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e스팟] 명텐도 ‘카누’, 꼴찌에게 보내는 기립박수

세상을 살다보면 ‘아하’ 하고 절로 손뼉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그랬다.

이 산문집의 한 대목.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박완서는 꼴찌로 외롭게 달리고 있는 마라토너를 보며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박수를 보낸다고 썼다.

▲ 8년 동안 한국형 게임기 개발을 위해 매진해온 GPH 이범홍 대표가 신제품 '카누'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지구촌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와 소니는 누가 뭐라해도 절대 강자다. 양사가 전세계에 판매한 휴대용 게임기의 누적 판매량은 무려 2억대다. 스마트폰 열풍으로 거품이 빠지고 있지만 닌텐도DS 광풍이나 소니의 PSP는 여전히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스페셜 아이템 중 하나다.

한국인들이 이 두 회사 이외에 다른 휴대용 게임기가 있다는 사실은 안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지식경제부를 방문했을 때 “왜 한국에서는 닌텐도(실제로는 게임기) 같은 것을 못 만드느냐”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한국에도 휴대용 게임기가 있었다. 2001년 첫 제품이 나와 매년 몇 만대밖에 팔리지 않지만 8년 이상 휴대용 게임기를 줄기차게 만들어온 회사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 인해 비로소 이 한국산 게임기가 발견(?)되었고, ‘명텐도’라는 별칭을 얻으며 일약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이달 18일 새 제품 ‘카누’(Cannoo)를 들고 런칭쇼와 쇼케이스를 가졌다.

GPH 이범홍 대표. 그는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 흰 남방을 걸쳐 입었다. 곱슬머리에는 머리띠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왠지 잡스의 ‘짝퉁’ 흉내를 내는 것 느낌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조금도 어색해보이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으려 했을 때 시장 목표가 1%였다. 저희 첫 번째 목표가 1%다. 앞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진정한 TOP3가 되겠다.”

그 말을 들으며 필자는 박완서의 산문을 떠올렸다. 환호나 박수 없이 8년을 꼴찌로 달려온 사나이, 집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마련하고 한때 수십억 빚더미에 앉았던 젊은 사업가. 유럽 6개국을 비행기값이 없어 렌터카와 햄버거로 돌며 바이어를 만나 읍소했던 개발자. 그는 ‘게임기다운 게임기를 만들고 싶어’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기며 여기까지 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깜빡이’라는 학습법 기기의 하드웨어를 생산하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냈지만 “ODM방식으로 기기만 생산해주는 것이 싫어 게임기 독자 명품 브랜드를 꼭 만들고 싶었다”. “게임도 없는 주제에 너희가 무슨 게임기냐”는 힐난에 맞서 이미 30여종의 게임도 마련했다. 리드모스라는 음악게임은 3000여명의 오디션을 거쳐 가수도 선발하고 그 목소리를 게임에 넣었다.

카누는 게임, 비디오, 오디오, e북, 포토뷰어 등 멀티미디어를 즐기는 온라인 게임기다. 오픈 플랫폼이라는 비장의 무기도 장착했다. 다른 빅2와는 달리 플랫폼 홀더 모든 권한을 개발자에게 주고 그들을 지원하고 유저들과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WiFi를 통해 전세계 유저들과 네트워크 랭킹도 즐길 수 있다. 애플의 앱스토어보다 먼저 구상했지만 돈이 없어 이루지 못했던 오픈 콘텐츠 스토어(FunGP)를 마침내 열었다.

“지금까지 연간 10만대를 팔아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처럼 1%인 200만대는 GPH로서는 어마어마한 목표다. 다행히 4만 명 가까운 회원수를 유지하고 있는 8년 전통의 자발적인 해외 사이트 GP32X.com의 홍보와 E3 등 국제 게임쇼에서 얻은 인기가 그를 성원한다. 출시하자마자 해외 바이어들의 초도 물량 1만대가 발주가 끝났고 추가 생산에 돌입했다. 한국에서도 500대 한정 예약 판매가 동났다.

그러나 그는 초심(初心)을 결코 잊지 않았다. 초기 모델 GP2X(2004)을 낼 때 건물도 인력도 없어 밤새우며 포장부터 발송까지 직접 해야 했던 그 시절을. 그리고 “일본 게임기에 지지 말고 멋진 국산 게임기를 만들어 달라”는 경기 성남의 한 초등생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카누는 피겨퀸 김연아,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주인공 강칠구처럼 대한민국 휴대용 게임기의 ‘국가대표’를 자부한다. 스스로도 ‘많이 부족하다’고 인정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장기전을 향한 최소한의 준비가 끝났다.

앞으로 카누가 얼마나 팔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행히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정부 기관도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20억 빚더미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한국형 휴대형 게임기’에 대한 그의 집념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지금은 비록 꼴찌로 외롭게 달리고 있지만 200만대를 향한 그의 집념은 충분히 갈채를 보낼 만하다.
플레이포럼 박명기 기자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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