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e스팟] 잡스도 못 읽어본 ‘잡스 전기(傳記)’ 열풍

사람들은 전기(傳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이순신 장군’ 전기 이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세상에 쏟아져 나온 전기들이라는 게 불리하거나 나쁜 점은 생략해버리거나 변형시키고, 사소한 자랑거리는 풍선처럼 부풀리는 경우가 많다는 경험적인 불신 때문이다.

지난 24일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가 전세계 20여 개국에서 동시 발간되었다. 잡스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일생과 일화를 다룬 책이다. 애초 11월 21일 발매 예정이었으나 잡스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일정이 앞당겨졌다.

발간 즉시 전세계 서점가를 강타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과 반즈앤노블의 톱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고, 타이완 필리핀 등 아시아에서도 인기 폭발이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쇼핑몰 주문량이 100만권을 넘어섰다.

한국에서도 900페이지에 가격이 2만 5000원이나 하는 데도 발매 하루만에 최고 판매기록을 경신했다. 민음사 측은 “창사 이래 처음”이라며 함박웃음이다. 선주문 10만대가 다 팔리고 추가로 8만부를 찍을 예정이었으나 주문이 쇄도해 20만부를 더 찍어 서점에 긴급 공급하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한 인물의 전기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판매 열풍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5일 세상을 떠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과, 잡스가 생전 인정한 유일한 공식전기라는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집필자 월터 아이작슨의 약력도 한몫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전 편집장이자 CNN 전 CEO인 필자는 집필을 위해 2009년부터 2년간 잡스를 40여 차례 인터뷰했다. 내용에 대한 간섭 금지와 원고 사전 보기 금지 등을 약속한 잡스도 자신에 관한 책 중 이 책을 유일하게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채 이승과의 작별을 고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철저히 감춰온 잡스의 개인사가 나온다. 어린 시절 입양된 잡스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친부모보다 끔찍이 위했다. 누군가 ‘양부모’라고 부르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1000% 제 부모”라며 항변했다. 반면 생부모에 대해선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고 냉소했다.

실제로 1980년대 잡스는 실리콘 밸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생부를 아버지라는 것도 모른 채 수차례 만났다. 생부라는 것을 안 이후에는 비밀에 부쳤고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

동갑내기 구글 CEO 에릭 슈미츠와는 죽기 직전까지 관계가 나빴다. 잡스는 “애플의 아이디어를 훔친 안드로이드를 파괴해버리겠다. 애플 보유 400억 달러를 모두 사용해 전면전을 벌이겠다”고까지 말했다. 

선불교에 빠졌고 채식주의자로 10대 때부터 다양한 식이요법을 시도했던 잡스는 사과농장에서 돌아오다 ‘애플’이란 이름을 지었다. 수술이 아닌 침 등 대안치료를 고집해 췌장암 치료를 9개월간 지연시킴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도 “배에 칼을 대고 싶지 않다”는 잡스의 독특한 세계관과 관련이 깊다.

잡스의 디자인에 대한 집념도 나온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마스크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산소 모니터를 더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잡스에 대해 세상을 바꾼 IT영웅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경영에서 독재자로 군림한 비열한 인간으로 평가한다. 모든 사람은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잡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뱀같은 혀로 실제를 다른 모습으로 꾸며 설득하는 현실왜곡의 장의 달인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잡스는 이 전기를 남긴 이유에 대해 “아이들에게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시키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구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라고 말했다.

어차피 전기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일생을 모두 그려내기는 어렵다. 다만 전기를 통해 독자들은 장점을 배우고, 한 인간의 단점을 읽으며 자기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청년정신과 열정의 인간, 그리고 모순덩어리인 친근한 한 인간 잡스는 자신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이렇게 얘기했다. “열정 대신 이익을 쫓는 순간 실패했다”고. 새 책의 책장을 넘기며서 알았다. 이 책에서 열정 하나만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박명기기자 일간경기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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