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티'와 비교 다른 재미...20년 전 2인플레이 지원 PC게임

지금까지 이런저런 게임을 해보면서 필자도 제법 게임에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만하고 있을 무렵 전혀 새로운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갓게임(이전 기사 참조)의 장르에 포함시켜도 될 법한 이 게임의 이름은 ‘썹시티(Serf City)’ 였다. 국내 게임 잡지나 공략본 등에는 ‘농노 도시’ 라고 친절하게 번역까지 해주었지만, ‘농노’라는 단어가 주는 게임 이름의 뉘앙스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썹씨티]
‘썹시티’는 말 그대로 ‘농노’가 중심이 되는 게임이었다. 여기서 게임의 중심이 되는 ‘농노’란 과거 중세시대의 노예 속성이 부여된 농민을 뜻을 하는데, 그리 유쾌한 의미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버전부터는 ‘썹시티2’가 아니라 ‘세틀러’라는 다소 권위적이고 위엄 있는 정복자의 이름으로 등장했다(게다가 실제로 이 게임의 중심은 필자가 보기에 ‘농노’라기 보다는 ‘기사’ 계급이다).

■ 정복자의 꿈을 이루어보자.
이 게임의 부제는 ‘Life is Feudal’이다. 아직 영자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알파벳 제법 읊고 다닌다고 동네에서 영재소리 듣던 시절에, 필자는 ‘라이프 이스 페달’ 즉, '인생은 자전거 페달처럼 끊임없이 밟고 밟아도 그 끝이 없는 것처럼 힘들고 고된 것이다'라는 뜻에서 이렇게 부제를 붙인 줄 알았지만, 사실 ‘Feudal’은 자전거 페달이라는 뜻이 아니고 ‘봉건 제도’이라는 뜻이다.

[이 페달은 그 페달이 아니다]
봉건주의 하면 세계사 시간에 중세 시대의 어쩌고 하면서 배웠던 기억이 날 것이다. 그렇다. 이 게임은 중세시대의 생활상을 게임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도 왕이나 군주가 중심이 되는 기존의 게임보다 서민화에 밀착하여 ‘농노’라는 새로운 개념을 탑재하고 게임으로 등장하였다.

기존의 게임과 다른 점이라면 아기자기한 ‘농노’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그 움직임이 세밀하다는 것이다(비슷한 시기의 레밍즈 시리즈에 비해 더 오밀조밀한 캐릭터움직임을 자랑한다). 게임의 목적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이 게임에서의 목적은 직접 ‘농노’이 되어 체험 삶의 현장을 즐겨보자라기보다는 군대(기사)를 키워 이웃 국가들을 정복하여 결국 통일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편부터 게임 이름이 ‘세틀러’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세틀러’ 시리즈는 그 이후로 승승장구하여 어느덧 7편까지 나온 듯한데, 최근에는 스마트폰 흐름에 맞춰 스마트폰용과 NDSL으로도 출시되었다.

[‘허허’하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허허’벌판]
처음 시작하게 되면 이렇게 ‘허허’벌판이 보이는데 적당한 위치에 본성을 지을 자리를 지정하면 뚝딱 뚝딱 하고 성이 만들어진다. 여기가 바로 본진이 되는 지점이므로 주변에 광물이나 자원이 많이 있을 것 같은 지역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지점을 찾아야 한다. 대충 아무데나 설정했다가는 저 멀리 경계선(국경) 밖에 있는 자원을 캐지도 못하고 힘든 국정 운영이 될 것이다.

