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e스팟] 제9프로구단 엔씨소프트 어떤 '꽃'으로 피어날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대목이다. 프로야구계의 막내이자 제 9구단 엔씨소프트가 이름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 시를 떠올렸다. 

연고는 창원. 엔씨소프트는 지난 2월 8일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창단 인증서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창단의향서를 제출한 지 100일 만에 야구단 창단에 관한 모든 공식절차를 마감했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사인 엔씨소프트가 웬 야구단인가’ 의구심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야구단은 삼성·현대·LG·SK·롯데·기아·한화·두산 등 8개로 지역 연고제와 함께 전통적 굴뚝 산업이 주였으니 당연한 시각이기도 했다. 특히 창단의 최대 걸림돌은 기존 구단 중 유일하게 입장을 달리한 부산 경남 연고의 롯데의 반대였다. “규모가 작은 업체라서 안정된 구단 운영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덩치론을 들고 나왔다.

롯데로선 안방 팬을 뺏길지 모른다는 경계심이 발동한 건 당연하겠지만 게임 산업에 대한 하대(下待)의 감정이 배어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엔씨 측이 구단 투자액에 대해 “연 200억원을 계획하고 있다. 엔씨는 매년 2000억원 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엔씨의 현금보유액만 해도 4000억원이 넘는다. 이자만으로도 1년 야구단 예산 200억원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른 그룹 구단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자금력에서만큼은 탄탄하다는 방증이다. 그러므로 롯데측의 덩치론은 말그대로 기우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경우도 그랬다. 일본 말 중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하나카다(花形)가 있다. 원래 꽃 모양 장식 괘를 뜻하는 것으로 ‘잘나가는 산업’을 비유할 때 쓰곤 한다. 이 하나카다의 대표 아이콘인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긴테쓰·세이부·한신 등은 민영 철도회사고, 요미우리·주니치 등은 신문과 방송을 소유한 회사들이다. 

21세기 들어 이런 전통에 조금씩 변화가 일었다. 야후 재팬을 소유한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이동통신 보다폰(현재 소프트뱅크)과 함께 슈퍼마켓 체인이 구단주였던 다이에 호크스를 인수했다. 라쿠텐(樂天)이라는 쇼핑몰 분양 업체도 긴테쓰 구단을 샀다. IT기업의 야구단 소유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예는 더 있다. 미국의 시애틀 매리너스의 구단주는 일본의 게임사 닌텐도의 창업자 야마구치 히로시다. 그 덕에 일본의 이치로는 2001년 시애틀 팀에 입단했고, 팀 중계 때마다 포수 뒤 광고탑에 항상 닌텐도 광고가 나온다.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어 왔다. 한국 게임사 넥슨이 김태균이 소속된 일본 롯데의 스폰서로 참여한 것과 CJ인터넷의 프로야구 후원 등을 고려해보면 이제 온라인게임업체의 야구단 진출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볼 때는 지난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대표 게임개발사이며 게임업계 맏형이다.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등 MMORPG(다중접속온라인 역할수행게임) 3연속 홈런을 쳐내며 게임개발 능력과 운영에서 최강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우리나라에서 15명뿐이 주식 총액 1조 클럽 멤버이기도 하다. 

엔씨소프트는 잇단 게임 개발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고, 해외 수출에서도 40% 가까운 매출을 올리면서 이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WBC나 올림픽 야구붐을 계기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사회 공헌 분야에서 보다 큰 스케일의 공헌 모멘텀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게임 중독 등으로 나빠진 이미지를 야구단 운영으로 호전시킬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엔씨소프트가 지향하는 게이머들의 핵심인 젊은세대와의 접점을 장기적으로 전세대로 확장시킨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게임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듯이 야구로도 감동과 드라마를 만들어줄 것으로 믿고 있다. 

11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으로 공모하는 구단 이름 찾기 이벤트도 게임회사다운 발상이 돋보인다. 엔씨소프트 프로야구단 홈경기장의 영구지정좌석, 순금(10돈 상당)으로 제작된 입장권, 2011 한국시리즈 티켓(1인 2매), 엔씨소프트 음악서비스 `24hz`의 1년 이용권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아홉 번째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운 엔씨소프트의 이름 공모가 시작된 날은 마침 여의도 벚꽃축제가 개막한 날이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 다음 대목은 이렇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막내구단을 꽃으로 만들어줄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장외에서의 꽃구경이 자못 흥미롭기만 하다.

일간경기 201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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