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e스팟] 아이패드는 한옥의 미닫이문 닮았더라

한 게임사의 기자간담회에 뒤늦게 참석했다 갑자기 당첨된 행운으로 아이패드(iPad)를 하나 얻었다. 아직 한국 출시가 안된 터라 너도나도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아이패드를 받은 지 한 달. 끄고 켤 때마다 환상적인 물건이라는 놀라움, 무더운 여름날에도 통풍이 잘되는 한옥집 미닫이문 같은 시원함, 기계치도 개조 가능하다는 그릇된 신념까지 심어준다. 쑥스럽지만 이 글은 아이패드 초보 교감(交感) 노트쯤 된다.

누워서 뒹글면서 쓰는 재미
무게는 680g로 가볍고, 화면 9.7인치로 널찍하다. 영락없이 더 커진 아이폰이다. 내 아이패드는 회사보다는 집에서 주로 쓴다. Wi-Fi 모델로 집의 무선공유기로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잠자기 전 누워서 배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터치하며 인터넷하기가 얼마나 편한지 뭐 이런 물건이 있나 쉽다. 화면 회전 지원만 해도 누워서 뒹굴면서 쓰라고 있다는 걸 제대로 알 수 있다. 아침 일찍 화장실에서 무릎 위에 딱 올려놓고 보면 가히 환상적이다.

아이패드는 시간 때우기도 딱이다. 유튜브 동영상이나 개인 메일 체크, 영화나 게임 등 넓은 화면이 눈에 쏙 들어온다. 물론 나보다 방학을 맞은 중2 아들 녀석이 더 잘 갖고 논다. 녀석은 영화를 보고, 게임과 책 읽기도 하며 얼리어답터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기계치인 필자도 자주 접하다보니 아이패드 없는 생활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올해 들어서야 접한 처지라 “해외 가보니 아이폰을 못 들여오게 한 한국 메이저 통신사들의 속좁음이 한국 IT 산업을 몇 십년 후퇴시켰다. 그들이 매국노였다”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다.

스르르 한옥의 미닫이문 같은 느낌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다뤄보다가 든 의문이 있다. 왜 잠그고 끌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까와 보았던 페이지를 끄거나 지울 때 X버튼이 왜 왼쪽 상단에 있을까. 

처음 이 기기들을 켤 때면 ‘밀어서 잠금해제’라는 글이 하단에 뜬다. 끌 때도 ‘밀어서 전원끄기’가 상단에 뜬다. 모두 화살표 표시가 왼쪽에서 오른쪽이다. 왜 지붕자락이 살짝 하늘로 향해 있는 한옥이 떠오를까.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게 되어 있는 미닫이문 말이다. 

미닫이는 한옥이나 일본 전통가옥의 대표적인 문이다. 문과 문 사이 또는 마루에서 안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대개 문풍지가 발라져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켜거나 끌 때 그 미닫이문을 여닫는 듯한 느낌이다. 격자무늬에 한지로 창호를 한 그 문, 문을 열지 않아도 자연 환기가 될 만큼 통풍이 좋고 디자인적으로도 빼어난 문. 

한국의 미닫이는 결코 덜컥 열 수 있는 문이 아니다. 마치 사대부가 안마당을 건너오면서 “들어가도 되겠소”라는 발소리를 들려주듯이 스르르 열린다. 벽처럼 느껴지는, 그래서 덜컥 열 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여닫이와는 전혀 다르다. 격자무늬의 가지런한 창살, 불빛이 은근하게 새어나오는, 문마다 다른 무늬에 달빛 스며듦을 서로서로 알아차릴 수 있다. 

또 한가지. 사파리에서 새 페이지를 열었다 닫을 때 끄는 X버튼이 왼쪽 위에 있다. 이것은 MS의 익스플로러의 닫기 X버튼이 맨 오른쪽 위 끝에 있다는 것과는 반대다. 왜 왼쪽일까.

한발 더 다가온 신문-잡지와 게임의 미래
아이패드는 무엇보다 신문, 잡지, 책을 읽는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좋다.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책장 넘기는 재미에다 책 안의 여러 장치-앨리스가 먹는 약병-가 커지는 등 변형을 이루거나 이동 등 신선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최근 MS 창립자 빌 게이츠는 “5년 후 세계 최고의 강의를 공짜로 웹에서 받게될 것”이라며 디지털 대학교육을 역설했다. 또 미국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5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며 ‘종이책 사망선고’를 내렸다. 안타까운 건 한국처럼 비영어 사용국의 공통적인 특징은 e콘텐츠가 너무 열악해 읽을 전자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아이패드 신문이 유료화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종이 신문 디지털 사본으로 가격은 70%대란다. 아이폰은 25%대로 아이튠즈 자동결재다. 와이어드 같은 잡지의 경우 펼친 면에서 시원하게 비주얼과 텍스트를 볼 수 있어 디자인이 더욱 산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저장해뒀다가 보고 싶을 때 보는 전자책, 몇 백 페이지 책이 단 몇 십 킬로바이트밖에 안 된다니.... 이러니 아이패드를 신문-잡지의 미래라고 하는 수밖에. 

한글 타이핑이 안되는 아주 크나큰 단점을 지닌 우리집 아이패드. 쌩짜 초보인 필자는 오늘도 한글어플 위에 글을 쓰고 ‘복사’와 ‘붙이기’로 터치한다. 그래도 켜고 끌 때마다 정겹다. 창호지가 발라진 어릴 적 한옥집 완자무늬 미닫이문처럼 스르르 열리고 닫히는 느낌을 남몰래 맛보는 기분이랄까. 세상의 어떤 초보보다 더 덜떨어졌지만 필자는 요즘 적어도 미래를 먼저 산다는 느낌으로 충만하다. 

플레이포럼 박명기 기자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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