■ 심시티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국가를 성장시킬 단계가 된다. 빈 땅 여기저기에 국가 운영에 필요한 건물들을 짓게 되는데, 건물의 크기에 따라 지을 수 있는 장소가 다르다. 성 모양의 지점에는 큰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집 모양의 위치에는 보다 작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삽으로 평탄화 작업을 하는 ‘농노’들 덕분에 작은 집만 지을 수 있던 땅도 어느새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황금땅으로 변모하기도 한다(본격 부동산 개발 게임).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해 볼까!]
화면에 보이는 집들은 ‘농노’ 캐릭터들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지어올린 것이다. 톱질하고 망치질 하는 모습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존에 심시티류의 게임들이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생략하고 바로 건물이 보인다던가, 중간 과정은 보이지만 공사 중인 내용에 크게 체감이 가지 않았던 반면, ‘썹시티’ 게임에서는 직접 사람들이 나와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건물을 지어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에는 호불호가 엇갈리기도 했는데, 너무 느린 진행이라 답답하다는 의견도 있던 반면에 실제와 같은 느낌이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CASTLES]
이보다 하드코어한 중세시대의 성곽 제조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CASTLES’ 게임을 추천해 드린다. 2편까지 나오고 3편은 나왔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지만, 성이 지어지는 와중에 지키기 위한 공성전이 긴장감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이 게임에서도 자원은 중요하게 관리된다. 둥근 탑과 네모 탑 그리고 성벽까지의 거리 등 방어력과 공격력을 고려하여 성곽을 구성하지 않으면 애써 지은 성도 무용지물이다. 이것도 20년이나 전에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지금 다시 해봐도 그 훌륭한 구성에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다양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조금씩 지어 올라가는 건물은 어느 정도 전략-전술적인 시뮬레이션 요소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요새를 지었다고 바로 옆 국가를 공격할 수 있지만, 요새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지어지는 것도 아니고, 요새가 완공될 때까지는 최대한 평화협정이나 다른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실제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클릭할 때마다 바로 건물이 완공되면 스타크래프트의 ‘Operation Cwal’와 같은 마법 주문이 되어버리지 않나?

■ 자원을 활용해야 원활한 게임 진행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지면 이제 자원분배 설정을 통해 국가의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고심해야 되는 단계가 온다.

빵을 만들려면 밀이 필요하고 밀을 재배하려면 농부가 있어야 되고 밀을 재배하여 밀가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방앗간이 있어야 되고, 광물을 채취하면 제련을 해야 되는데, 광물에 따라 석탄이나 철광석, 금광 등 설정이 다양하여 제법 현실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

[자원분배 제대로 안 하면 망한다.]
게임에서는 제법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는데, 농부가 기본인 것은 물론 석공이나 목공 그리고 어부와 광부도 등장한다.

그 중에 제일 많은 수를 자랑하는 건 길목마다 서 있는 배달꾼이다. 자원 분배 설정이 잘못 되거나 공사 진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배달꾼들이 머리만 긁적이면서 파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산림 감시원이나 벌목꾼, 정육점 등도 있다. 나무를 채취해서 빈 자리에는 산림 감시원들이 다시 돌아다니면서 나무를 심는다. 자원을 소모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기존의 RTS 게임에 비하면 대단히 자연친화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자원의 끝은 ‘기사’ 계급의 육성에 쓰인다는 느낌을 받지만, 중세시대의 최대 인기 있는 직업 베스트5에 들어가는 직업인 만큼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분이다. ‘기사’ 들이 부족해서 침입한 적군을 물리치지 못해 마을이 활활 불타고 있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보고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작아도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는 기사]
과거는 물론 현재에 이르러 인류 역사에 있어 ‘힘 있는 자가 곧 정의다’라는 진리는 이 게임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물론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폭력과는 구분 지어져야 할 것이다. 국방에 소홀하다 보면 인접한 국가에서 침입해 영토가 불타는 모습을 보게 되니 ‘기사’들을 최대한 육성하여 인접국가를 침범하지 않더라도 그 침범에는 대비해야 한다. 칼자루를 남의 손에 쥐어 주고 제발 나에게 휘두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칼자루를 손에 쥐고 남에게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자주국방에 힘쓰고자 여러모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그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기사들도 계급이 존재하여 말단 기사부터 상위 기사까지 5등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최상단의 기사는 투구모양부터 다르다. 이런 기사들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돈’이며, 이 돈은 금광을 채굴해서 제련한 ‘금’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금맥을 찾는 것이 우선이며 금맥을 발견했을 때는 조사관의 신나는 환호성을 들을 수 있다. 금광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게임에서 중요한 목적이며, 방비를 소홀히 했다가는 어느새 적군에게 빼앗겨 불타버리고 곧 이어 들이닥치는 적군의 상급 기사들에 의해 국가 전체가 불타는 광경을 지켜볼 수 있다.

