 상태로 승리의 카운터를 받았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며 환호성을 질렀던 것이다.

최근에 선과 악이 불분명해지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사회 시스템이 구성원 대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 하는 사태가 결국 이러한 시스템의 엔터테인먼트에 열광하던 시절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아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든다.

■ 필자의 잡소리
프로 레슬링 세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헐크 호건’ 할아버지 형님은 최근 다시 복귀를 선언했다. 과거 할아버지 형님의 트레이크 마크 컬러였던 노란색에서 빨간 색으로 바뀌었지만, 건장한 체격은 여전하다. 30년전 ‘WWF’에서 활약하던 할아버지 형님.. 3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 열정은 식지 않은 것 같다.

[그 때가 그립기도 하다.]
평생의 꿈을 찾아 30년 이상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헐크 호건’ 할아버지 형님도 중간에 흔들리기도 했고 고뇌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며 늘 그 자리에 서 계신다. 필자는 게임을 30년 넘게 했다. ‘헐크 호건’ 할아버지 형님하고 필자가 콘솔 게임기로 프로 레슬링 게임을 하면 누가 이길까?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시리즈는 아직까지도 확대 재생산되어 늘 이야기 거리가 되는 남자들의 유치한 유아기적 발상의 퇴행적 사고방식이지만, 이만큼 치고 박고 싸우기 좋은 소재도 없지 않나?

한경닷컴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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