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e스팟]레알 돋는 게임 내 '한글파괴잔혹사'

한때 ‘넘버3’란 영화에서 송강호가 써서 유행한 무데뽀라는 말이 있다. 앞뒤를 잘 헤아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실 이 말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의 잔재다. 언어학자들은 이왕 쓰려거든 ‘무작정, 무턱대고, 무모하다’ 등으로 쓰자는데 그 느낌은 퍽 다르다.

최근 한글날을 맞아 한 방송사에서 필자에게 온라인게임 내의 언어 파괴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그에 대한 답은 얼추 이러했다.

“온라인게임 내엔 전투와 사냥을 할 때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한 채팅창이 있다. 게임사들은 선정성-폭력-욕설 등에 대한 금칙어를 마련 상시적으로 걸러(필터링)낸다.”

실제로 온라인게임 내 채팅창은 한때 실시간으로 ‘존*, 시*, 10새*’ 등의 욕설에서부터 ‘색끈한, 빡돌아, 배떼지’ 등의 음란, 저속 표현이 난무했다. 전투와 사냥을 할 때 대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채팅창은 욕설 천국이라 할 정도로 한글 파괴의 잔혹한 현장이었다. 심지어 필터링에 맞서는 욕 사이 띄어쓰기, 숫자 넣기 등 악성 변형어까지 출몰했다.

현재 각 게임사들은 채팅창이나 게시판에 쓰이는 언어에 대해 각각 1000여개의 금칙어를 마련해 아예 쓸 수 없거나 써도 드러나지 않도록 운영 중이다.

▲ 엔씨소프트의 게임 '아이온' 환경설정의 비속어차단 기능.

엔씨소프트는 게임 내 비속어 차단 기능을 아예 환경 설정에 마련했다. 예를 들어 ‘아이온’의 경우 욕설인 병신-지랄-씨발은 물론 변형어인 빙신-지롤-시발, 병 신-지 랄-시 발 등 두 음절 사이 공백까지 차단한다. 영어 욕설인 fuck, damn도 차단 대상이다.

넥슨은 필터링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이용, 욕 사이에 띄어쓰기나 기호 등을 넣어도 걸러낼 수 있는 수준이다. 언어폭력 신고가 4회 이상 들어오면 해당 아이디를 영구적으로 이용 불가조치한다.

한게임은 운영자 사칭, 상업-광고, 욕설-음란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분류해 약 1000여개의 단어들을 금칙어로 지정했다. 또 ‘지킴이 별점’을 부과, 누적 벌점의 점수에 따라 적게는 1일에서부터 최대 1년까지 이용정지 처벌도 내린다.

이처럼 대부분의 온라인게임 채팅창에는 ‘금칙어’가 설정돼 있다. 잘 알려진 욕설이나 비속어는 아예 입력이 안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제약이 오히려 새로운 욕설과 신조어를 양산하고, 새로운 표기법까지 출현한다. 마치 ‘해커’와 ‘크레커’처럼 쫓고 쫓기는 형국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도 국적 불명의 신조어가 판을 친다. 최근 입길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 ‘돋네’와 ‘잉여’ 또한 그렇다. “닭살 돋는다”에서 유래한 말로 ‘소름끼친다, 끔찍하다, 깜짝 놀랐다, 무섭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레알돋네’의 경우 레알=리얼(real)을 발음 나는 대로 읽은 것으로 진짜, 사실이라는 뜻이다. 잉여는 ‘쓸 데가 없는 한심한 인간’(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쓰인다.

재미있는 것은 ‘돋네=쩐다’(정말 대단하다) 등으로 발전해 ‘감동 돋네’ ‘시인 돋네’ 등으로 확산 추세인가 하면, 일본어 표현 ‘빠가’(바보)를 금칙어로 해놓으니 ‘오빠가’가 금칙어망에 걸리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 MBC 무한도전 한글 디자이너 이상봉의 한글 패션쇼. 모델은 노홍철
한글 파괴의 양상은 일본어투에서 영어투로 발전해왔다. 서영춘 코미디의 진수로 일컬어지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고뿌가 없으면 못마셔요’가 있다. 일본어투의 고뿌는 60년대까지 통용되다가 70년대에 서서히 컵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회에 미국식 영어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이 게시판-채팅창-휴대폰 문자메시지를 거쳐 소셜네트워크(SNS)의 국적 없는 외계어투로 진화해가는 양상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언어를 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게 된다. 용혜원은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기쁘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슬픈 사람은 ‘슬프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했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지만 욕설과 폭력적 표현, 비속어에다 신조어가 남발되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지나친 자학과 규칙 파괴다. 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 손수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들으면 일본어투나 영어투, 외계어투의 언어에 대해 진노할 게 틀림없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온라인게임 채팅창이나 포털 게시판, SNS의 소통 공간을 건전한 환경으로 만드는 것은 유저 스스로의 몫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교과서에 사용하는 우수한 한글을 지키는 일은 바로 우리 민족의 얼과 각자의 인격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 됨됨이를 지키는 말글습관, 단지 한글날만의 일회성 다짐이 아니라 1년 내내 변함없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플레이포럼 박명기 기자 20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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