■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란 것은 누구든지 알지요~ 이 노래는 필자가 게임을 하면서 지겹게 부른 노래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서 씨앗들이 자라 어느새 밀이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흥에 겨워 노래가 나올 것이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하지만, 게임에서 ‘보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저 밀을 재배하여 방앗간에 가면 밀가루를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제빵소에서 빵을 굽는다. 그 빵이 국가 전체의 식량자원으로 활용되며, 식량 자원은 빵 이외에도 물고기가 있다. 또한 빵을 굽고 남은 밀대를 가지고 돼지 우리에서 먹이로 활용하기도 하는 등 이 모든 것이 모기보다 작은 캐릭터들이 움직이면서 실시간으로 진행된다(하지만,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슬로 푸드 개념은 이미 이때부터 있지 않았나 싶다).

사진에서 보이는 저 길목이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아무렇게 건물을 지어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적재적소에 건물이나 길목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나중에 꼬인 자원을 푸느라 고생 꽤나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경계선 부근에 요새를 지으면 요새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땅이 넓어지는데, 요새도 크기에 따라 배치 가능한 기사의 수가 정해져 있다. 적은 기사가 있다면 많은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이겨내지 못 하고 요새가 불타고 만다. 요새가 불타게 되면 다시 그 만큼의 땅이 뺏기는데, 그 때 그 요새 부근에 건물도 같이 불타게 되기 때문에 절대 뺏겨서는 안 되며, 요새 근처에는 중요한 건물을 짓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 친구와 함께 왕국을 건설해보지 않겠나?
이 게임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대략적이나마 국가의 운영과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 게임은 그 당시 PC 게임에서 드물게 2인 플레이(2P)를 지원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3인용을 지원하는 ‘램피지’(킹콩이 건물 부시는 게임)같은 변종 게임도 있었지만, 그 당시 PC게임은 1인용 게임이 대다수였다. 2인 플레이를 지원하는 경우에도 화면 분할을 하거나 같은 화면을 쓰면서 1개의 키보드로 진행해야 되는 등 옹기종기 모여 앉아 좁디좁은 키보드 위에 두 사람이 게임을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환경이 전부였다.

이 게임은 신기하게도 마우스 2개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데, 각각 시리얼포트와 PS/2포트에 연결하면 한 PC에서 2개의 마우스를 쓸 수 있었다. 20년이 넘은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스템을 지원한 게임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최근에 나온 게임들도 이렇게 마우스2개를 지원하는 게임은 많지 않다.

[PS/2 포트]
시리얼 포트를 쓰는 마우스는 이제 더 이상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PC를 접하신 분들이라면 생소할 것이지만, PS/2는 아직도 USB포트 마우스와 함께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 것이다.

필자는 우연하게 마우스 2개를 지원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사촌동생을 불러다가 필자의 부하 노릇을 하게 했다. 필자는 왕이고 사촌동생은 옆 나라의 지배자이지만, 영지를 할당 받은 군주의 역할극을 꽤 오랫동안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바로 옆에 앉아 코피 나게 맞아가면서 게임을 했던 필자의 사촌동생에게는 즐겁지 않은 기억이겠지만.. 필자와 사촌동생의 본격 2인 게임 플레이 시절은 추후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썹시티’게임 외에도 ‘아머드피스트’게임을 사촌동생과 함께 즐겼는데, 이때 피 터지게 얻어맞아 가면서 적기 식별을 배운 필자의 사촌동생은 훗날 군대(밀리터리 아카데미)라는 곳에 갈 때 가지도 잊지 않고 적-아군 피아식별 대회에 우승하여 포상휴가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필자의 사촌동생은 각 기체 실루엣과 성능, 대응화기 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맞아 가면서) 훈련 받았다. 아마 그 당시에는 지옥과 같았겠지만 군대에서 포상휴가를 받았을 때는 필자에게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는 필자의 추측이다).

■ 필자의 잡소리
‘썹시티’ 이후 ‘세틀러’ 시리즈는 그 이후로 계속 흥행에 성공하여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리즈를 양산하였다. PC 플랫폼 외에도 휴대용 게임기와 스마트폰으로도 출시되는 등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명작 게임으로 때로는 ‘문명’ 시리즈와 비교되기도 하고 때로는 ‘심시티’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세틀러’는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하나의 타이틀이 가지는 생명력이 무한하지 않음을 고려할 때 계속해서 시리즈를 출시하는 게임들을 보면 굉장함과 동시에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국내 게임 중 시리즈화되어 성공한 게임이 많지 않음을 생각해 볼 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PC패키지 게임 시장이 거의 전멸한 국내 게임시장을 고려할 때 이루어지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대신 장수하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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